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위에 꽃 심기

갤러리 R 기획전 이유진 개인전
『죽음 위에 꽃 심기』

갤러리 R(gallery R)은 지난 2월 개관전 를 시작으로, 류제비 개인전 『꽃과 바람과 별 그리고 소년(FLOWER, WIND, STAR and BOY)』, 박정기 개인전 『사기열전(詐欺列傳)』, 강진이 개인전 『나의 인형 이야기』, 하봉호 개인전 『와다다다!!!(WOW~DADADA!!!)』와 『사진의 기원(L'Origine de la photo)』, 최상흠 작가의 개인전 『누가 빨강, 노랑 그리고 파랑을 두려워하랴?(Who's afraid of Red, Yellow and Blue?)』를 개최하였습니다.

갤러리 R(황영배 대표)은 10월 22일부터 11월 12일까지 이유진 작가의 개인전 『죽음 위에 꽃 심기』를 개최합니다.

이유진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금속공예과를 졸업한 후 미국 디자인대학원(Cranbrook Academy of Art)을 졸업하고, 미국 뉴욕주립대학의 세계적인 패션 스쿨인 FIT 장신구디자인과와 미국 GIA(Gemological Institute of America) 보석감정 과정을 수학하고,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대학원 금속조형디자인전공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이유진은 미국 미시건 네트워크갤러리, 영국 런던의 아르케우스갤러리, 네덜란드 암스텔담의 캔버스 인터내셔날 아트 갤러리, 일본 이타미시립미술관, 베이징과 싱가폴에 있는 아트시즌, 미국 버지니아의 MK갤러리, 캐나다 벤쿠버에서 KCDA 국제 교류전, 타이완에서 KCDA 국제 교류전에 초대되었습니다.

그녀의 작품은 미국 뉴욕의 소더비(Sotheby's) 아트페어와 뉴욕의 아트페어 <아트 뉴욕(Art New York)>, 암스텔담 아트페어 <아트 암스텔담(Art Amsterdam)> 등 해외 아트페어에서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유진 작가는 이번 갤러리 R 개인전에 구작들과 함께 올해 제작한 신작들도 선보입니다. 구작들은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제작한 ‘아름다운 흉기’ 시리즈 그리고 <비너스의 두상(The Head of Venus)>(2011)과 <부처의 두상(The Head of Budda)>(2011) 또한 <파리-묵란도(Fly’s Muklando)>(2014)와 <파리-초선도(Fly’s Choseondo)>(2014)입니다. 갤러리 R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신작들은 이유진 작가가 라이프 캐스팅을 통해 제작한 8점입니다. 갤러리 R은 이유진 개인전 『죽음 위에 꽃 심기』를 아래와 같이 개최하오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전시제목 : 죽음 위에 꽃 심기

초대작가 : 이유진
전시작품 : ‘라이프 캐스팅’으로 제작한 신작 8점과 구작 17점

전시장소
갤러리R(gallery R)
서울특별시 성동구 광나루로 294 성동세무타워 B01호
TEL 02-6495-0001
e-mail galleryrkr@gmail.com
homepage galleryr.kr

전시기간 : 2022년 10월 22일 - 11월 12일
전시기획 : 갤러리 R 객원큐레이터 류병학

Artist Talk : 2022년 10월 29일(토) 오후 3시

전시오픈 : 매주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픈시간 :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전시휴관 : 매주 일요일, 월요일


 

죽음 위에 꽃 심기

갤러리 R은 10월 22일부터 11월 12일까지 이유진의 개인전 『죽음에 꽃 심기』를 개최한다. 그녀는 이번 개인전에 구작들 뿐만 아니라 신작들도 전시한다. 그녀의 구작들은 2001년부터 2004년까지 제작한 ‘아름다운 흉기’ 시리즈 그리고 <비너스의 두상(The Head of Venus)>(2011)과 <부처의 두상(The Head of Budda)>(2011) 또한 <파리-묵란도(Fly’s Muklando)>(2014)와 <파리-초선도(Fly’s Choseondo)>(2014)이다.

이유진의 신작들은 <어머니의 손>(2022)과 <해골>(2022), <눈물>(2022), <입맞춤>(2022), <십자가 비너스>(2022)와 <팔 벌린 비너스>(2022), <낯선 표면>(2022), <아비뇽의 비너스>(2022) 등 8점이다.


