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 예찬

갤러리 R의 하봉호 3부작 기획전 3부
하봉호 개인전 <껍데기 예찬>

갤러리R(황영배 대표)은 2022년 후반기 하봉호 사진전 3부작을 선보입니다. 하봉호 사진전 3부작은 ‘죽음’과 ‘탄생’ 그리고 ‘삶’을 테마로 제작한 작품들로 이루어진 하봉호 개인전들입니다. 하봉호 사진전 3부작은 다음과 같습니다.

2022.07.02 - 07.23 : 하봉호 사진전 1부
2022.08.06 - 08.27 : 하봉호 사진전 2부
2022.11.26 - 12.17 : 하봉호 사진전 3부

지난 7월 2일부터 7월 23일까지 갤러리 R에서 열린 하봉호 사진전 1부 전시타이틀은 『와다다다!!!(WOW~DADADA!!!)』였고, 부제는 ‘한 걸음 더 너에게로(one step closer to you)’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8월 6일부터 8월 27일까지 하봉호의 두 번째 개인전 『사진의 기원(L'Origine de la photo)』을 개최했습니다. 갤러리 R은 오는 11월 26일부터 12월 17일까지 하봉호의 세 번째 개인전 『껍데기 예찬』을 개최합니다.

미술평론가 류병학은 하봉호 사진작가를 “국제미술계에 맞짱 뜰 수 있는 사진작가”로 보았다. 그런데 ‘하봉호’를 미술계에서 아는 사람은 극히 일부일 것 같다. 혹 그가 신인이냐고요? 아니다! 그는 1957년생으로 환갑을 넘어선 작가이다. 그렇다면 그가 국내 미술계에서 활동하지 않았느냐고요? 그는 국내외 미술계에서 ‘가끔’ 활동한다.

하봉호는 1986년 일본 오사카 예술대학 사진학과를 졸업하고, 일본대학교 사진대학원 연구과정 2년을 졸업했다. 그는 1986년부터 1992년까지 일본 포토마스 스튜디오(Photomas studio)와 ㈜포톰(POTHOM)에서 근무했다. 이후 그는 한국으로 귀국하여 1994년 빛과 사진을 만드는 집단 ‘하와모두(hawamodu)’를 설립한다. 현재 그는 ‘하와모두’의 대표이면서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하봉호는 사진과 영상 작품을 주로 작업한다. 일단 그가 참여한 전시회들을 나열하도록 하겠다. 2016년 부산비엔날레, 미디어+아트 패러다임 2016 세계미학자대회 대중예술축전 특별전(아트센터 화이트블럭), 이것은 기술이 아니다(정다방프로젝트), Art in Life(갤러리 양산), 2013년 ART MAP 2013 마을프로젝트(정선), 2012년 평창비엔날레, 2010년 디지페스타(광주비엔날레관), 2009년 아시아 아트 비엔날레(Asia art Biennale, 국립대만미술관), 2009년 프라하비엔날레, 2008년 봄날은 간다(광주시립미술관), 2007년 한국현대미술제(예술의 전당)과 5028(갤러리 이룸 개관 기념 초대전), 2004년 사진의 방향(실크 갤러리), 2002년 한국 미술의 자화상(세종문화회관 미술관), 1994년 한국 현대 사진의 흐름전(예술의 전당), 1988년 사진 새 시좌전(워커힐미술관) 등이다.

하봉호가 굵직한 국제전들에 초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미술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무엇일까? 사실 그의 전시회 경력은 앞에서 나열한 전시회가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평론가 류병학이 하봉호를 국제 사진계에 맞짱 뜰 수 있는 국내 사진작가로 간주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봉호는 카메라의 시스템을 뒤집는 사진 작업을 하는 독특한 사진작가이다. 그는 사진의 메커니즘을 몸으로 습득하여 아트 사진을 ‘찍는다’라기보다 차라리 ‘창조한다’라고 말하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그는 사진을 통해 사진을 벗어나려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그의 ‘솜-사진’은 혁명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그것은 2차원적 평면인 인화지가 아니라 솜뭉치 위에 사진을 프린트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의 ‘솜-사진’은 애디션이 없는, 즉 북제 불가능한 작품이다.”

