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R 기획전 류제비 개인전
<꽃과 바람과 별 그리고 소년(FLOWER, WIND, STAR and BOY)>
갤러리 R(gallery R)은 지난 2월 5일부터 3월 6일까지 한 달간 개관전
류제비 작가는 대구에서 출생해 영남대 미술대학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대구 팔공산 작업실에 작업하고 있는 ‘대구 토박이작가’입니다. 그녀는 팬실베니아의 허브 갤러리(HUB Gallery)와 미시아냐 갤러리(Misciagna Gallery) 그리고 통인갤러리와 동원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갖은 바 있습니다.
류제비의 대표적인 그룹전으로는 일민미술관의 『정물예찬전』, 대구문화예술회관의 『청년비엔날레』, 일민미술관의 『원더풀 픽처스Wonderful Pictures)』, 페이스갤러리의 『한국현대미술 의 지평전』, 도쿄의 갤러리 커션(Gallery Caution)의 『아트 라인 대구(Art Line Daegu)』, 에비뉴엘아트홀의 『100대 명반 100대 아티스트전』, 대구문화예술회관의 『현대미술의 조망전』 등이 있습니다.
2007년 류제비 작가는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린 화랑미술제에 대구 동원화랑 부스에 출품한 모든 작품을 ‘솔드아웃(Sold Out)’시켜 주목을 받았습니다. 2008년 그녀는 동원화랑에서 개인전을 개최해 전시된 작품 모두를 또다시 ‘솔드 아웃’해 일명 '스타작가'로 자리매김합니다. 같은 해 그녀의 작품은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행복이 가득한 집』 8월호 표지에 소개되는 등 국내에서 유명세를 타며 미술시장에서 주목받는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류제비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도서출판열린책들, 일민미술관, 통인화랑, 동원화랑, 409갤러리와 개인 컬랙터들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류제비 작가는 이번 갤러리 R 개인전에 2002년부터 2022년까지 제작한 정물화와 풍경화 그리고 인물화 등 회화작품 55점과 드로잉 13점 그리고 정물화 작업을 위해 제작한 도자-화병 14점도 함께 전시합니다. 따라서 이번 류제비 개인전은 류제비 작가의 작품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류제비 개인전 『꽃과 바람과 별 그리고 소년』을 아래와 같이 개최하오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전시제목 : 꽃과 바람과 별 그리고 소년(FLOWER, WIND, STAR and BOY)
초대작가 : 류제비
전시작품 : 회화 55점, 드로잉 13점, 도자-화병 14점
갤러리 R(gallery R)
서울특별시 성동구 광나루로 294 성동세무타워 B01호
TEL 02-6495-0001
e-mail galleryrkr@gmail.com
homepage galleryr.kr
전시기간 : 2022년 3월 19일 - 4월 10일
전시기획 : 갤러리 R 객원큐레이터 류병학
전시오픈 : 매주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오픈시간 :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전시휴관 : 매주 월요일, 화요일
류제비_꽃과 바람과 별 그리고 소년. gallery R 2022
나의 정물화
어느 날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정물대 위에 놓인 정물을 바라보게 되었다. 몇 가지 꽃들이 꽂혀 있는 유리병이 오후의 햇살과 함께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좀 오래된 유리병은 그리 깨끗하지도 않고 늘 보던 것이라 새롭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 날따라 나에게 달리 보였다. 유리병에 햇빛이 눈부셔 손으로 눈을 가린 채 정물들을 바라보았다. 조금씩 시간이 지나며 밤도 낮도 아닌 시간이 되자 정물이 완전히 보였다. 물 밖의 줄기가 힘차게 뻣어 있고 물로 인해 변형이 생긴 아래 부분도 보였다 나는 계속해서 정물을 바라보았다. 시간의 흐름도 잊은 채 정물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는 내 자신이 정물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실내로 그림자가 길어지는 시간, 주변은 다시 태어나고 움직임 없는 정물마저도 새롭게 느껴지게 한다. 금세 없어질 그림자는 더욱 길어지고, 쏟아지는 빛은 사물의 모습을 더욱 또렷하게 한다. 알 수 없는 리듬이 주변을 감싸고, 마음은 밝음과 단순함으로 가득 찬다. 나는 나도 모르게 신비한 감정에 휩싸이며 이 정물들이 밝고 맑게 빛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내 마음은 단순해졌다. 신비한 경험이었다.
