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도록_벽 없는 도서관

2025.02.08 – 05.03

갤러리 R
오픈 : 매주 화요일-토요일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휴관 : 매주 일요일, 월요일

기획 : 갤러리 R 황영배 대표
연출 : 갤러리 R 류병학 큐레이터

초대작가
강진이 김남훈 김상연 김성수 김 을 김주영 김태헌 김해민 김희진 도수진
류제비 박기원 박정용 박정기 손부남 손현수 안시형 이기본 이민정 이상홍
이유미 이유진 이인현 이현무 장경국 장지아 정석희 정주희 최상흠 탁영호
하봉호 허구영 홍명섭 & 류병학


전자도록_벽 없는 도서관. 갤러리 R 2025

글쓴이
류병학은 독일 슈투트가르트 국립예술대학(Staatliche Akademie der Bildenden Kunste Stuttgart)을 졸업하고 미술평론가(art critic) 및 독립큐레이터(Independent curator)로 활동하고 있다.

독립큐레이터 류병학의 대표적 기획전시는 다음과 같다. 1994년 폴란드에서 기획한 <피스모 이 오브라스(pismo i obras)>, 1997년 독일 구체예술을 위한 파운데이션(Stiftung fur Konkrete Kunst, Reutlingen)의 윤형근(YUN Hyong-keun) 개인전, 1998년 금호미술관(Kumho Museum)의 <그림보다 액자가 더 좋다(The frame is better than the picture)>, 2000년 서울시 주최의 미디어시티_서울(mediacity_seoul)의 ‘서브웨이 프로젝트(Subway project)’, 2006년 부산비엔날레 바다미술제(Busan Biennale Sea Art Festiva), 2010년 인천국제디지털아트페스티벌(Incheon International Digital Art Festival)의 ‘모바일 아트(Mobile art)’, 2012년 여수세계엑스포(EXPO 2012 YEOSU KOREA) SK 파빌리온(Pavilion)의 아트디렉터를 맡아 국내외 대형전시들을 기획했다.

미술평론가 류병학은 1994년 <이우환의 입장들들(Positions of Lee Ufan)>(씨네월드), 1998년 <그림보다 액자가 더 좋다>(금호미술관), 2001년 <일그러진 우리들의 영웅(Our Distorted Her)>(아침미디어), 2002년 <이것이 한국화다(This is the Korean painting)>(아트북스) 등 50여권의 단행본이 있다.

연출가 류병학은 2001년 입체영화(three-dimensional film) <도자기전쟁(War of Ceramics)>의 시나리오 작가 및 감독, 2012년 아르코예술대극장에서 공연한 총체극 <더 라스트월 비긴스(The Last Wall Begins)>의 연출도 맡았다.

류병학의 대표적인 수상은 1990년 독일 금속노조상(IG Metall Prize), 2008년 노무현 대통령상이 있다.


전자도록_벽 없는 도서관. 갤러리 R 2025

“출판사 KAR이 그동안 50여권의 전자도록(digital-catalogue)을 발행하였습니다. 출판사 KAR이 2021년 12월부터 전자도록을 발행하기 시작했으니 한 달에 한 권을 발행한 셈이네요. 그래서 2025년 첫 기획전으로 ‘전자도록전’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작년 가을 출판사 KAR 황영배 대표가 나에게 ‘전자도록전’을 제안했다. 머시라? 출판사 KAR은 어떻게 탄생한 것이냐고요? 2021년 여름 나는 서울의 모처에서 고딩 친구들을 만났다. 당시 만난 고딩 친구 황영배 정치학박사는 미국조오지아대학교(University of Georgia)와 클레어몬트대학원(Claremont Graduate School) 그리고 오하이오 주립대(Ohio State University)에서 객원교수(Visiting Professor)로 활동하다 귀국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3년만에 만난 황 박사는 나에게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물었다. 당시 나는 독립큐레이터와 미술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난 나의 졸고(평론)를 영어로 번역하고 있었다. 나의 졸고를 읽어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호흡’이 조금 긴 편이다. 황 박사는 나에게 평론 영어번역비를 어떻게 충당하는지 물었다. 난 영어번역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뛰고 있다고 그에게 답변했다.