하봉호 작가는 이번 갤러리 R 세 번째 개인전에 올해 제작한 신작들만 선보입니다. 쿠킹 호일(Cooking foil) 위에 사진을 프린팅한 ‘사물’ 시리즈 3점(망치, 돌, 붓), 쿠킹 호일로 작업한 조각작품 2점(껍데기 I, 껍데기 II), 한지에 사진을 프린팅한 대작 <빅 픽처(Big Picture)>, 솜(cotton) 위에 사진을 프린팅한 ‘솜-사진’ 시리즈 6점이 그것이다. 갤러리 R은 하봉호 개인전 『껍데기 예찬』을 아래와 같이 개최하오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전시제목 : 껍데기 예찬
초대작가 : 하봉호

전시작품 : 쿠킹 호일 조각작품 2점, 쿠킹 호일 부조작품 3점, 한지 위에 컬러로 프린트한 사진 1점, 솜(cotton) 위에 사진을 프린트한 작품 6점

전시장소
갤러리R(gallery R)
서울특별시 성동구 광나루로 294 성동세무타워 B01호
TEL 02-6495-0001
e-mail galleryrkr@gmail.com

전시기간 : 2022년 11월 26일 - 12월 17일
작가와의 대화 : 2022년 12월 3일(토) 오후 3시

전시기획 : 갤러리 R 객원큐레이터 류병학

전시오픈 : 매주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픈시간 :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전시휴관 : 매주 일요일, 월요일


껍데기

문장1 ;
테살로니카 피가로 매일 가서
그들 중 일부는 좋은
텔레비전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숫자를 확인해 보세요
그리고 모든 소녀의 어머니는
다른 남자의 쓰레기 더미를 깨웠다

문장2 ;
어쩌면 내가 사는 이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인간들이 본질에 접근하기 어려운 언어로
만들어져서
어쩔 수 없이 껍데기나 핥다가 죽어가는
껍데기일지도 몰라

놀랍게도 문장1과 문장2는 같은 말이다

- 2022년 11월 곤지암 작업실에서 하봉호


하봉호의 조각작품 ‘껍데기’ 시리즈

만약 관객이 갤러리 R로 들어선다면 두 점의 조각작품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하나는 은색-조각이고, 다른 하나는 검정-조각이다. 은색-조각은 여성의 알몸을 조각한 것인 반면, 검정-조각은 남성의 알몸을 조각한 것이다. 그 인체 조각들은 한결같이 얼굴과 양팔이 부재한다. 이를테면 그것은 얼굴과 양팔이 절단된 인체-조각이라고 말이다.

머시라? 그들이 어디선가 보았던 모습이라고요? 그렇다! 그것은 백화점의 쇼윈도(show window)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남녀 마네킹(mannequin)과 닮았다. 그렇다면 그것은 남녀 마네킹을 모델로 삼아 조각한 것이란 말인가? 전시장에 설치된 남녀 조각은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따라서 관객은 우선 여성 조각의 뒷모습을 보게 된다.

은색-조각은 눈부시게 아름다운 알몸 여성의 바디라인을 드러낸다. 이를테면 그것은 ‘개미허리’와 탄력 있는 히프 그리고 미끈한 다리를 뽐낸다고 말이다. 관객은 황홀한 은빛 여성의 알몸 조각에 반해 한 걸음 다가선다. 관객은 아름다운 뒤태를 자랑하는 알몸 조각의 앞모습이 궁금한지 발걸음을 옮긴다.

오잉? 볼륨 있는 유방과 탄탄한 복근 그리고 미끈한 허벅지를 지닌 은색-조각은 다름아닌 알루미늄의 호일(foil)로 제작한 것이 아닌가! 만약 당신이 은빛 알몸 여성의 바디라인에서 나타나는 이음새 부분과 머리가 잘린 목 부분을 보면 얇은 은박 쿠킹 호일(Cooking foil)로 제작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뭬야? 은색-조각은 여자 마네킹을 보고 조각한 것이 아니라 여자 마네킹에 은박 쿠킹 호일로 떠낸 것 같다고요? 그렇다! 그것은 알몸의 여성 내부가 텅 빈 조각이다. 이를테면 아름다운 여체조각은 ‘알맹이’가 부재하는 얄팍한 ‘껍데기’ 조각이라고 말이다. 하봉호는 참을 수 없이 가벼운 은색-조각을 <껍데기 I>로 작명한다. 그런데 관객이 입체작품 <껍데기 I>을 보고자 몸을 움직이면, 가냘픈 ‘여체조각’은 관객이 일으킨 미세한 바람에도 일렁이게 된다. 따라서 조각작품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관객이 하봉호의 <껍데기 I>을 보고 난 다음 몸을 돌리면 검정-조각이 나타난다. ‘검정-조각’은 남성의 빵빵한 가슴과 탄탄한 복근 그리고 ‘꿀벅지’를 드러낸다. 물론 검정 알몸 남성 조각 역시 남자 마네킹을 검정 알루미늄으로 캐스팅(casting)한 것이다. 만약 관객이 검정-조각의 뒷모습을 본다면, 남성 조각의 등이 찢어져 텅 빈 조각 내부를 보게 될 것이다. 하봉호는 그 검정-조각을 <껍데기 II>로 작명한다.

