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적 결정론의 통제를 해체하는 미완의 작업들, 현재만을 살려내는 작업들
내 작업에서 연대기적 순서란 의미가 없다. 새로운 작업과 옛 작업이라는 구분이 무색하고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마치 물이 땅에 스며들다가 언젠가는 다시 솟구치듯이, 하나의 작업으로의 완결성을 인정하지 않은 채 이어지고 잠기고 다시 번진다. 이런 시대착오적 흐름들은 한 방향의 시간을 살지 못하고 배회하거나 반복, 퇴행, 분산, 순환한다. 머리와 꼬리가 따로 없는 이러한 생리가 내 작업에서 구작과 신작이라는 개념의 구분을 의미 없게 만들고, 제작의 연대기적 순서와는 무관하게 겉돌게 한다.
내 작업을 끊임없이 새롭게 만드는 상황과의 조우를 통해 모든 철학적 결정론(아키즘)들의 미학적 통제를 헤집고 틈을 내고 작업 자신의 안과 밖을 헐고 가로지르는 아나키스트적 힘은 이미 그 자체가 표현 불가능한 비확정적인 모습이다. 흔히 ‘작품(作品, works)’이라는 말을 쓸 때 우리는 이미 유기적 완성체라는 비평적 명제가 함축된 의미를 알게/모르게 표명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유기적 완성체를 동경하는 ‘작품’이라는 개념은 벌써 결정론적 세계관에 입각된 (형이상학적) 예술론이라는, 일종의 통제론(아키즘, archism)에 억압당해 있는 것이거나 그런 미적 확정론에 암암리 승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가성(自家性 auto-affection)의 자폐적 존재로서 "작품"의 개념에 대한 대안적 활성론의 형성 계기는 작가 중심이 아닌, 작업의 생성적 작동 구조에서 탄생한다. 내 작업을 통해서 나타나는 개념들 또는, 내가 사용하는 개념들은 내 작업 세계를 규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서 발굴된 개념들을 다시 사용하여 내 작업을 더욱 삐걱거리게 하기 위함이다. 그것은 결국 삶의 감각을 변화시키고 확장하게 하는 힘으로서, 무엇보다 개념의 바깥을 지각(각성)하고자 함이다.
- 19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