이유진 개인전_전시광경. 갤러리 R 2022

만약 관객이 갤러리 R에 전시된 작품들을 본다면, 이유진의 작품이 일종의 ‘낯설게 하기’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물론 그녀의 ‘낯설게 하기’는 우리에게 낯익은 것들을 접목시킨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채택한 낯익은 것들은 서로 이질적이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그녀는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비너스에 사람을 죽이거나 해치는 데 쓰는 도구인 흉기를 접목시킨다고 말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녀의 작품을 보면서 낯설고 두려운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유진의 <낯선 표면>
억압된 죽음을 삶 속으로 낯설게 회귀시키기
공존 불가능한 것을 공존시키는 언캐니를 표출

이유진의 <낯선 표면>은 일종의 ‘부조’ 작품이다. 그것은 2018년 그녀가 제작한 일명 ‘신체-부조’ 시리즈와 닮았다. 그런데 2018년 ‘신체-부조’가 남자의 얼굴과 여자의 발, 남자의 허벅지와 여자의 유방, 할머니의 손과 남자아이의 엉덩이 또한 주름진 뱃살과 여성의 성기, 비너스의 두상과 남자 다리, 부처 두상과 여자 다리, 돼지머리와 인간 발바닥 등을 접목시킨 작품이라면, 2022년 ‘신체-부조’는 남녀노소의 신체 부위들과 부처 두상 그리고 십자가와 4권의 책, 크고 작은 항아리들 또한 돌과 해골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유진_When head met foot... I_painted F.R.P. wood_212x20x60.5(h)cm. 2018


이유진_낯선 표면_FRP 위에 자동차 도료 채색_213x118x28(d)cm. 2022

머시라? 4권의 책이 무슨 책들이냐고요? 그것은 『뉴월드 잉글리시 코리안 딕셔너리(NEW WORLD ENGLISH-KOREAN DICTIONARY)』와 『음악대사전』 그리고 『모던아트』와 『한국미술의 탄생』이다. 뭬야? 왜 작가는 사전에 집착하느냐고요? 나도 모른다. 다만 그녀가 바타이유의 ‘비정형’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바타이유의 일명 ‘비평적 사전(Dictionnaire critique)’을 떠오르게 한다. 바타이유는 저널 『도큐망(Documents)』을 통해 ‘사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사전이라는 것은 단어의 의미를 더 이상 부여하지 않고 오히려 단어의 직무를 부여하는 순간부터 시작한다. 따라서 비정형은 주어진 의미를 가지고 있는 형용사이면서도, 각각의 사물은 그 자체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하며 세상의 사물을 저급하게 끌어내리는 역할을 하는 용어이다. 그것이 나타내는 바가 무엇이든 간에 거기에는 어떤 의미도 없고 거미나 지렁이처럼 도처에서 짓눌릴 수 있다. 사실, 아카데믹한 인간이 만족하기 위해서 우주는 어떤 형태를 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철학 전체의 목표는 이외에는 없다. 그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프록코트, 즉 수학적인 프록코트를 부여하는 것과 연관된다. 반면에 우주가 어느 것과도 유사하지 않고 비정형일 뿐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우주는 거미나 침과 같은 어떤 것이라고 말하게 된다.”

이유진의 2018년 ‘신체-부조’와 2022년 ‘신체-부조’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네? 십자가와 해골 등에서 암시하는 ‘죽음’ 같다고요? 그녀의 ‘신체-부조’는 라이프 캐스팅을 통해 제작된 작품이다. 라이프 캐스팅은 사람이나 사물의 표면을 떠낸다는 점에서 일종의 ‘껍데기’라고 할 수 있겠다. 말하자면 그녀의 ‘신체-부조’에는 ‘알맹이’가 부재한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그녀의 ‘신체-부조’는 ‘죽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닌가? 그 점에 관해 이유진은 필자와의 대화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작품에 표현된 완전성을 상실한 신체이자 이질적인 부분들의 결합이 만들어낸 불완전한 신체는, 그 자체로 죽음과 연관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가상과 실재, 죽음과 삶을 병치시킵니다. 나의 작품은 이처럼 무질서와 질서, 미와 추, 죽음과 삶처럼 대립된 것들을 병치시키는 모순을 통해 불가능한 가능을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또한 파괴를 통한 탈승화적이고 파편적인 신체 속에 이성적 질서가 억압시킨 죽음을 삶 속으로 낯설게 회귀시키고, 공존 불가능한 것을 공존시키는 언캐니를 표출하고자 했습니다.”