하봉호는 사진작가이다. 그런데 그는 전시장 초입에 조각작품을 전시해 놓았다. 와이? 왜 하봉호는 호일로 남녀 마네킹을 떠낸 ‘껍데기’ 조각을 한 것일까? 그의 조각작품 ‘껍데기’ 시리즈가 사진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하봉호_껍데기 I_쿠킹 호일(Cooking foil)


하봉호_껍데기 II_쿠킹 호일(Cooking foil)


하봉호의 부조작품 ‘사물’ 시리즈

자, 이번에는 하봉호의 부조작품인 ‘사물’ 시리즈를 보도록 하자. 그것은 쿠킹 호일 위에 사물들(망치, 돌, 붓)을 부착하여 벽면에 설치한 것이다. 머시라? 당신이 망치를 측면에서 보니 쿠킹 호일에 부착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요? 이를테면 쿠킹 호일과 망치가 만나는 경계선을 보면 망치의 끝부분이 마치 쿠킹 호일 안으로 사라져 온전한 망치의 형태를 드러내지 못한다고 말이다.

무슨 말인지 접수가 되지 않는다고요? 만약 당신이 쿠킹 호일에 밀착된 망치의 머리 부분인 쇠를 보면 뾰족한 쇠 앞부분과 둥근 뒷부분이 온전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쿠킹 호일에 부착된 망치가 진짜 망치가 아니란 말인가? 그것은 실재 망치를 쿠킹 호일로 캐스팅한 것에 살재 망치를 찍은 사진을 프린트한 것이다.

뭬야? 어떻게 쿠킹 호일로 개스팅한 ‘호일-망치’의 측면에 사진을 프린트할 수 있느냐고요? 그것은 입체를 평면에 펼친 전개도를 떠올려 보면 될 것 같다. 우선 평평한 쿠킹 호일로 실재의 망치를 캐스팅한다. 그리고 큐킹 호일로 캐스팅한 ‘부조-망치’를 다시 평평하게 펼친다. 펼친 쿠킹 호일에 망치를 떠낸 자국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 망치 자국에 실재 망치를 찍은 사진을 프린트한다. 마지막으로 망치 사진을 프린트한 쿠킹 호일을 다시 실재 망치에 부착해 캐스팅한다.

네? 펼친 쿠킹 호일에 남겨진 망치 자국에 실재 망치를 찍은 사진을 프린트하여 다시 실재 망치에 부착해 캐스팅한다고 하더라도 실재 망치처럼 떠지지 않는다고요? 그렇다! 작가는 실재 망치를 찍은 사진을 컴에 다운받아 포토샵으로 망치의 정면과 측면들 이미지를 펼친 전개도로 작업한다. 입체 망치(의 이미지)를 평면에 펼친 전개도 사진을 망치를 떠낸 자국이 남아 있는 쿠킹 호일에 프린트한다. 그리고 망치 사진을 프린트한 쿠킹 호일을 다시 실재 망치에 부착해 캐스팅한 것이다.

하봉호는 부조작품인 ‘쿠킹 호일-망치’를 <망치>로 작명한다. ‘쿠킹 호일-돌’과 ‘쿠킹 호일-붓’ 역시 <망치>와 같은 방식으로 제작한 것이다. 말하자면 그의 <망치>와 <돌> 그리고 <붓>은 평평한 인화지(쿠킹 호일)에 망치 사진을 프린트하여 부조로 제작한 일종의 ‘부조작품’이라고 말이다. 따라서 그의 ‘부조작품’은 사진이 아니면서 동시에 사진인 셈이다. 그렇다면 그의 <망치>와 <돌> 그리고 <붓>은 부조와 사진 사이에서 놀이하는 것이 아닌가?