황 박사는 나에게 영어로 번역한 평론을 어디에 사용할 계획인지 물었다. 나는 나의 영어 평론을 ‘전자-도록’으로 출판하여 해외에 소개하고자 한다고 답변했다. 당시 나는 전자-도록을 발행할 ‘리퍼블릭 오브 아트(REPUBLIC of ART)’라는 이름으로 출판사를 등록하려던 참이었다. 황 박사는 나에게 ‘영어번역비를 지원해 주겠다’고 말했다. 난 그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고 당황했다.


전자도록_벽 없는 도서관. 갤러리 R 2025

그는 나의 당황한 속마음을 꿰뚫었는지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아 지원하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황 박사는 한술 더 떠 나에게 출판사 등록도 함께 진행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법인설립도 제안했다. 이를테면 영어번역비를 지출하고 한글판과 영문판 전자도록을 발행할 수 있는 출판사도 등록할 수 있는 법인설립 말이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주) KAR(Korea Art Revelation Co., Ltd)’과 ‘출판사 KAR’ 그리고 ‘갤러리 R’이다.

황 대표가 진술한 대로 출판사 KAR은 2021년 12월부터 2024년 12월까지 한글판뿐만 아니라 영문판을 포함하여 55권의 전자도록을 발행했다. 55권(한글판 44권, 영문판 11권)의 전자도록은 갤러리 R 개관전 전자도록인 『R22』와 갤러리 R 소장전 전자도록인 『베스트 컬렉션 I』과 『베스트 컬렉션 II』를 제외하면 국내 33 작가의 개인 전자도록으로 발행되었다. 33 작가 중 여덟 작가(김태헌, 안시형, 이인현, 정석희, 탁영호, 하봉호, 허구영, 홍명섭)는 각 2권씩 발행되었다. 출판사 KAR이 발행하는 한글판 ‘전자-도록’은 국내 온라인 서점들(예스24, 알라딘, 교보문고, 밀리의 서재, 리디북스)에서, 영문판 '전자-도록'은 아마존에서 착한 가격으로 소장 가능하다.

아티스트 33인과 류병학

“드디어 44권을 완성 시켰군요!!! 꿈같은 기획과 열정이 실현되었네요. 일단 역사적 실행의 결과가 전시로 펼치게 된데 축하를 올립니다. 참여 작가 한 사람으로의 감동도!! 자축도 덧붙입니다. 불과 4년 동안에 44권의 집필이라는 경이로운 수행의 결과물들을 한자리에 선보이게 된 전시 현실을 축하한다는 이야기니 류샘께서는 멋쩍게 빼실 건 없습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일 입니까 !! ㅎㅎㅎ” - 홍명섭 작가

“진짜 대단한 집념입니다! 축하축하 드려요~!!!!” - 장지아 작가

“류 선생님, 그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전시 또한 축하드립니다 ~!!” - 김을 작가

“우공의 전설을 보는 듯 해요. 축하드립니다^^” - 김태헌 작가

“류 선생님, 그동안 글 쓰시느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어쩌면 작업하는 작가의 시간과는 또 다른 애닳음의...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심연의 시간이었을 듯합니다. 선생님과 책 작업하는 동안 작가로서 참으로 값지고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모든 작가님도 저랑 비슷한 마음이실 것 같습니다.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44권의 책 출간 축하드립니다.” - 이유미 작가

갤러리 R의 기획전 『전자도록_벽 없는 도서관』 소식을 들은 작가분들께서 저에게 격려와 축하 글을 주셨다. 작가분들의 격려와 축하 글은 이번 전시가 마치 류병학의 개인전처럼 들린다. 지나가면서 중얼거렸듯이 이번 ‘전자도록전’은 작년 가을 갤러리 R 황영배 대표가 제안해서 기획된 전시라는 점에서 이번 전시 기획자는 황영배 대표이고, 나는 작품 연출을 담당했을 뿐이다.