나는 나만의 그림을 찾아 먼 곳으로만 떠나고 싶어했다. 내가 생각하는 그림이 내 삶 안에 함께 하는지 알지 못했다. 단지 바깥에서 새로움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나는 이제 형이상학의 세계에서 고민하지 않는다. 더 이상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지 않다. 나는 감히 그 문턱을 넘지 않으려고 한다. 감각적인 아름다움과 마음의 행복은 자연스러우며 늘 우리 곁에 있기 때문이다.
- 류제비 2022
류제비_꽃과 바람과 별 그리고 소년. gallery R 2022
류제비의 밝고 맑은 ‘정물화’
기분을 좋아지게 하는 그림
우리는 ‘류제비’ 하면 흔히 강렬한 컬러의 ‘정물화’를 떠오른다. 그녀의 ‘정물화’는 그녀의 이름만큼 특이하다. 그녀는 1995년 ‘정물화’에 주목한다. 하지만 그녀가 정물화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2000년을 들어서면서부터다. 류제비는 2001년 삼성금융플라자에서 열린 첫 개인전 『생(生)의 축제』에 일명 ‘꽃’ 시리즈를 전시한다. 그녀는 2002년 대백플라자갤러리에서 개최한 두 번째 개인전에도 일명 ‘꽃 그림’ 시리즈를 전시한다.
류제비는 2003년 한기숙 갤러리에서 2인전(류제비 & 김유리)에 초대받는다. 당시 그녀는 일명 ‘정물화’ 시리즈를 전시한다. 그런데 1995년부터 2002년까지 작업한 그녀의 ‘정물화’가 주로 꽃만 강조하고 컬러도 자제하여 강렬하거나 화려하지 않았다면, 2003년 ‘정물화’는 투명한 화병에 컬러풀한 꽃들을 표현하여 강렬하고 화려하게 보인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녀는 8년 만에 화려한 ‘류제비 스타일’의 정물화를 그려낸 것이다. 물론 ‘류제비 스타일’의 정물화는 강렬하고 화려할 뿐만 아니라 평평하다(flat). 하지만 한기숙 갤러리에 전시된 그녀의 정물화는 화려하고 강렬할 뿐만 아니라 ‘회화적 붓질’도 남아있다.
류제비_꽃과 바람과 별 그리고 소년. gallery R 2022
류제비는 2004년 일민미술관에서 기획한 『정물예찬(靜物禮讚)』을 통해 국내 미술계에 주목 받기 시작한다. 당시 전시된 류제비 작품들 중 <산책의 시간 II>(2004)는 일민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물론 그녀의 <산책의 시간 II>에도 부분적이나마 ‘회화적 붓질’이 남아있다. 그러나 2006년에 제작한 그녀의 <산책의 시간 II>에서는 ‘회화적 붓질’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점에 관해 미술평론가 류병학 씨는 “2006년부터 오늘날까지 꾸준히 작업한 류제비의 ‘정물 화’에 붓질은 사라지고 화면은 평면적으로 나타난다”고 말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류제비의 ‘정물화’는 한결같이 밝고 맑다. 물론 밝음은 색의 채도(Saturation)와 명도(Value)에서 기인한다고 할 수 있겠다. 말하자면 그녀의 ‘정물화’는 높은 채도와 높은 명도로 그려져 있다고 말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녀의 ‘정물화’는 색의 대비를 통해 밝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런데 류제비의 ‘정물화’에서 느껴지는 맑음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미술평론가 류병학 씨는 :맑은 색감의 비밀은 캔버스의 ‘피부’에 있다“면서 다음과 같이 부연 설명했다.
“류제비는 수성 아크릴물감의 특성에 주목한다. 이를테면 그녀는 아크릴물감에 물을 적절하게 사용해 캔버스의 ‘피부(올)’이 살아있도록 붓으로 곱게(엷게) 먹인다(칠한다). 그녀는 그 표현방식을 수십 차례 반복해 작업한다. 밝고 맑은 색감이 느껴질 때까지 말이다. 따라서 그림(캔버스)의 ‘피부’가 살아있게 되는 셈이다. 따라서 그녀의 정물화는 ‘죽은 자연’이 아닌 차라리 숨 쉬는, 즉 ‘살아있는 그림’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류제비_꽃과 바람과 별 그리고 소년. gallery R 2022
나의 풍경화
30대까지 나는 내 주변의 사물들을 그리며 마음의 기쁨과 안정을 찾으려 노력했던 것 같다. 그것은 단순화된 색면 정물로 표현되었고 나의 마음 또한 밝고 맑게 정리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마치 모든 마음의 문제가 해결된 듯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그렇듯 나의 마음은 매번 변하고 나의 상황은 늘 새로운 문제들로 골머리를 앓았다. 물론 나처럼 나의 그림도 그렇다.