하봉호_망치_쿠킹 호일(Cooking foil) 위에 프린팅_34×47×3(d)cm. 2022


하봉호_돌_쿠킹 호일(Cooking foil) 위에 프린팅_50×34×2.5(d)cm. 2022


하봉호_붓_쿠킹 호일(Cooking foil) 위에 프린팅_35×63×0.5(d)cm. 2022

하봉호의 대작 ‘한지-사진’

관객이 하봉호의 조각작품들과 부조작품들을 보고 나면 거대한 사진작품 <빅 픽처(Big Picture)>를 만나게 된다. 그것은 11미터가 넘는 길이에 높이는 3미터에 달한다. 따라서 관객이 <빅 픽처>를 보면 일단 크기에 압도당한다. 그의 대작 <빅 픽처>는 수많은 사람을 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작품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길거리에서 우산을 쓰고 서 있는 사람들이다.

머시라? 그 사진은 어디서 본 것 같다고요? 그렇다! 그것은 그의 2008년 제작한 <레드 시그널 뉴욕 #001(RED SIGNAL NY #001)>의 부분을 차용한 것이다. 그의 <레드 시그널 뉴욕 #001>은 3미터에 달하는 높이와 6미터에 달하는 길이의 거대한 사진작품이다. 그것은 비 오는 날 미국 뉴욕의 신호등에 우산을 쓰고 서 있는 사람들을 촬영한 사진작품이다.

그런데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포커스를 잘못 맞춰진 상태에서 사진을 찍었는지 흔들린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마치 두 얼굴 혹은 세 얼굴을 가진 사람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람들과 달리 횡단보도의 가로등은 포커스가 맞춰있는 것이 아닌가! 도대체 이것은 어떻게 촬영된 것일까?

하봉호는 뉴욕의 어느 횡단보도에서 카메라를 세팅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서 있는 횡단보도 맞은편에 서 있는 사람들을 향해 ‘방아쇠’를 당긴다. 이를테면 그는 빨강 신호등이 녹색 신호등으로 바뀌기 전까지 횡단보도에 서 있는 사람들을 연속적으로 촬영했다고 말이다. 순식간에 수십 컷의 사진들이 찍힌다. 그는 그 행위를 반복한다. 수백 컷의 사진들을 겹쳐 인화한 것이 바로 하봉호의 ‘레드 시그널’ 시리즈이다. 하봉호는 그 작품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빨강 신호등이 들어오면 인간들이 걸음을 멈춘다. 곧 초록으로 바뀌고 그들이 떠나간다. 또다시 빨강으로 바뀌면 다른 인간들이 와 멈추고 그들도 초록과 함께 떠난다. 또 다음 빨강 신호등에 또 다른 인간들이 머문다. 그들도 곧 사라진다. 마치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처럼 인간들이 같은 장소에 멈춘다. 컨베이어 벨트 앞 노동자가 앞에 온 제품의 나사 조이는 일을 반복하듯 빨강 신호등에 멈춰 서는 인간들을 기록한다. 한 장소에서 비를 맞으며 8시간을...”

자,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원점? 하봉호의 <빅 픽처> 말이다. 그것은 그의 <레드 시그널 뉴욕 #001>에서 건물들을 제외한 횡단보도 신호등 앞에 서 있는 사람들만 편집하여 인화한 사진작품이다. 그의 <빅 픽처>의 길이는 <레드 시그널 뉴욕 #001> 길이보다 두 배에 달한다. 그리고 그의 <레드 시그널 뉴욕 #001> 사진인화지에 인화한 것인 반면, 그의 <빅 픽처>는 한지에 인화한 것이다.

뭬야? 도대체 하봉호는 11미터가 넘는 사진을 어떻게 작업한 것이냐고요? 폭 3미터에 길이 11미터가 넘는 한지가 있느냐고요? 그의 <빅 픽처>는 손으로 구겨진 한지 180장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하봉호는 뉴욕의 군중들을 구겨진 한지 180장에 겹치게 프린트한 다음 현장에서 벽면에 일일이 수작업을 한 것이다. 그는 하와모두 팀원들과 함께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설치를 했다.