이유진의 <십자가 비너스>
허무한 삶(Vanitas)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

이유진의 <십자가 비너스>는 십자가에 여성의 뒷모습을 표현한 일종의 ‘부조’ 작품이다. 그런데 여성의 뒷모습은 머리와 사지가 절단되어 있다. 그리고 여성의 허리춤에 동백과 모란 등 다양한 꽃들과 나뭇가지들 그리고 거대한 파리와 해골이 박혀있다. 이유진은 다양한 꽃들과 나뭇가지들을 금박으로 입혀 놓은 반면, 해골은 검정 물감으로 칠해 놓았다.

흥미롭게도 이유진의 <십자가 비너스>은 머리와 사지가 절단된 신체에 마치 정물화를 심어놓은 것처럼 느껴진다. 정물화는 영어로 ‘스틸 라이프(still-life)’로 표기되는데, 그것은 문자 그대로 ‘정지된 삶’을 뜻한다. 그리고 정물화는 프랑스어로 ‘죽은 자연’이라는 뜻을 지닌 ‘나튀르 모르트(nature morte)’로 표기한다.


이유진_십자가 비너스_황동 위에 금분 채색, FRP 위에 자동차 도료 채색_79x130x25(d)cm. 2022

정지된 삶? 죽은 자연? 해골은 흔히 죽음의 상징물로 간주 된다. 따라서 해골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공포를 상징하는 것으로 사용되곤 한다. 그런데 해골은 죽은 자가 이승에 남긴 일종의 ‘흔적’이다. 따라서 해골은 부활에 대한 약속을 상징하는 것으로 간주 되기도 한다. 문득 피테르 클라스(Pieter Claesz)의 정물화 <바니타스 정물(Vanitas' still life)>(1630)이 떠오른다. ‘바니타스(Vanitas)’는 라틴어로 ‘헛되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서구에서 정물화는 흔히 ‘허무한 삶’이나 ‘인생무상’을 뜻하는 것으로 간주 된다.

하지만 티벳에서는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윤회의 과정으로 본다. 이를테면 죽음은 다시 태어나기 전에 거치는 한 과정이라고 말이다. 티벳처럼 죽음을 두려운 것이 아닌 다른 시선(?)으로 보는 것을 일컫는 말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가 있다. 라틴어 메멘토는 ‘기억’ ‘경고’ 등을 뜻하고, 모리는 ‘죽음’을 뜻한다. 따라서 메멘토 모리는 ‘죽음의 경고’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을 뜻한다. 결국 ‘죽음을 기억하라’는 격언은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한 성찰을 뜻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유진의 <죽음에 꽃 심기 I>은 우리에게 ‘삶의 성찰’을 당부하는 것이란 말인가?

머시라? 왜 작가는 십자가에 여성의 뒤태를 표현해 놓았느냐고요? 뭬야? 십자가에 매달린 성녀 빌제포르타(Wilgefortis)가 떠오른다고요? 포르투갈의 공주로 태어난 성녀 빌제포르타는 이교도 왕과 결혼시키려는 부친의 강요를 물리치기 위해 동정 서원을 발한다. 이를테면 그녀는 순결의 서약을 지킬 수 있도록 결혼을 피하게 만들어달라고 주님께 기도했다고 말이다. 결국 그녀는 결혼할 수 없는 징표로 얼굴에 수염을 돋아나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성녀 빌제포르타의 부친은 분노하여 그녀를 십자가형에 처한다. 성녀 빌체포르타의 순교는 리베라타(Liberata), 리브라다(Librada), 쿰메르니스(Kummernis), 쿠메라나(Cumerana) 등 여러 이름으로 공경을 받았단다. 네? 수염 난 여성이 십자가형 당하는 모습을 그린 보쉬(Hieronymus Bosch)의 <성녀 빌제포르타의 순교(The Crucifixion of Saint Wilgefortis)>(1497경)가 떠오른다고요?

이유진의 <아비뇽의 비너스>
매혹과 혐오의 비너스
남성의 관음증을 박탈하는 시선

이유진의 <아비뇽의 비너스>는 두 팔을 머리 뒤로 젖히고 있는 알몸의 여성을 라이프 캐스팅한 작품이다. 그런데 여성의 다리 포즈가 낯익다. 그렇다! 알몸의 여성은 한쪽 다리를 살짝 구부리는 콘트라포스트 자세로 비너스의 포즈를 하고 있다. 네? 알몸의 여성 모습이 어디선가 보았던 포즈라고요?