40이 되자 나는 불쑥 하늘을 날아 지구 저 반대편의 바다와 집을 그리고 싶어졌다. 상상이라고 하지만 아마 내가 사진에서 보아온 아름다운 여행지나 소설 속에서 걸었던 골목길 그 어디쯤이 아닐까 싶다. 실존하지 않는 이 풍경 속에서 나는 구름처럼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상상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나는 이 여행에서 또 한 번 나의 마음과 만나 이야기하며 나를 기쁘게 했던 것 같다.
삶은 우리가 시작한 최고로 긴 여행이다. 지금 이 순간... 힘든 시간, 즐거운 시간 이 모든 것이 하나임을 느끼게 된다. 나의 상상 풍경을 돌아보니 새로운 나의 여행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 류제비 2021
류제비_꽃과 바람과 별 그리고 소년. gallery R 2022
류제비의 행복이 가득한 ‘풍경화’
꿈속에서 거닐던 평온한 풍경
류제비는 ‘정물화’ 이외에도 일명 ‘풍경화’와 ‘인물화’도 꾸준히 작업하고 있다. 2008년 그녀는 처음 <풍경>이라는 제목으로 자연을 모티브로 그린 ‘풍경화’를 그린다. 그리고 2010년 그녀는 팬실베니아의 허브 갤러리(HUB Gallery)와 미시아냐 갤러리(Misciagna Gallery)에서 열린 개인전에 ‘정물화’와 함께 처음으로 ‘풍경화’를 전시한다. 당시 그녀가 선보인 풍경화는 도심의 고층건축물들을 그린 일명 ‘시너리(Scenery)’ 시리즈이다. 2012년 그녀는 단독주택을 모티브로 그린 ‘풍경화’ 시리즈를 작업한다.
하지만 류제비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모색한 풍경화는 우리에게 알려진 ‘류제비의 풍경화’는 아니다. ‘류제비의 풍경화’는 2014년부터 시작된다. 그녀의 풍경화는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 그리고 모서리가 없는 집들이 모여있는 지중해 마을을 연상케 하는 ‘상상-풍경’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녀의 ‘풍경화’도 ‘정물화’와 마찬가지로 맑고 밝다. 그녀는 캔버스 표면을 아교와 모래를 섞어 바탕처리를 한 다음 풍경을 그린다. 따라서 그녀의 풍경화는 화려하지만 가볍지 않고 차분하다.
류제비의 ‘풍경화’는 ’고운 피부‘를 자랑한다. 만약 당신이 그녀의 ’풍경화‘로 한 걸음 가까이 접근해 그림의 ‘피부’를 본다면, 숨 쉬는 캔버스 올이 아닌 깨알 같은 숨구멍들로 이루어져 있는 도자기 같은 피부를 보게 될 것이다. 어떻게 그녀는 도자기 같은 고운 피부를 표현한 것일까? 그녀는 캔버스를 수채화의 와트만지(whatman paper)로 만들고자 캔버스 피부에 모래를 바르고 사포(sandpaper)로 갈아내었다고 한다. 따라서 캔버스 올은 사라지고, 깨알 같은 고운 피부로 변신한다. 그 위에 그녀는 아크릴물감을 붓으로 곱게(엷게) 먹인다(칠한다).
물론 그녀는 그 방식을 수십 차례 반복한다. 밝고 맑고 우아한 색감이 탄생할 때까지 말이다.
