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헌 & 도수진
갤러리 호호(好好)
2024.11.22.-2024.12.14
주최/주관
갤러리 호호
서울 서대문구 홍연길 72. 2층
공동기획
갤러리 호호 김미선 대표
갤러리 R 류병학 큐레이터
디 자 인 도수진
사 진 김홍석
설 치 박정기
김태헌_어디까지 갈 수 있니?_갤러리 호호 전시광경. 2024
어디까지 갈 수 있니?
내가 갤러리 호호 김태헌 & 도수진 2인전 전시타이틀을 고민할 즈음 김태헌 작가가 나에게 이멜로 전시에 출품할 작품 리스트를 보내주었다. 난 그의 작품 리스트를 보다가 ‘가끔은 너의 위로가 필요해’라는 그림 속의 문구에 삘이 꽂혔다. 왜냐하면 김태헌 & 도수진 작가의 작품들이 나에게 위로를 주기 때문이다.
“나는 내 앞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늘 관심 있게 바라보고, 듣고, 이야기하길 좋아한다. 여행을 떠나면 그곳 이야길, 집에 있으면 마당과 숲을, 책을 만나면 저자의 이야기를, 인터넷을 하면 그곳의 정보를, 멍 때리다 떠오른 잡생각과 내 안의 알 수 없지만 선명한 것들에 대해. 이 모든 게 작업의 소재이며, 바로 내 앞의 정면이다. 이렇듯 내 앞의 표층과 눈감아도 작업이 되는 심층의 작업들이 뒤섞여 목적 없는 어딘가로 나를 옮겨 놓는다.”
- 김태헌의 작가노트 <어디까지 갈 수 있니?> 중에서
김태헌_어디까지 갈 수 있니?_갤러리 호호 전시광경. 2024
김태헌은 이번 갤러리 호호의 2인전에 작년부터 4호 캔버스에 마치 일기를 쓰듯 매일 한 점씩 그린 일명 ‘그림-일기’들 중 73점과 그림과 오브제를 접목한 일명 ‘무용지용(無用之用)’ 작품 5점을 전시할 예정이다. 그의 ‘그림일기’ 중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붕붕(鵬鵬)’ 연작과 ‘놀子’ 연작도 있다.
김태헌의 ‘붕붕’은 『장자(莊子)』에 나오는 붕새를 뜻한다. 그는 ‘붕새’를 ‘말풍선’이나 손오공이 붕붕 타고 다니던 ‘근두운’으로 은유하기도 한다. 그는 그것을 그림 속 이미지들을 연결하는 일종의 ‘접속사’로 삽입해 넣는다. 그리고 그의 ‘놀子’는 일종의 ‘현대판 홍길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놀子’의 그림들은 그를/우리를 ‘조롱하고, 붕붕 띄우고, 끌어내리고, 넘고, 야유하고, 딴지 걸고, 뒤통수를 후려치는 일련의 놀이’로 출현하기 때문이다.
김태헌_놀자_캔버스에 과슈_4호. 2023
김태헌_붕붕_캔버스에 과슈_4호. 2023
김태헌_붕붕-놀자_캔버스에 과슈. 2024
김태헌_깜짝 방문-기리코 작품_캔버스에 과슈. 2024
김태헌_기념촬영_캔버스에 과슈. 2024
김태헌_가면 놀이_캔버스에 과슈. 2024
물론 김태헌은 이번 갤러리 호호 전시에 신작 ‘기념촬영’과 ‘가면 놀이’와 함께 ‘붕붕’과 ‘놀子’를 접목한 ‘붕붕-놀子’ 연작도 선보인다. 그의 ‘붕붕-놀子’는 붕붕 하늘로 날아올라 이놈 저놈, 이것저것, 요기조기 기웃거린다. 이를테면 ‘붕붕-놀子’는 사람을 만나 수다를 떨고, 여행을 다니고, 활자 속을 기웃거리고, ‘내 안의 나’를 건드리며 논다고 말이다. 그리고 ‘붕붕-놀子’는 놀이판을 키우기 위해, 즉 작업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 그의 모든 감각에 날을 세운다.
김태헌_무용지용(無用之用)_갤러리 호호 전시광경. 2024
김태헌의 ‘갈 데까지 가보자’
김태헌의 ‘무용지용’은 버려진 쓸모없는 물건을 털고, 닦고, 해체하고, 재조립하여 거기에 그림을 끼워 넣거나 오브제를 붙여 ‘쓸모 있는 것(작품)’으로 변신시킨 작품이다. 그것은 그림과 드로잉 그리고 인쇄물과 장난감 자동차 또한 ‘미키’ 인형과 ‘에반게리온’ 피규어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오브제들을 접목한 것이다.