이유진의 <아비뇽의 비너스> 포즈는 최초의 입체주의 작품으로 평가받는 피카소(Pablo Picasso)의 <아비뇽의 처녀들(Les Demoiselles d'Avignon)>(1907)에 등장하는 다섯 명의 여성 중에 두 팔을 머리 뒤로 젖히고 있는 여성의 포즈와 닮았다. 피카소는 이 작품의 제목을 ‘아비뇽의 창녀들(Le Bordel d'Avignon)’로 작명했다고 한다. 왜냐하면 피카소가 모델로 삼은 다섯 명의 여성이 다름아닌 바르셀로나 아비뇽 인근 사창가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논란을 의식한 비평가 앙드레 살몽(Andre Salmon)이 ‘아비뇽의 처녀들’로 바꿨단다. 당시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을 본 사람들은 모멸감을 느꼈다고 한다. 와이? 다섯 명의 여자 중에서 특히 중앙에 그려진 알몸의 두 여성은 다름아닌 관객을 바라보고 있다. 따라서 관객은 알몸의 여성들을 바라보면서 모멸감을 느낀다.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냐고요?

흥미롭게도 알몸의 여자는 관객을 향해 '뭘 봐!'라고 말하는 것으로 적어도 필자에게 느껴진다. 뭘 봐? 글타! 이 단어는 남자화장실 문짝이나 벽면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이를테면 남자 화장실의 문짝이나 벽면에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처럼 두 다리를 쩍 벌리고 있는 여자의 음부가 그려져 있다고 말이다.

남자들은 그 그림을 즐기지만, 그것도 잠깐! 그 그림 옆에 쓰여져 있는 ‘뭘봐!’라는 단어를 보게 되면 모멸감을 느끼게 된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죠? 대한민국 남자들이 화장실에 느낀 그 모멸감을 1907년 <아비뇽의 창녀들>을 본 불란서 남자들이 느꼈던 것 같다. 와이? 혹 그들은 그들을 향해 당당하게 바라보는 알몸의 여자 시선에 그들의 관음증, 즉 훔쳐보기를 박탈당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유진_아비뇽의 비너스_FRP 위에 자동차 도료 채색_57x37x165(h)cm. 2022

자,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원점? 이유진의 <아비뇽의 비너스> 말이다. 두 팔을 머리 뒤로 젖히고 있는 알몸의 여성은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우리는 아름다운 몸매의 여성을 바라본다. 그리고 우리는 그녀의 뒤태를 보기 위해 그녀의 뒤로 발걸음을 옮긴다. 헉!!! 그녀의 등에 손자국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그 손자국은 남자의 손이 아닌 여성의 손이다. 더욱이 그 여성의 손은 주름이 있는 늙은 여성의 손이란 점이다.

머시라? 이유진의 <웅크린 비너스>가 떠오른다고요? 그렇다! 그녀의 <웅크린 비너스> 등에는 손이 양각(凸)으로 표현된 반면, 그녀의 <아비뇽의 비너스> 등에는 손이 음각(凹)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녀의 <아비뇽의 비너스>는 <웅크린 비너스>와 마찬가지로 미로 상징되는 젊은 여성의 알몸에 추로 간주되는 늙은이의 손을 ‘동거’시킨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미와 추, 매혹과 혐오를 동시에 보여준다.


이유진_Crouching Venus_painted FRP, glass_38x48x92(h)cm. 2018

그렇다면 여성의 등에 손을 양각으로 표현한 것과 음각으로 표현한 것 사이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유진의 <웅크린 비너스>는 늙은 여성의 손을 얻어 놓은 것이라면, 그녀의 <아비뇽의 비너스>는 늙은 여성의 손이 마치 젊음의 몸을 갉아 먹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그녀의 <아비뇽의 비너스>는 <웅크린 비너스>에서 죽음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이유진의 <어머니의 손>
검버섯에 큐빅으로 수놓기
검버섯은 ‘저승꽃’이 아니라 ‘탄생 꽃’

이유진의 <어머니의 손>은 연약한 손에 영롱하게 빛나는 다이아몬드(Diamond)들이 박혀있는 작품이다. 아니다! 그것은 다이아몬드가 아니라 아름답게 빛나는 큐빅(cubic)이다. 머시라? 왜 작가는 손에 큐빅들을 심어놓았느냐고요? 일단 연약한 손을 보도록 하자. 연약한 손은 여성의 손이다. 그런데 손에 주름들이 적잖다. 그렇다! 그 여성의 손은 여성 노인의 손이다.


