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지금

탁영호 개인전

갤러리 R

전시기간 : 2023년 2월 4일 - 3월 4일
작가와의 대화 : 2023년 2월 11일(토) 오후 3시

전시오픈 : 매주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픈시간 :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전시휴관 : 매주 일요일, 월요일

㈜ 케이에이알(Korea Art Revelation Co., Ltd)은 저평가된 국내의 작가들 발굴 및 조명, 국제 미술계에서 활동할 수 있는 작가들 발굴 및 조명, 국제 미술시장 개척 및 진출을 지향하고자 설립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 KAR은 갤러리 R(gallery R)과 출판사 케이에이알(KAR)을 운영합니다.

갤러리 R(황영배 대표)은 2022년 2월 성수동에 개관했습니다. 갤러리 R은 류병학 객원큐레이터의 기획으로 국내의 역량 있는 작가들의 개인전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출판사 케이에이알은 갤러리 R에서 전시하는 작가들의 작품세계로 한 걸음 더 들어갈 수 있는 일종의 ‘전자-도록(digital-catalogue)’을 발행하고 있습니다. 출판사 케이에이알이 발행하는 한글판 ‘전자-도록’은 국내 온라인 서점들(예스24, 알라딘, 교보문고, 밀리의 서재, 리디북스)에서, 영문판 '전자-도록'은 아마존에서 구매 가능합니다.

갤러리 R(황영배 대표)은 2023년 첫 기획전으로 만화가 탁영호의 개인전 『오래된 지금』을 오는 2월 4일부터 3월 4일까지 개최할 예정입니다. 여러분들의 깊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오래된 지금_탁영화 개인전_갤러리 R 2023

작가노트
‘오래된 지금’은 계속 현재형으로 진보할 것이다.
탁영호

몇 년 전에 나에게 값진 물건이 들어왔다. 대충 보아도 오래된 물건이었다. 그것은 100여 년 전에 프랑스의 어느 신부가 한국으로 가져온 서랍장이었고, 36개의 서랍 안에는 세월이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우선 깨끗이 닦고 수리한 후에 어디에 쓸 것인지를 고민하였다. 결론은 여러 크기의 서랍 안에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나는 36개의 다양한 표정의 인물 얼굴을 표현하려 했고, 이 표정들을 통해 시대의 흔적을 남기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몇 년의 시간 동안 방치되었다.

작년 여름에 다시 서랍을 꺼내었다. 이제는 뭔가를 그려야 할 시간이 왔다. 곰곰이 며칠을 바라보다 우리의 민화와 상징물을 표현해보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민화의 매력은 이야기가 있는 우리의 그림이다. 상징적 표현이 뛰어나면서 해학적인 비율과 구성, 구도는 회화 장르 중에서 매우 독특하다. 옛 그림의 모방이 아니라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민화를 재창조하는 작업이 시작되었고, 나는 많은 자료수집과 관련 저술을 통한 학습을 하며 민화를 이해하려 했다.

‘오래된 지금’, 즉 오래된 서랍장과 그림들을 지금의 것으로 만드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의외로 작업이 까다로웠다. 10cm 정도의 서랍 깊이 안에 세필로 서너 번의 덧칠을 한다는 것이 만만치 않았고, 몸을 비틀면서 앉았다 서기를 반복하다 보니 피로도는 상승되고 있었다. 이렇게 하여 겨울이 오고 해를 넘기고서야 여러 개의 상징적인 만물 문양을 하나의 내용으로 모아 재창조된 36개의 작업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그림의 내용과 부합되는 각종 모양의 연적을 오브제로 부착하였다.

마침 모아두었던 함지박과 됫박, 거울, 경대, 연적 등을 적절하게 조합하여 독립적인 작품으로 표현하였다. 이 물건들도 각각의 사연이 있는 오래된 것들이다. 시인 이상의 시 <거울>을 모티브로 하는 작품과 상서로운 문양과 민화를 응용해 좀 더 입체적인 작업도 하였다.

옛것은 이젠 지금의 것이 되었다.