김태헌은 무명작가의 그림에 드로잉을 한 작품들도 선보인다. 그는 인터넷 경매에서 동양의 ‘산수화’와 서양의 ‘풍경화’를 구입해 이미지들을 첨가한다. 그의 <갈 데까지 가는 거야>는 수묵으로 그린 산수화에 아크릴 물감으로 ‘붕붕’과 ‘놀子’ 그리고 우주인과 스마일 또한 부엉이와 ‘갈데까지 가는 거야’라는 푯말을 그려놓은 작품이다.
김태헌은 이번 갤러리 호호에 전시되는 작품들을 ‘어디까지 갈 수 있니?’ 연작으로 부른다. 그는 그 질문에 ‘갈데까지 가는 거야’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힘들 거예요’라고 덧붙이기도 한다. 그의 <분명 힘들 거예요>는 유화로 그린 어느 무명화가의 풍경화에 ‘분명 힘들 거예요’라는 문구가 쓰인 푯말을 그려놓았다.
김태헌_갈 데까지 가는 거야_4호. 2023
김태헌_분명 힘들 거예요_4호. 2024
김태헌_FREE WAY_4호. 2024
김태헌_가끔은 너의 위로가 필요해_캔버스에 과슈. 2023
머시라? 그는 삶이 분명 힘들겠지만 ‘갈 데까지 가는 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다고요? 뭬야? 그의 말에 위로가 된다고요? 네? 그의 위로는 자신에게 하는 위로이면서 동시에 타인에게 하는 위로이기도 하다고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위로(慰勞)’는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주거나 슬픔을 달래 줌’을 뜻한다. 따라서 ‘위로’는 두 가지 방향을 갖는다. 내가 너에게 위로하는 것과 내가 나에게 위로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를테면 위로는 타자를 향하기도 하지만 자기 자신을 향하기도 한다고 말이다.
김태헌의 <가끔은 너의 위로가 필요해>는 알몸의 사람이 두 팔로 두 다리를 잡고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그/녀는 마치 허공에 부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녀 주변은 푸른색 물감의 얼룩과 파랑 동그라미들로 표현되어 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영어 ‘blue’는 ‘파랑’ 이외에 ‘우울한’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왜 우리는 가끔 우울할까? 물론 우리는 각자 다른 이유로 우울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우울함을 위로할 수 있는 이들은 타인과 자신일 것이다. 그렇다면 김태헌의 <가끔은 너의 위로가 필요해>는 누군가 위로를 기대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스스로 자신에게 보내는 위로일 수도 있지 않을까?
김태헌 & 도수진_가끔은 너의 위로가 필요해_갤러리 호호 전시광경. 2024
도수진의 버티고 & 버티고(VERTIGO & VERTIGO)
“저는 그동안 팍팍한 삶을 살면서 작업하는 아티스트의 상황에 관한 작업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팍팍한 삶은 예술가뿐만 아니라는 점에서 저는 ‘위로가 절실한 분들은 누구일까?’라는 자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 노인은 가족부양에 인생을 불태우다 보니 노후 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불안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한국의 중년은 위 세대를 책임져야 하고 아래 세대에 도전받는 ‘낀 세대’라고 합니다. 한국의 청년들의 팍팍한 삶은 주변만 둘러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위로가 필요한 분들은 남녀노소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불안’과 ‘위로’라는 두 용어에 주목하는 작품제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 도수진의 작가노트 <버티고 & 버티고(VERTIGO & VERTIGO)> 중에서
도수진_곤충 인간_갤러리 호호 전시광경. 2024
도수진은 이번 갤러리 호호의 2인전에 작년부터 종이에 마치 일기를 쓰듯 매일 두 점 정도 드로잉을 한 일명 ‘드로잉-일기’들 중 500여 점과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페인팅 20점 그리고 ‘키네틱 작품(kinetic art)’ 2점과 짧은 ‘짤’로 구성된 애니메이션 3점도 전시할 예정이다.
도수진의 <디 아이즈(The Eyes)>(2021)는 나무틀에 8쌍의 눈알을 설치한 일종의 ‘키네틱 작품’이다. 눈알은 스티로폼 구에 아크릴 물감으로 눈동자를 그리고 그 위에 투명 플라스틱 구를 설치한 것이다. 그녀는 눈알들을 모터에 연결시켜 움직이게 해놓았다. 눈알들은 부단히 움직이면서 무엇인가를 예의주시(銳意注視)하는 것처럼 보인다. 도수진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도수진_The Eyes_wood, motor, styrofoam_1200x900x180mm. 2021
“움직이는 눈알은 포식자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촉각이 곤두서있는 불안하고 예민한 곤충을 연상시킨다. 인간에게도 살아남기 위해 타인의 감정을 끊임없이 살피고 상황에 맞게 반응하도록 진화하여 왔다.