류제비의 '풍경화'는 '정물화'처럼 밝고 맑고 우아하다. 그리고 그녀의 ‘풍경화’ 등장하는 집들도 ‘정물화’의 꽃들처럼 단순하게 표현되어져 있다. 아기자기하게 옹기종기 모여있는 집들에는 문과 지붕 그리고 유리창 이외에 별다른 장식도 없다. 와이? 왜 류제비는 단순한 풍경화를 그린 것일까? 그 점에 관해 그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 삶에서도 맑음과 단순함을 추구하던 시절이죠. 문제를 명쾌하게 풀고 싶던 갈망이 그림에도 투영된 거예요.”
류제비의 ‘풍경화’는 마치 꿈속에서 거닐었던 풍경처럼 보인다. 그녀는 작가노트에 “나의 상상 풍경 속의 집들은 소박하지만 맑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으로 여겨지게 그리고 싶었다”고 적었다. 미술평론가 류병학 씨는 류제비의 ‘풍경화’가 “관객들을 어린 시절로 안내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난 류제비의 '풍경화'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 한 켠에 부드럽고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을 느낀다. 그렇다! 관객이 류제비의 '풍경화' 시리즈를 보면 마음이 힐링되는 느낌을 받는다. 그녀가 그려놓은 세계를 관객이 볼 때 그녀의 마음에 한 걸음 다가간 느낌을 받는다. 이를테면 우리가 친구에게 우리의 마음을 털어놓았을 때, 친구가 아무 말 없이 우리를 안아주듯이 말이다. 그렇다! 그녀의 '풍경화' 시리즈는 우리의 무거운 삶의 무게를 잊게 해 준다.”
류제비_꽃과 바람과 별 그리고 소년. gallery R 2022
나의 인물화
내가 만약 지금 다른 이의 삶을 살 수 있다면 나는 10세의 소년이고 싶다. 파란 물이 일렁이고 노란 태양이 금을 만들어 내는 바다에서 검고 작은 몸으로 달리고 싶다. 그러다 밤이 되면 혼자 생각에 잠길 수도 있겠지.
내가 아침에 일어나 오늘 태양을 처음 본 듯이 바라본다면 나는 놀라 기절할 수도 있겠다. 둥글고 큰 불덩이가 하늘에 있으니 말이다. 꽃을 바라보며 신기해하는 순간, 죽어가는 식물에 물을 주며 새들과 대화하는 아이, 바다를 산책하는 아이, 물고기를 바라보는 아이들을 떠올리면 마음 한켠에 부드럽고 따뜻한 바람이 불어온다. 작고 여린 호기심은 나를 환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내가 작업실에서 바라보는 정물들 또한 노래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삶의 반 이상이 고통이라면 나머지 반은 소리 내지 않는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슬픔이 찾아와 눈물로 밤을 지세울 때도 있지만 길의 끝에는 밝음이 있다. 나의 그림이 작지만 환한 밝음이 되어 누군가의 가슴에 닿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류제비 2021
류제비_꽃과 바람과 별 그리고 소년. gallery R 2022
어린 여행자 류제비의 ‘인물화’
어린 시절로 안내하는 그림
류제비는 미대 시절부터 일명 ‘인물화’에 전착한다. 이를테면 1990년대 그녀의 작품은 주로 ‘인물화’라고 말이다. 그런데 그녀는 2000년에 접어들면서 ‘정물화’에 전착한다. 물론 그녀는 2009년과 2011년 몇 점의 ‘인물화’ 작업을 하지만 이후 다시 ‘정물화’와 ‘풍경화’ 작업을 한다. 그러다가 그녀는 2017년부터 최근까지 꾸준히 ‘인물화’ 시리즈를 작업하고 있다. 그녀는 2020년 제주 돌담갤러리와 서울 반디트라소에서 열린 개인전과 2021년 스페이스 자모에서 열린 개인전에 ‘정물화’ 그리고 ‘풍경화’와 함께 ‘인물화’도 선보였다.
“류제비의 첫 타자는 ‘꽃’이었고, 두 번째 타자는 ‘집’이었다. 따라서 그녀의 ‘정물화’와 ‘풍경화’는 타자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 없이는 도달할 수 없는 작품이라고 말이다. 궁금했다. 어떻게 그녀는 타자를 꾸준히 탐구할 수 있는 것일까? 도대체 지칠 줄 모르는 탐구의 ‘힘’은 어디에서 기인 되는 것일까? 그리고 그녀가 타자를 통해 깨달은 바는 무엇일까?”