탁영호의 ‘오래된 지금’

관객이 갤러리 R의 탁영호의 개인전 『오래된 지금』을 보기 위해 전시장으로 들어서면 무엇보다 10미터가 넘는 기다란 백색 벽면을 가득 채운 탁영호 만화가의 장편만화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그는 마치 관객이 만화 세계에 들어온 것처럼 자신의 만화를 연출해 놓았다고 말이다. 전시장 좌/우 벽면들에 빼곡하게 설치된 만화들은 모조리 작가가 직접 손으로 그린 원본 만화이다. 오른편 벽면에 설치된 만화는 탁영호의 장편만화 <도바리>(2007)이고, 왼편 벽면에 연출된 만화는 그의 중편만화 <꽃반지>(2014)이다. 나는 탁영호의 만화세계로 한 걸음 들어가고자 하는 관객을 위해 그의 전작들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소개하고자 한다.


도바리_종이에 먹, 붓_가변크기. 2016


꽃반지_종이에 먹, 붓_가변크기. 2014

탁영호(1960년생) 만화가는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였고 대학원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하였다. 그는 1980년대 초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할 때 학생운동을 하고 있었다. 당시 한국가톨릭농민회에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을 찾았는데, 그는 고등학교 때 미술부에서 그림을 그렸던 것을 계기로 전단지와 대자보에 그림을 그리게 되었단다. 당시 그의 단 컷을 본 어느 선배가 그에게 이야기 있는 만화를 그려보라고 제안한다.

1982년 탁영호는 한국가톨릭농민회의 제안을 받아 농촌문제를 형상화한 만화를 그리기 위해 농촌을 돌아다니면서 자료를 수집하고 농촌 사람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경험을 쌓아 ’땀 냄새‘ 그윽한 중편 만화를 그리게 된다. 그것이 바로 그의 「학마을 사람들 이야기」(가톨릭 농민회)이다. 이 작품은 1980년대 만화창작이 사회운동 현장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일명 민중만화운동’의 기폭제가 되었고, 이후 한국 리얼리즘 만화의 선구적인 작품으로 자리매김한다.

탁영호 ‘만화의 힘’

탁영호는 당시 글로만 정보를 얻었던 사람들에게 만화로 정보를 전달하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만화를 접한 사람들을 보면서 ‘만화의 힘’을 느끼게 되었다. 그 사례로 ‘만화대자보’를 들어보도록 하자. 1980년대 초 그는 충청북도의 어느 농촌 마을을 방문하게 되었다. 그 마을에 저수지가 있는데, 군에서 농민들에게 수세를 받고 있었단다. 그는 당시 수세가 일제 강점기의 잔재로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날 저녁 탁영호는 만화대자보를 그린다. 이를테면 그는 ‘왜 수세가 부당한가?’ ‘왜 수세를 바꿔야 하는가?’ 등 수세에 대한 문제와 해결방안을 만화로 그렸다고 말이다. 다음날 아침 그는 마을회관에 만화대자보를 부친다. 어린아이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그 만화대자보를 보고 수세의 문제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래서 농민들은 부당한 수세에 대항해 잘못된 점을 교정하게 되었다.

이후 탁영호는 군 복무를 하고 제대하여 영화 연출에 관심을 가져 영화 준비를 하였단다. 그런데 문화 운동하던 그의 선배들이 그에게 다시 만화를 그려보라고 권유한다. 1987년 6.10항쟁이 일어나자 국민운동본부에서 전단지를 제작하기 시작한다. 당시 국민운동본부에서 인쇄한 전단지 만화들은 모조리 탁영호의 몫이었다. 이후 그는 기성 만화가들과 교류하면서 만화 기술도 배우고, 만화책의 연출과 캐릭터 등도 연구하기 시작한다. 1987년 탁영호는 무크지 『만화와 시대』에 단편 「어머니」를 월간 『만화광장』에 「칼」과 「서울예수」를 발표하여 본격적인 만화가의 길을 걷는다.

1990년대 탁영호는 우연히 위안부에 관련한 서적을 접하게 된다. “종군위안부는 일제가 저지른 대규모적인 강간체계였다”라는 책의 마지막 문장이 그에게 큰 울림을 주었단다. 이후 그는 위안부를 다룬 단편 만화 「마르스와 조센삐」를 작업한다. 그의 「마르스와 조센삐」는 1997년 『빅 점프』에 실리고, 1998년 그의 첫 단편집인 『라이브 쇼』(서울문화사)에도 실린다. 그 작품은 2014년 부천만화대상을 받은 ‘위안부’ 할머니 이야기를 그린 그의 「꽃반지」 초석이 된다.