전자도록_벽 없는 도서관. 갤러리 R 2025

나는 ‘전자도록’을 어떻게 전시할 것인지 고민했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나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의 연출을 고려했다. 하나는 관객이 전시장에서 전자도록을 직접 볼 수 있도록 다양한 디바이스(device)를 재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33 작가의 작품을 각각 한 점씩 전시하는 것이다. 다행이도 도수진 작가가 태블릿(아이패드 미니)과 pc(아이맥 27인치)를 제공해 주었고, 황영배 대표가 노트북과 스마트폰을 제공해 주어 첫 번째 미션은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나는 두 번째 미션을 해결하기 위해 갤러리 R의 소장품을 이용하기로 했다. 갤러리 R은 그동안 33명의 작가 전시를 통해 200여 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난 33명 작가의 작품 중 한 점씩을 선정했다. 일단 나는 소장품 중에 전자도록 표지에 있는 작품을 먼저 선정했다. 그리고 소장품 중에 전자도록 표지에 없는 작가의 경우는 내가 임의적으로 한 점씩을 선정했다.

나는 갤러리 R 메인홀에 테이블을 비치해 전자도록을 볼 수 있는 각종 디바이스를 설치해 놓았다. 그리고 전시장 벽면에 33명의 작가 작품들을 연출해 놓았다. 황 대표는 33명 작가의 작품들 옆에 마치 ‘작품캡션’처럼 전자도록 표지를 인쇄해 부착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전시한 작품 중에 전자도록 표지 작품은 일부이고 대부분 작품이 표지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황 대표의 제안을 수용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전자도록전’은 33 작가 여러분의 적극적인 도움 없이는 현실화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자리를 빌려 33 작가 여러분께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그리고 저의 졸고를 출판해 주신 출판사 KAR 황영배 대표에게도 감사드린다. 또한 전자도록을 편집해 주신 최윤정 디자이너에게 배꼽 인사드린다.


전자도록_벽 없는 도서관. 갤러리 R 2025

전자도록 비하인드 스토리

나는 1980년 중반 독일 유학 시절에 독일의 서점을 종종 방문했었다. 나는 특히 미술뿐만 아니라 사진, 패션 그리고 건축 및 실내인테리어 등의 서적을 다루는 예술전문서점을 즐겨 방문했다. 무엇보다도 나의 눈에 띄었던 것은 아티스트의 개인 도록이었다. 두툼한 분량의 도록은 주로 국공립미술관의 기획전을 통해 제작된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출판물로 등록된 것이었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국내 서점에서는 출판물로 등록된 도록을 찾아볼 수 없었다. 당시 국내 미술계의 자료집은 출판사를 통해 ‘도록’으로 출판되기보다 작가들이 개인적 취향에 따라 편집 디자인한 것을 인쇄소에서 찍은 리플렛이나 팜플렛이 전부였다. 따라서 그것은 대부분 판매용이 아니라 관객 선물용으로 사용되었다. 그 점은 오늘날까지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물론 도록을 출판사에서 발행하려면 그만큼 내용이 담보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기존 1장짜리 서문과 작품 이미지들로 이루어진 기존 팜플렛을 도록으로 출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1990년대 독일에 거주하면서 크고 작은 전시를 기획했다. 그러다 우연히 1990년대 말 한국에서 전시회를 기획하게 되었다. 1998년 금호미술관에서 열린 『그림보다 액자가 더 좋다』가 그것이다. 당시 난 그림의 ‘액자’를 모티브로 국내 회화사를 읽어 보는 기획전을 위해 1년간 글쓰기를 준비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금호미술관의 『그림보다 액자가 더 좋다』였다. 하지만 당시 나의 졸고 『그림보다 액자가 더 좋다』는 정식출판물이라기보다 금호미술관에서 인쇄소에 맡겨 제작한 것이었다.