하봉호는 180장의 한지에 프린트한 사진들을 벽면에 완벽하게 부착시키지 않고 각각의 ‘한지-사진’들 윗부분에만 두 개의 압정을 박아놓았다. 따라서 관객이 거대한 사진작품인 <빅 픽처> 앞을 지나치게 되면, 사진(들)은 관객이 일으킨 미세한 바람에도 일렁이게 된다. 따라서 사진(들)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RED SIGNAL NY #001_Digital C-Print_540cmx290cm. 2008


하봉호_Big Picture_한지에 프린팅_11M 10cm×2M 75cm. 2022

하봉호의 ‘솜-사진’ 시리즈

자, 이번에는 하봉호의 ‘솜-사진’ 시리즈를 보도록 하자. 하봉호는 첫 번째 개인전 『와다다다!!!(WOW~DADADA!!!)』에 처음의 ‘솜-사진’인 <레드 시그널 시드니 #008 솜(Red Signal SYD #008 som)>(2022)를 선보였고, 두 번째 개인전 『사진의 기원(L'Origine de la photo)』에도 ‘솜-사진’인 <몽(MONG)>(2022)을 전시했다.

하봉호는 세 번째 개인전에도 5점의 ‘솜-사진’을 선보인다. 그의 ‘솜-여성’ 시리즈는 <초록 녀>와 <검정 녀> 그리고 <뱀 녀>로 구성되어 있다. 그의 <초록 녀>는 뭉실뭉실한 솜뭉치에 초록색 옷을 입고 있는 여인을 프린트한 것이다. 그런데 그의 <초록 녀>는 얼굴에만 초점(focus)이 맞춰져 있다. 따라서 하봉호가 ‘초록 녀’의 얼굴도 초점을 맞춰 프린트하지 않았다면, 관객은 <초록 녀>가 무엇을 프린트한 것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하봉호의 <검정 녀>는 몽롱한 솜뭉치에 검은색 의상을 착용한 여인을 프린트한 것이다. 그런데 그의 <검정 녀>는 ‘세 얼굴’을 가진 얼굴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문득 하봉호의 ‘레드 시그널’ 시리즈가 떠오른다. 아마 <검정 녀>는 ‘레드 시그널’ 시리즈에 등장한 여인을 솜뭉치에 프린트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하봉호가 ‘검정 녀’의 얼굴도 초점을 맞춰 프린트하지 않았다면, 관객은 <검정 녀>가 무엇을 프린트한 것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자, 이번에는 <뱀 녀>를 보자. 그것은 뽀송뽀송한 솜뭉치에 노랑 바탕에 크고 작은 검정 점들이 인쇄된 의상을 착용한 여인을 프린트한 것이다. 그런데 노랑 바탕에 크고 작은 검정 점들이 인쇄된 의상이 솜뭉치에 마치 뱀처럼 프린트되어 보인다. 따라서 하봉호는 그 작품을 ‘뱀 녀’로 작명하게 되었다고 한다.

하봉호의 <뱀 녀>는 여자의 얼굴에서 가슴까지만 초점을 맞춰 프린트한 것이다. 따라서 관객이 얼굴에서 가슴까지를 가리고 본다면, 그것이 솜뭉치에 무엇을 프린트한 것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하봉호가 ‘뱀 녀’의 얼굴과 가슴도 초점을 맞춰 프린트하지 않았다면, 관객은 <뱀 녀>가 무엇을 프린트한 것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고 말이다.

이런 단편적인 정보는 하봉호의 ‘솜-여성’ 시리즈가 <레드 시그널 시드니 #008 솜>과 <몽>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간 작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그의 <레드 시그널 시드니 #008 솜>과 <몽>은 솜뭉치에 사진의 이미지를 절묘하게 프린트한 것인 반면, 그의 <초록 녀>와 <검정 녀> 그리고 <뱀 녀>는 솜뭉치에 사진 이미지의 일부분만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프린트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의 ‘솜-여성’ 시리즈는 솜의 특성으로 한 걸음 들어간 작품이 아닌가?


하봉호_초록 녀_솜(cotton) 위에 프린팅_49×82×3.5(d)cm. 2022


하봉호_검정 녀_솜(cotton) 위에 프린팅_53×84×4(d)cm. 2022


하봉호_뱀 녀_솜(cotton) 위에 프린팅_52×82×7(d)cm. 2022

하봉호의 ‘리처드’ 시리즈

하봉호의 ‘리처드’ 시리즈는 <리처드 I>과 <리처드 II>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그의 <리처드 I>과 <리처드 II>는 말랑말랑한 솜뭉치에 각각 다른 남자의 얼굴을 프린트한 것이다. 하봉호는 <리처드 I>을 컬러로 프린한 반면, 그는 <리처드 II>를 흑백으로 프린트해 놓았다. 그들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고, 그들의 두 눈은 부릅뜨고 관객을 바라보고 있다.