“나에게 만화란 사유(思惟)이다.”

탁영호의 만화에는 ‘무엇을 그릴까?’ ‘어떻게 표현할까?’ ‘어떻게 연출할까?’ 고민이 담겨 있다. 그는 만화를 그리기 위해 사료 수집 및 분석을 물론 현장 취재도 한다. 그는 다양한 소재를 발굴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배경과 인물을 창출해낸다. 그는 한 마디로 ‘이야기꾼’이다. 영화 연출을 꿈꾸었던 그는 만화를 선택하면서 만화의 장점을 십분 활용한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만화의 장점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화는 일단 혼자서 할 수 있거든요. 영화는 혼자 못해요. 그런데 만화는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꽹과리 치고 할 수 있어요.” 그는 그동안 300여 편에 달하는 단편 만화를 작업했다. 만약 영화로 제작하려면 일 년은 걸릴 이야기를 그는 열흘에 단편 한편을 그려낸 셈이다.

2004년 탁영호는 단행본 『단편만화를 위한 탁 선생의 강의노트』(황매)로 부천국제만화축제 만화상 ‘특별상’을 받았다. 이 책은 작가가 대학 만화과에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그는 만화를 그리기 전부터 만화를 완성하는 단계까지 차근히 언급한다. 작가는 사례로 자신이 그동안 발표해온 300여 편의 단편 만화 중 15편과 각 작품의 연출 노트를 수록했다. 따라서 이 책은 만화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길잡이가 될 것이다.

탁영호, “우리 현대사를 꼭 한 번 그려야겠다, 이것이 내가 만화를 하는 이유다.”

탁영호는 만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만화를 그려보겠다’고 다짐했단다. 물론 그는 근현대사를 재현하기보다는 극화하여 작업하고 있다. 말하자면 그는 작가주의 작업을 한다고 말이다. 2016년 그는 장편 만화 『침묵의 봄 희망의 봄 혁명의 봄』(휴머니스트)을 발표한다. 이 작품은 4.19 혁명에서 5.16 쿠데타로 이어지는 치열하고 험난했던 두 번의 봄을 다룬다. 그러나 4.19 ‘혁명’에서 5.16 ‘쿠데타’로 끝나는 이 작품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후속작을 암시한다.

2018년 탁영호는 장편 만화 『도바리』(보리출판사)를 출간한다. ‘도바리’는 독재정권의 수배를 피해 도망 다니며 민주화 운동을 하던 대학생들을 이르는 말이다. 작가는 작품에 광진이의 일기와 함께 주인공 인권의 이야기 그리고 ‘돌산의 전설’ 이야기를 액자 구조로 담아냈다. 탁영호는 “마을 노인의 입으로 전해지는 ‘돌산의 전설’은 광주에서 학살된 시민들의 한을 상징한다”고 말한다면서 “인권이 체포되기 직전 돌산이 살아나 악귀와 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36년이 지난 지금도 광주민주화운동이 여전히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 주고자 그린 것”이라고 말한다.

탁영호의 ‘오래된 지금’. 오브제+그림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원점? 탁영호의 만화 <도바리>(2016)와 <꽃반지>(2014) 말이다. 그것은 펜이 아니라 붓으로 그린 만화이다. 그런데 그는 같은 붓이지만 작품의 내용을 고려해 전혀 다른 필치로 작업해 놓았다. 이를테면 그는 <도바리>를 거칠게 표현한 반면, 그는 ‘소녀상’ 이야기인 <꽃반지>를 부드러운 필치로 그려놓았다.

2022년 갤러리 R의 개관전에 선보였던 탁영호의 2022년판 <지비>는 언 듯 보면 목판화로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한지에 아크릴물감으로 섬세하게 그린 것이다. 따라서 그의 <지비>는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만화와 차이가 있다. 차라리 그의 <지비>는 만화와 회화의 경계에 놓여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

탁영호의 만화 세계는 내용적인 면에서나 형식적인 면에서 독보적이다. 만약 당신이 36년간 작업한 그의 작품들을 모조리 조회해 본다면, 그가 꾸준히 자신의 작품세계를 업그레이드시키고 있다는 것을 보게/알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번 갤러리 R의 탁영호 개인전에 선보이는 그의 신작들을 본다면, 그의 작품세계가 새롭게 변신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관객이 갤러리 R의 첫 번째 전시공간에 연출된 탁영호의 ‘만화세계’를 관통하면 두 변째 전시공간에서 독특한 그의 신작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독특한 신작들’은 만화도 아니고 회화도 아니면서 동시에 만화이면서 회화인 작품을 뜻한다. 이를테면 그의 신작들은 만화와 미술의 경계에 놓여 있다고 말이다. 그렇다! 그의 신작들은 만화와 미술 사이에서 놀이한다.