전자도록_벽 없는 도서관. 갤러리 R 2025

2002년, 안양의 석수동 재래시장(在來市場)에 위치한 열 평 남짓한 창고를 개조한 일종의 ‘대안공간’인 스톤 앤 워터(ston & water)에서 나는 『리빙 퍼니처(Living Furniture)』라는 타이틀로 기획전을 오픈했다. 기획전 『리빙 퍼니처』는 전시공간을 가정집으로 연출하여 집안의 ‘살림살이’들을 작품으로 전이시킨 전시였다. 물론 난 『리빙 퍼니처』를 위해 1년간 글쓰기를 행했다. 스톤 앤 워터는 『리빙 퍼니처』를 발행하기 위해 서둘러 출판사 아침미디어를 등록했다. 그렇게 해서 발행된 것이 아침미디어의 『리빙 퍼니처』였다.

나는 2006년 부산비엔날레 바다미술제 예술감독으로 선정되었다. 당시 1년간 전시기획을 준비한 내용을 아트북스 정민영 대표와 논의하여 아트북스에서 도록으로 출판했다. 나는 정 대표에게 독일의 카셀 도큐멘타 도록을 보여주면서, 카셀 도큐멘타 도록이 유럽의 유명 출판사에서 출판한 것임을 상기시켰다. 정 대표는 2006년 부산비엔날레 도록을 출판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해서 발행된 것이 아트북스의 『리빙 퍼니처/퍼블릭 퍼니처(Living Furniture/Public Furniture)』이다. 그것이 국내 미술전문 출판사에서 아마 처음으로 국내 기획전 도록을 정식으로 출판물을 발행한 사례일 것이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국내 서점에 있는 서적들은 모두 출판사에서 발행한 서적들이다. 2020년 나는 출판사를 통해 기존 ‘종이-도록’이 아닌 ‘전자-도록’ 발행을 고려했다. 내가 전자도록을 고려한 이유는 국내 작가들을 해외에 소개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전자도록을 발행하기 위해 일단 기존 ‘전자책(e-book)’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보았다. 왜냐하면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전자도록’을 발행하는 출판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자도록_벽 없는 도서관. 갤러리 R 2025

‘전자-도록’과 ‘종이-도록’은 서로 장단점이 있다. ‘전자-도록’은 스마트폰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반면, 독특한 편집디자인을 할 수 있는 ‘종이-도록’과는 달리 현재는 기계적 편집만 가능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전자-도록’을 지향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작품 이미지 해상도 때문이다. 물론 ‘종이-도록’의 경우도 고급인쇄를 한다면 작품 이미지 해상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해상도가 높은 이미지를 얻고자 하는 만큼 제작비용은 더 들게 될 것이다. 따라서 난 대부분의 ‘종이-도록’보다는 해상도 높은 작품 이미지를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전자-도록’을 채택했다. 더욱이 ‘전자-도록’은 ‘종이-도록’과 달리 제작비용이 저렴하고, 배송 등의 비용이 절감되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저렴하게 판매할 수 있다.

나는 출판사 KAR 황영배 대표와 상의 끝에 ‘전자-도록’ 가격을 ‘착한 가격’으로 책정하기로 했다. 한글판 전자도록은 5000원에 그리고 영문판 전자도록은 5달러로 책정했다. 출판사 KAR 전자도록은 전국 고등학교 및 대학교 (전자)도서관뿐만 아니라 각 지자체 시립도서관 그리고 국회도서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또한 은행 등에서 소장해 무료로 열람할 수도 있다.

벽 없는 도서관(library without walls)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Das Kunstwerk im Zeitalter seiner technischen Reproduzierbarkeit)』은 흔히 벤야민을 현대 매체미학의 선구로자 평가받게 한 텍스트로 간주한다. 오늘날 모바일을 떠나서 살 수 없는 우리처럼 벤야민은 기술복제시대 사람들 역시 새로운 기술혁신에 의존하게 되는 것에 주목한다. 그는 기술복제시대의 매체 중 특히 사진과 영화에 주목했는데, 그는 사진과 영화로 인해 전통적인 예술개념이 변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본다. 물론 그의 예언은 적중했다.