머시라? 하봉호의 <리처드 I>과 <리처드 II>는 솜뭉치에 각각 다른 남자의 얼굴을 프린트한 것인데, 왜 두 작품 제목에 모두 ‘리처드’로 표기한 것이냐고요? 나도 그 점이 궁금해서 하봉호에게 물었다. 그의 답변이다.

“저의 <리처드 I>과 <리처드 II>는 하나의 원본 사진으로 각각의 솜뭉치에 프린트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리처드’ 시리즈의 원본 사진이 한 남자의 얼굴을 찍은 사진이라고 말이죠. 같은 사진을 두 개의 솜뭉치에 프린트했는데 각각 다른 얼굴로 나타난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요? 하봉호가 <리처드 I>과 <리처드 II>에 사용한 솜뭉치는 똑같지 않다. 그가 아무리 똑같은 솜뭉치 두 개를 만들고자 하지만, 완전하게 똑같은 솜뭉치 두 개는 만들어질 수 없다. 따라서 그가 같은 원본 사진을 차이가 있는 두 개의 솜뭉치에 프린트하더라도 전혀 다른 인물이 나타난다. 왜 하봉호가 그 두 작품을 <리처드 I>과 <리처드 II>로 명명했는지 아시겠죠?


하봉호_리처드 I_솜(cotton) 위에 프린팅_36×48×21(d)cm. 2022


하봉호_리처드 II_솜(cotton) 위에 프린팅_37×50×15(d)cm. 2022

하봉호의 ‘솜-자화상’

자, 마지막으로 하봉호의 <자화상>을 보도록 하자. 그것은 솜뭉치에 흑백으로 무엇인가를 프린트한 것이다. 도대체 그는 어떤 사진을 솜뭉치에 프린트한 것일까? 네? 작품 제목인 <자화상>을 고려한다면 그것이 작가 자신의 모습을 찍은 ‘자화상’ 사진을 프린트한 것 같다고요?

만약 하봉호의 <자화상>이 솜뭉치에 작가 자신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프린트한 것이라면, 왜 인물의 이미지가 보이지 않는 것일까? 머시라? 당신이 그의 <자화상>을 보니 언 듯 얼굴의 모습을 연상케 하는 눈과 코 그리고 입이 있는 것 같다고요? 물론 당신은 그의 <자화상>에서 사람의 얼굴을 연상하는 눈과 입의 이미지를 볼 수 있다.

하지만 하봉호의 <자화상>은 ‘하봉호’라는 특정인의 이미지를 발견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 그의 <자화상>은 작가가 스스로 그린 자기의 이미지(초상화)를 볼 수 있도록 프린트하지 않은/못한 것일까? 원 모아, 왜 하봉호는 작품 제목을 <자화상>이라고 명명하면서 솜뭉치에 ‘자화상’의 이미지를 드러내도록 프린트하지 않은/못한 것일까?

하봉호의 <레드 시그널 시드니 #008 솜>과 <몽>은 솜뭉치에 원본 사진의 이미지를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프린트해 놓았다. 그의 <초록 녀>와 <검정 녀> 그리고 <뱀 녀>는 솜뭉치에 원본 사진 이미지의 일부분만 포커스를 맞춰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프린트한 것이다. 그의 <리처드 I>과 <리처드 II>는 두 개의 솜뭉치에 하나의 원본 사진으로 프린트하여 두 남자의 얼굴을 나타낸 것이다. 그의 <자화상>은 솜뭉치에 사람의 얼굴을 감지만 할 수는 있는 눈과 입만 프린트되어 있다.