이유진_어머니의 손_지르코니아 큐빅, 925 , 레진 위에 자동차 도료 채색_24x9.5x9(h)cm. 2022

그렇다면 여성 노인의 손에 심어놓은 반짝이는 큐빅들은 검버섯이란 말인가? ‘검버섯’이라는 용어는 전문 의학적 용어가 아니라 검게 보이기 때문에 불러지게 된 것이라고 한다. 검버섯은 얼굴을 비롯하여 손 등 다양한 부위에 발생한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검버섯은 주로 노년층의 피부에 나타나는 거무스름한 얼룩이다.

이유진의 <어머니의 손>은 작가 어머니의 손을 라이프 캐스팅한 것이라고 한다. 작가는 노년의 어머니 손에 발생한 검버섯들을 아름다운 큐빅들로 수놓았다. 따라서 그녀의 <어머니 손>에 핀 검버섯은 ‘저승꽃’이 아니라 ‘탄생 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영원히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유진의 <해골>
죽음에 심어진 금니

이유진의 <해골>은 제목 그대로 해골을 라이프 캐스팅한 작품이다. 물론 그녀가 사용한 해골은 실제 해골이 아니라 공장에서 플라스틱으로 대량생산한 해골이다. 따라서 그녀의 ‘해골’은 인간의 해골을 본을 떠서 만든 해골을 다시 본을 떠서 만든 셈이다. 그녀는 캐스팅한 해골에 검정 물감으로 도색해 놓았다.


이유진_해골_24K 금박, FRP 위에 자동차 도료 채색_15x20x16(h)cm. 2022

필자는 이유진의 ‘검정 해골’을 먼저 측면에서 보았다. 측면에서 본 해골은 두개골의 라인을 드러낸다. 필자는 해골의 측면에서 자리를 옮겨 정면의 해골을 보았다. 오잉? 해골의 이빨들 중 하나가 금니가 아닌가! 이를테면 이유진은 앞니들 중 하나인 측절치에 금니를 심어놓았다고 말이다.

인간은 금을 옛부터 귀하게 여겼다. 따라서 사람들은 금으로 화폐나 각종 장신구나 예술품을 만들었다. 물론 이유진의 <해골>에서 보았듯이 금은 치아의 보철로도 사용되고 있다. 이유진은 <해골>의 이빨에 사람들이 좋아하는 금을 심었다. 죽음에 심어진 금니는 찬란하게 빛난다.

이유진의 <눈물>
검은 눈물의 배꼽

이유진의 <눈물>은 제목 그대로 눈물 형상을 거대하게 제작한 조각 작품이다. 눈물은 슬플 때뿐만 아니라 기쁠 때도 흐른다. 그런데 이유진은 거대한 눈물을 검정 물감으로 도색해 놓았다. 검은 눈물은 흔히 슬픈 눈물을 상징한다. 그런데 그녀의 <눈물>에 배꼽이 하나 있는 것이 아닌가!


이유진_눈물_FRP 위에 자동차 도료 채색_29.5x29.5x52(h)cm. 2022

눈물에 배꼽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필자는 배꼽 위로 솟아오른 눈물의 형태를 보면서 탯줄을 떠올렸다. 탯줄은 모체의 태반과 태아의 배꼽을 연결한다. 태아는 탯줄을 통해 모체로부터 영양분과 호흡에 필요한 산소를 공급받는 반면, 모체는 태아로부터 나온 이산화탄소와 요소 등 노폐물을 받는다.

이유진의 <입맞춤>
죽음의 키스

이유진의 <입맞춤>은 제목 그대로 두 사람이 서로 키스하는 장면을 제작한 조각 작품이다. 그런데 두 사람은 흥미롭게도 서로 닮았다. 그렇다! 그 두 사람은 다름아닌 작가의 모습이다. 이유진은 자신의 두상을 라이프 캐스팅하여 서로 키스하는 장면으로 연출한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죽음의 키스’를 하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이유진_입맞춤_FRP 위에 자동차 도료 채색_45x26.5x32(h)cm. 2022

문득 ‘나르시시즘(Narcissism)’이 떠오른다. 나르시시즘은 그리스 신화에서 호수에 비친 자기 모습에 반하여 물에 빠져 죽어 수선화가 된 나르키소스(Narcissos)라는 미소년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프로이트는 자기 자신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는 것, 즉 리비도(libido)의 힘이 자신의 내부로 향하는 것을 나르시시즘이라고 보았다.