오래된 지금_탁영화 개인전_갤러리 R 2023

탁영호의 신작들은 총 16점이다. 그 작품들은 작년부터 시작하여 올 초까지 작업한 신작들이다. 그런데 그의 신작들은 ‘종이 위에 먹’이 아니라 오래된 사물에 아크릴물감으로 그린 그림이다. 말하자면 그의 신작들은 ‘글+그림’의 만화가 아니라 ‘글’ 대신 ‘오브제’를 사용한 ‘오브제+그림’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가 차용한 오브제들은 한결같이 오래된 사물들이다.

탁영호의 <옛날 옛적에>(2033)는 오래된 서랍장의 서랍들에 그림과 오브제를 담은 작품이다. 서랍장은 100여 년 전 프랑스의 어느 신부가 한국으로 가져온 것이란다. 그 서랍장에는 크고 작은 36개의 서랍이 있다. 난 조심스럽게 서랍의 손잡이를 잡고 열어보았다. 오잉? 서랍 안에 그림과 연적을 담아놓은 것이 아닌가. 나는 궁금한 나머지 다른 서랍들도 하나씩 하나씩 열어보았다. 36개의 서랍 안에 한결같이 그림과 오브제가 담겨있었다.


옛날 옛적에_나무서랍 안에 아크릴_86x147x53cm(d). 2023

탁영호가 서랍 안에 그려놓은 그림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토박이그림’인 민화(民畵)였다. 말하자면 그는 서랍 안에 화조영모도(花鳥翎毛圖)와 어해도(魚蟹圖) 그리고 작호도(鵲虎圖)와 십장생도(十長生圖) 또한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 등을 그려놓았다고 말이다. 그런데 그가 민화의 매력에 빠진 이유가 무엇일까? 그는 민화의 매력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민화의 매력은 이야기가 있는 우리의 그림이다. 상징적 표현이 뛰어나면서 해학적인 비율과 구성, 구도는 회화 장르 중에서 매우 독특하다.”

우리가 지나가면서 보았던 탁영호의 만화는 ‘이야기가 있는 우리의 그림’이었다. 따라서 민화는 적어도 그의 만화와 문맥을 이룬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민화는 우리 생활과 밀착되어 한국적인 정서가 배어있다고 할 수 있겠다. 탁영호가 말했듯이 민화는 소박하면서도 익살스런 형태와 대담하고도 파격적인 구도, 화려한 색채 등으로 한국적 미와 한국인의 기원을 담고 있다.

탁영호가 그린 호랑이들은 민화에 등장하는 호랑이들처럼 하나같이 익살스럽고 천진난만하다. 그런데 그가 그린 호랑이는 민화의 호랑이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단순화시킨 모습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는 장수와 복을 기원하는 민화의 꽃이나 새 그리고 물고기도 단순화시켜 마치 문양처럼 표현해 놓았다. 그렇다! 그는 조선시대 민화를 재현하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로 표현해 놓았다. ‘탁영호의 스타일’은 마치 문양을 목판화로 찍은 것처럼 붓으로 그린 것을 뜻한다.

탁영호는 서랍 안에 현대판 민화를 그려놓고 오브제를 접목시켜 놓았다. 그가 각 그림에 접목시킨 오브제는 다름아닌 연적(硯滴)이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연적은 벼루에 먹을 갈 때 쓰는 물을 담아 두는 그릇을 뜻한다. 36개의 서랍 안에는 도자기로 만든 연적뿐만 아니라 옥이나 쇠붙이로 만든 연적도 설치되어 있다. 그 연적들은 탁영호가 오래전부터 하나씩 하나씩 수집했던 것이라고 한다.