이러한 단편적인 정보는 하봉호가 <레드 시그널 시드니 #008 솜>과 <몽> 그리고 ‘여성’ 시리즈 또한 ‘리처드’ 시리즈를 사진 이미지에 초점을 맞춰 프린트한 작품인 반면, 그의 <자화상>은 솜뭉치에 초점을 맞춰 프린트한 작품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를테면 그의 <레드 시그널 시드니 #008 솜>과 <몽> 그리고 ‘여성’ 시리즈 또한 ‘리처드’ 시리즈가 사진의 시각으로 작업한 것인 반면, 그의 <자화상>은 몽실몽실한 솜의 특성에 맞춰 작업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하봉호의 <자화상>은 거기서 한 걸음 더 들어간다. 그의 <자화상>은 기존의 ‘솜-사진’들과 달리 솜뭉치를 고착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벽면에 설치해 놓았다. 말하자면 그는 <레드 시그널 시드니 #008 솜>과 <몽> 그리고 ‘여성’ 시리즈 또한 ‘리처드’ 시리즈를 특별하게 고안한 접착제를 사용하여 벽면에 설치한 것인 반면, 그의 <자화상>은 아무런 접착제도 사용하지 않고 유연한 솜뭉치를 그대로 벽면에 설치한 것이라고 말이다.

따라서 하봉호의 <자화상>은 기존의 ‘솜-사진’들과 달리 변화한다. 이를테면 그의 <자화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솜뭉치가 중력에 따라 흘러내린다고 말이다. 그의 <자화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흘러내려 흑백 이미지에 균열이 생기고 급기야 흑백 이미지의 솜뭉치 일부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따라서 그의 <자화상>은 일종의 ‘흑백-추상화’로 변신한다.

바르트(Roland Barthes)는 『밝은 방(La chambre claire)』(1980)에서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가 사진의 세계에서 살아계신다고 중얼거린다. (물론 고인이 된 바르트도 우리에게 그의 어머니처럼 사진 속에서만 살아 있다.) 그런데 바르트의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진은 시간의 경과에 따라 빛바래고 서서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바르트의 어머니 사진은 ‘하얀 사진’으로 변화하게 된다고 말이다.

하봉호의 <자화상>은 ‘사진의 사라짐’을 긍정한다. 그런데 그의 사진은 ‘사진의 변화’를 관통하여 ‘사진의 사라짐’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의 <자화상>은 ‘순간의 박제’라는 사진의 개념을 전복시킨다. 왜냐하면 그의 <자화상>은 시간의 흐름과 중력으로 인해 변화하기 때문이다. 그는 사진의 변화를 통해 사진(이미지)이 일종의 ‘껍데기’임을 폭로한다. 그는 <껍데기>라는 작가노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어쩌면 내가 사는 이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인간들이 본질에 접근하기 어려운 언어로 만들어져서 어쩔 수 없이 껍데기나 핥다가 죽어가는 껍데기일지도 몰라.”


하봉호_자화상(Self-Portrait)_솜(cotton) 위에 프린팅_가변 크기. 2022



 

새로운 미술 출판문화
스마트폰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하봉호 ‘전자-도록(digital-catalogue)’

출판사 KAR은 작년 12월부터 올해 초까지 한글판 전자도록을 총 23권 발행하였다. 출판사 KAR의 16권 전자도록들은 그동안 미술평론가 류병학 씨가 집필한 19명 작가(김을, 김태헌, 김해민, 도수진, 류제비, 박기원, 박정기, 손부남, 손현수, 안시형, 이기본, 이유미, 이유진, 이현무, 장지아, 최상흠, 하봉호, 허구영, 홍명섭)의 작가론들과 일부 작가들이 직접 집필한 일종의 ‘전자_아트북(Digital_Art Book)’이다.

출판사 KAR은 미술계에 새로운 출판문화를 선도하고자 한다. 미술평론가 류병학 씨는 “‘전자-도록’의 도래는 출판문화의 변화를 넘어 질적인 미술계를 조성하는데 기여하게 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출판사 KAR은 작년 12월 하봉호 작가의 전작들과 함께 미술평론가 류병학 씨의 ‘하봉호론’을 수록한 전자도록 『나는 사진을 통해 사진을 벗어나고 싶다』를 발행했다. 그리고 출판사 KAR은 갤러리 R에서 기획한 하봉호 개인전 3부작을 묶은 전자도록 『껍데기 예찬』을 발행한다. 출판사 KAR에서 발행한 전자도록은 온라인 서점들(예스24, 교보문고, 알라딘, 밀리의 서재)에서 구매 가능하다. 그리고 출판사 KAR은 류병학 씨의 ‘하봉호론’을 수록한 영문판 전자도록 『Escape from the Photography through the Photography』를 발행하여 아마존에서 판매 중에 있다.

 

Escape from the Photography through the Photography
저자 : 하봉호 류병학
출판사 : 케이에이알(KAR)
발행일 : 2022년 7월 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