이유진의 <입맞춤>은 마치 나르키소스가 물에 비친 자신의 분신을 사랑하듯 같은 두 사람이 서로 사랑의 키스를 하고 있다. 그(들)은 눈을 감고 황홀감에 빠져있는 듯 보인다. 말하자면 그(들)은 자기 자신에게 입맞춤함으로써 희열을 느끼고 있다고 말이다. 문득 바타이유(Georges Bataille)의 에로티즘(Erotism)이 떠오른다.

인간은 몸을 가진 존재라는 점에서 불연속성을 극복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은 타자와 하나가 되고자 한다. 불연속성인 남성과 여성은 정자와 난자를 하나로 결합하여 또다른 불연속적인 존재를 잉태한다. 이를테면 남성과 여성의 개체가 ‘죽음’을 통해 새 생명이 탄생하는 연숙성을 구현하게 된다고 말이다.

물론 바타이유의 에로티즘은 일반적인 성행위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을 끌어안는 삶’을 의미한다. 따라서 그의 에로티즘은 성행위가 단순히 동물적이지 않은 ‘내적 체험’(experience interieure)‘의 차원에서 행해질 때 이루어진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의 ‘내적 체험’은 일종의 ‘오르가즘(orgasm)’인 ‘작은 죽음(petite mort)’을 뜻한다.

인간은 성행위의 절정에서 의식이나 이성 그리고 자아를 상실한다. 말하자면 인간은 성행위의 절정에서 황홀감과 동시에 죽음을 경험한다고 말이다. 물론 성적 희열은 일시적인 것이다. 그러나 에로티즘은 사회적 금기나 정신적 억압으로부터의 해방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에로티즘은 대가도 없는 에너지 ‘낭비’인 셈이다.

당 필자, ‘지뢰’로 가득한 그녀의 ‘달콤, 살벌한’ 작품세계를 겁도 없이 소요(逍遙)해 보았다. 그녀의 작품세계는 (바타이유의 목소리를 빌려 말하자면) 상이한 에로티즘의 형태가 마침내 이르는 같은 곳, 즉 상이한 사물들이 뒤섞이는, 불명료한 곳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필자는 그곳에서 ‘작은 죽음’을 체험한다. 그러나 그 체험은 비의(秘儀)의 체험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에로티즘을 타인에게 온전하게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미술평론가 류병학


이유진_팔 벌린 비너스_황동 위에 금분 채색, FRP 위에 자동차 도료 채색_152x42x59(h)cm. 2022

새로운 미술 출판문화
스마트폰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이유진 ‘전자-도록(digital-catalogue)’

출판사 KAR은 작년 12월부터 올해 초까지 한글판 전자도록을 총 23권 발행하였다. 출판사 KAR의 16권 전자도록들은 그동안 미술평론가 류병학 씨가 집필한 18명 작가(김을, 김태헌, 김해민, 도수진, 류제비, 박기원, 박정기, 손부남, 손현수, 안시형, 이기본, 이유미, 이현무, 장지아, 최상흠, 하봉호, 허구영, 홍명섭)의 작가론들과 일부 작가들이 직접 집필한 일종의 ‘전자_아트북(Digital_Art Book)’이다.

출판사 KAR은 미술계에 새로운 출판문화를 선도하고자 합니다. 미술평론가 류병학 씨는 “‘전자-도록’의 도래는 출판문화의 변화를 넘어 질적인 미술계를 조성하는데 기여하게 될 것”으로 내다보았습니다.

출판사 KAR은 이번 갤러리 R의 이유진 개인전 『죽음 위에 꽃 심기』를 위해 최상흠 작가의 전작들과 함께 미술평론가 류병학 씨의 ‘최상흠론’을 수록한 전자도록 『달콤, 살벌한 만남』을 발행한다. 출판사 KAR에서 발행한 한글판 전자도록은 온라인 서점들(예스24, 교보문고, 알라딘, 밀리의 서재)에서 구매 가능하다.

그리고 출판사 KAR은 영문판 전자도록도 발행하고 있다. 지금까지 출판사 KAR은 영문판 전자도록을 11권 발행한 상태이다. KAR의 영문판 전자도록은 아마존(https;www.amazon.com)에서 구매 가능하다.


 

달콤, 살벌한 만남
저자 : 이유진 류병학
출판사 : 케이에이알(KAR)
발행일 : 2022년 10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