앙드레 말로(Andre Malraux)의 『상상의 박물관(Le Musee Imaginaire)』은 ‘사진 복제품’에 주목한다. 그는 사진 복제품을 통해 세계 각지에 있는 모든 작품을 볼 수 있음을 간파한다. 그것이 바로 ‘상상의 박물관’이다. 말로의 ‘상상의 박물관’은 예술작품들을 사진으로 복제한 일종의 ‘도록(화집)’을 뜻한다. 따라서 다양한 예술작품들이 도판들로 실린 박물관의 도록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예술작품들을 만나게 할 수 있는 일종의 ‘벽 없는 박물관(museum without walls)’이 되는 셈이다.


전자도록_벽 없는 도서관. 갤러리 R 2025

오늘날은 발터 벤야민과 앙드레 말로가 살았던 아날로그 기술복제시대가 아닌 디지털 기술복제시대이다. 디지털 복제시대의 사진작품과 사진도록은 모두 컴퓨터로 편집되어 디지털 프린팅으로 제작된다. 따라서 디지털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은 ‘복제’라는 개념 자체를 해체시킨다. 왜냐하면 디지털시대에는 원본(이라는 개념) 자체가 부재(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물질적’ 아날로그 포토는 특정의 장소(미술관이나 갤러리의 전시장)에서 전시되기 때문에, 관객은 특정 장소를 방문해야만 작품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비물질적’ 디지털 아트는 언제 어디서나 작품을 전시할 수 있고 감상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너무나도 ‘가벼운(비물질적인)’ 디지털 포토는 여러분의 가족과 함께 가정에서 스마트TV로, 직장 동료와 함께 사무실에서 PC로, 연인과 같이 카페에서 노트북으로 혹은 이동 중에 모바일을 통해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디지털 포토는 누구나 ‘디지털 퍼니처(digital furniture)’를 통해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민주주의적 미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이 점에 주목해 ‘디지털-도록’을 제작하게 되었다. 나는 ‘전자-도록’에 가능한 작가의 작품을 최대한 소개하고자 했다. 여기서 말하는 작가의 작품 소개는 두 가지로 언급할 수 있겠다. 하나는 문자 그대로 작가의 작품 ‘사진 이미지(도판)’를 뜻하고, 다른 하나는 작품 ‘설명’이다.

나는 ‘미술평론가’라는 이름표를 달고 작가들의 작품들에 대해 적잖은 ‘수다’를 떨었다. 말하자면 나는 작가들의 깊은 내면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들의 작품들에 대해 왈가불가했다고 말이다. 나는 ‘미술평론가’ 초기시절 작가들과 친해지지 않고자 했다. 왜냐하면 내가 작가들과 친해지면 작품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작가의 작품론을 쓰면서 특정 작가의 작품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기 위해서라도 작가와 유대관계를 가져야만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왜냐하면 특정 작가가 어떤 세계관을 가진 사람인지 말해 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작가 자신이기 때문이다.

나는 갤러리 R에서 작가들의 전시를 기획하면서 동시에 전자도록도 준비하였다. 출판사 KAR에서 발행하는 전자도록에는 작가들의 작품들에 대한 나의 졸고(작품론)도 실려있다. 나는 나의 졸고에 가능한 작가의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작가들의 작업실을 방문해 작품뿐만 아니라 성장 과정과 세계관에 관해서도 대화를 나눴다.

물론 나는 그 이후에도 작가들에게 100개가 넘는 질문지를 이멜로 보내기도 했다. 작가들은 감사하게도 나의 질문지에 세심한 답변들을 달아주었다. 나는 이 자리를 빌려 작가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이런 과정을 거쳐 쓰여진 나의 졸고는 평론이라기보다 오히려 (마치 상품 사용설명서처럼) ‘작품 설명서’에 가깝다. 따라서 나는 나의 졸고를 통해 작가의 작품에 대한 본격적인 비평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