도수진_곤충인간(벽면), 한밤의 축제(바닥)_갤러리 호호 전시광견. 2024
도수진의 <한밤의 축제>는 기괴한 형태의 조각들로 이루어진 일종의 ‘키네틱 작품’이다. 그녀는 로봇청소기에 페이크 퍼(fake fur)나 먼지털이개 그리고 타조 깃털과 부채 또한 아크릴 반구에 스팽글원단을 접목하여 전시장 바닥을 돌아다니게 한다. 머시라? 당신은 그것을 보고 미야자키 하야오(Miyazaki Hayao) 감독의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My Neighbor Totoro)』(1988)에 나오는 검댕이 도깨비인 ‘마쿠로 쿠로스케’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Spirited Away)』(2001)에 등장하는 강의 정령인 ‘스스와타리’를 떠올렸다고요?
도수진_곤충인간(벽면), 한밤의 축제(바닥)_갤러리 호호 전시광경. 2024
‘마쿠로 쿠로스케’와 ‘스스와타리’는 인간이 나타나면 숨어버린다. 도수진은 기괴한 형태의 조각들을 “각각 숨어 지내던 마음 속 감정 벌레들”을 상상하여 만든 것이라고 한다. 뭬야? 당신 눈에는 ‘감정 벌레들’이 전시장 이곳저곳을 방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요? 네? 자기 눈에는 화려한 옷을 입은 ‘감정 벌레’들이 마치 가면무도회에 방문한 것처럼 느껴진다고요?
도수진은 그 ‘감정 벌레’를 일종의 ‘곤충 인간’으로 부른다. 여기서 말하는 ‘곤충 인간’은 불안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곤충’으로 은유한 것을 뜻한다. 이를테면 나약하고 하찮아 보이는 ‘곤충(인간)’이 외부 공격과 충격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몸 일부를 딱딱한 껍질과 다양한 형태의 문양들로 진화시켜 살아남는다고 말이다. 이번 갤러리 호호에 전시될 그녀의 회화 20점은 바로 ‘곤충 인간’ 연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도수진_현기증, 푸줏간 소녀, 가다랑어 심장_애니메이션_갤러리 호호 전시광경. 2024
도수진의 ‘버티고(vertigo)-드로잉’ 연작
도수진은 갤러리 호호의 마지막 전시공간에 드로잉 500여 점을 빼꼭하게 연출할 예정이다. 따라서 관객이 그녀의 ‘드로잉 룸’에 들어서면 마치 작가의 드로잉 세계에 들어선 것처럼 느껴지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관객은 작가의 ‘뇌 세계’에 들어선 느낌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녀의 ‘뇌 세계’는 어린 시절의 상상이나 기억 그리고 꿈이나 무의식 등 무형이란 점에서 그녀의 500여 점의 드로잉은 무형을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한 것이 되는 셈이다.
도수진_버티고(vertigo)-드로잉_갤러리 호호 전시광경. 2024
도수진은 500여 점의 드로잉을 일명 ‘버티고(vertigo)’ 연작으로 부른다. 영어 ‘vertigo’는 ‘어지러움’이나 ‘현기증’을 뜻하는 반면, 영어 발음의 한글식 표기인 ‘버티고’는 어려운 일이나 외부의 압력을 참고 견딘다는 의미를 지닌다. 우리는 살면서 적잖은 난관을 만난다. 따라서 우리가 살다 보면 위로를 받거나 위로해야 하는 상황을 만나게 된다. 말하자면 누구에게나 위로가 필요한 때가 있다고 말이다. 우리는 힘든 상황에 처한 이에게 진심으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지만 자칫하면 위로의 말이 상처의 말이 될까 두렵기도 하다.
도수진_버티고(vertigo)-드로잉_갤러리 호호 전시광경. 2024
도수진의 <포옹>은 제목 그대로 두 남녀가 포옹해 입맞춤하는 모습을 그린 드로잉이다. 머시라? 흥미롭게도 녹색 피부의 여자가 분홍빛 피부의 남자를 안아 올렸다고요? 뭬야? 그것은 그림 상으로 남녀의 포옹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자기를 포옹하는 일종의 ‘자기애’로도 느껴진다고요? 그 점에 관해 도수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기 자신을 위로해본 이가 타인을 위로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는 그 위로에 동감하게 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감동받기도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