탁영호 Tak Young ho

‘오래된 지금’은 계속 현재형으로 진보할 것이다.
탁영호

몇 년 전에 나에게 값진 물건이 들어왔다. 대충 보아도 오래된 물건이었다. 그것은 100여 년 전에 프랑스의 어느 신부가 한국으로 가져온 서랍장이었고, 36개의 서랍 안에는 세월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우선 깨끗이 닦고 수리한 후에 어디에 쓸 것인지를 고민하였다. 결론은 여러 크기의 서랍 안에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나는 36개의 다양한 표정의 인물 얼굴을 표현하려 했고, 이 표정들을 통해 시대의 흔적을 남기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몇 년의 시간 동안 방치되었다.

작년 여름에 다시 서랍을 꺼내었다. 이제는 뭔가를 그려야 할 시간이 왔다. 곰곰이 며칠을 바라보다 우리의 민화와 상징물을 표현해보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민화의 매력은 이야기가 있는 우리의 그림이다. 상징적 표현이 뛰어나면서 해학적인 비율과 구성, 구도는 회화 장르 중에서 매우 독특하다. 옛 그림의 모방이 아니라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민화를 재창조하는 작업이 시작되었고, 나는 많은 자료수집과 관련 저술을 통한 학습을 하며 민화를 이해하려 했다.

‘오래된 지금’, 즉 오래된 서랍장과 그림들을 지금의 것으로 만드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의외로 작업이 까다로웠다. 10cm 정도의 서랍 깊이 안에 세필로 서너 번의 덧칠을 한다는 것이 만만치 않았고, 몸을 비틀면서 앉았다 서기를 반복하다 보니 피로도는 상승되고 있었다. 이렇게 하여 겨울이 오고 해를 넘기고서야 여러 개의 상징적인 만물 문양을 하나의 내용으로 모아 재창조된 36개의 작업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림의 내용과 부합되는 각종 모양의 연적을 오브제로 부착하였다.

마침 모아두었던 함지박과 됫박, 거울, 경대, 연적 등을 적절하게 조합하여 독립적인 작품으로 표현하였다. 이 물건들도 각각의 사연이 있는 오래된 것들이다. 시인 이상의 시 <거울>을 모티브로 하는 작품과 상서로운 문양과 민화를 응용해 좀 더 입체적인 작업도 하였다.

옛것은 이젠 지금의 것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