나는 탁영호의 <옛날 옛적에>를 보면서 새로운 만화를 떠올렸다. 이를테면 나는 36개의 서랍을 만화의 36개 칸으로 보았다고 말이다. 물론 그 36개의 칸은 스토리가 이어지는 만화와는 달리 각각 하나의 스토리를 지닌 36가지의 컷이다. 그리고 그는 새로운 만화에 ‘글’을 ‘오브제’로 대체하여 ‘그림+오브제’로 재구성해 놓았다.

탁영호의 ‘현대판 민화’

탁영호의 개인전 『오래된 지금』은 전시타이틀 그대로 오래된 사물에 그림을 접목시킨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탁영호의 <거울> 시리즈는 시인 이상(李箱)의 시 <거울>에 대한 오마주(hommage)로 오래된 함지박과 됫박 그리고 거울 위에 아크릴물감으로 그린 작품이다. 그리고 그의 또 다른 ‘거울’ 시리즈(<만복>, <귀면도>, <호랭이 뿔>)는 옛 경대 거울 위에 아크릴물감으로 그린 작품이다.


오래된 지금_탁영화 개인전_갤러리 R 2023

탁영호의 <분청사기철화 어문>은 옛 토기 위에 아크릴물감으로 상서로운 기운을 표현한 것이라면, 그의 <한눈박이 삼어도>는 옛 토기 위에 아크릴물감으로 액운을 막아주는 부적형식을 표현한 것이고, 그의 <연로문>은 오래된 철기 위에 아크릴물감으로 연꽃과 청둥오리 그리고 천년 학의 길조를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래된 지금_탁영화 개인전_갤러리 R 2023

한국미술계는 20세기 초 (자의건 타의건) 서구미술의 수입으로 인해 '가문의 위기'를 맞이한 적이 있다. 해방 이후 한국미술계에 '가문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옛 선조들의 작품들을 참조하여 재구성한 작품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내가 탁영호의 '현대판' 민화에 주목하는 이유는 우리 미술에 대한 자부심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옛 그림들의 '현대적 재구성'이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옛 그림들에 대한 현실인식을 관통한 탁월한 분석력이 필요할 것이다. 이를테면 탁영호의 ‘현대판 민화’는 현실인식을 관통한 탁월한 분석력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따라서 탁영호의 작품이 주목받는 이유가 바로 현실인식을 관통한 탁월한 분석력 때문이란 점을 알려준다.

이런 단편적인 정보는 탁영호의 ‘사물-그림’이 다름아닌 관객에게 ‘행복을 주는 그림’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를테면 그의 ‘복화(福畵)’는 우리 선조들이 장수와 복을 기원했던 민화를 동시대적인 것으로 재구성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탁영호의 그림은 60년대 미국의 팝아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우리의 전통적인 그림을 차용하여 재구성한 '코리아-팝(K-POP)'이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연로문_철기 위에 아크릴_높이 16.5cm, 지름 11.5cm. 2023

새로운 미술 출판문화
스마트폰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탁영호 ‘전자-도록(digital-catalogue)’

출판사 KAR은 작년 12월부터 올해 초까지 한글판 전자도록을 총 23권 발행하였다. 출판사 KAR의 16권 전자도록들은 그동안 미술평론가 류병학 씨가 집필한 20명 작가(강진이, 김을, 김태헌, 김해민, 도수진, 류제비, 박기원, 박정기, 손부남, 손현수, 안시형, 이기본, 이유미, 이유진, 이현무, 장지아, 최상흠, 하봉호, 허구영, 홍명섭)의 작가론들과 일부 작가들이 직접 집필한 일종의 ‘전자_아트북(Digital_Art Book)’이다.

출판사 KAR은 미술계에 새로운 출판문화를 선도하고자 한다. 미술평론가 류병학 씨는 “‘전자-도록’의 도래는 출판문화의 변화를 넘어 질적인 미술계를 조성하는데 기여하게 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출판사 KAR은 이번 갤러리 R의 탁영호 개인전 『오래된 지금』을 위해 탁영호 작가의 전작들과 함께 미술평론가 류병학 씨의 ‘탁영호론’을 수록한 전자도록 『탁영호의 단편만화 강의 I』과 『탁영호의 단편만화 강의 II』를 발행했다. 출판사 KAR에서 발행한 전자도록은 온라인 서점들(예스24, 교보문고, 알라딘, 리디북스, 밀리의 서재)에서 구매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