류제비_꽃과 바람과 별 그리고 소년. gallery R 2022
미술평론가 류병학 씨의 진술이다. 류제비의 신작 ‘인물화’ 시리즈는 타자를 ‘꽃’에서 ‘집’을 거쳐 ‘소년’으로 전이된 것을 뜻한다. 그녀의 일명 ‘소년’ 시리즈는 소년과 자연을 그린 그림이다. 그런데 미술평론가 류병학 씨는 류제비의 ‘소년’ 시리즈에 등장하는 소년을 “르 끌레지오(Jean-Marie Gustave Le Clezio)의 소설 <어린 여행자 몽도(Mondo et autres histoires)>(1978)의 주인공 몽도를 연상케 한다”고 말한다.
몽도는 어디서 왔는지 아무도 모르는 아이이다. 하지만 몽도는 모든 사람에게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한다. 따라서 사람들이 몽도를 만나면 즐겁고 순수해진다. 몽도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미소를 주는 아이다. 그런데 맑고 자유로운 영혼을 지닌 몽도는 어른들의 세속적인 삶을 떠난다.
류제비는 작가노트에서 “만약 내가 다른 이의 삶을 살 수 있다면, 나는 10세의 소년이고 싶다”고 적었다. 그녀는 우연히 마주친 꽃을 마치 처음 보는 꽃처럼 신기해 하는 소년을,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마치 처음 보는 것처럼 신기해 하는 소년을, 눈을 감고 소리를 듣고 있는 소년을 그린다.
그런데 류제비의 ‘인물화’는 정물화와 풍경화와 달리 인물에 깊이감을 주기 위해 캔버스에 젯소(gesso)를 바르고 사포로 갈았다고 한다. 그녀는 ‘기초화장’ 위에 투명하게 아크릴물감을 바르고 마르면 사포로 갈았다. 그녀의 ‘인물화’도 이전의 ‘정물화’와 ‘풍경화’와 마찬가지로 엷은 아크릴물감으로 수십 차례 반복해 작업한 것이다. 단지 그녀의 ‘인물화’가 ‘정물화’와 ‘풍경화’와 다른 점이 있다면, 같은 색을 반복해서 바른 것이 아니라 다양한 다른 색을 겹쳐 발라 레이어(layer)를 만들어 놓았다는 점이다. 따라서 레이어로 만들어진 피부 밑의 색이 표면으로 희미하게나마 우러나와 색감이 밝고 맑지만 깊이감도 드러낸다.
“나는 류제비의 ‘정물화’와 ‘풍경화’에서 군더더기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녀의 그림은 소박하고 담백하지만 밀도감 있게 표현되어 있어 나의 뇌리에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녀의 ‘정물화’와 ‘풍경화’는 단순하면서도 밝고 맑다. 하지만 그녀의 일명 ‘소년(인물화)’는 밝고 맑음 속에 알 수 없는 의문을 품고 있는 것으로 느끼게 한다. 나는 밝고 맑지만 마치 수수께끼 같은 의문이 담겨있는 듯 보이는 그림에 빠져들었다. 그런데 그녀의 그림에서 느껴지 는 의문은 무엇일까?”
류제비의 ‘인물화’에 대한 미술평론가 류병학 씨의 말이다. 그는 류제비의 ‘인물화’ 앞에서 묘한 감정을 느낀다. 그는 그 묘한 느낌이 무엇인지 그림에서 찾고자 두리번거린다. 하지만 그 묘한 느낌의 정체는 밝혀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류제비의 작품이 그에게 “인생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 같았다”고 말한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진부(陳腐)하게 간주했던 ‘인생이란 무엇인가’를 되새김질하게 되었다”고 토로했다. 우리는 누구나 종종 인생이 무엇인지 골 똘히 생각해 보곤 한다. 인간의 삶에 대한 회의는 결국 자기 자신으로 돌아간다. 나는 누구인가?
류제비의 ‘꽃과 바람과 별 그리고 소년’
FLOWER, WIND, STAR and BOY
이번 갤러리 R(gallery R)에서 개최하는 류제비의 개인전 전시타이틀은 『꽃과 바람과 별 그리고 소년(FLOWER, WIND, STAR and BOY)』이다. ‘꽃과 바람과 별 그리고 소년’은 그녀의 회화세계를 압축한 용어들이다. 그 용어들은 그녀의 작품 제목에서도 등장한다. <별이 빛나는 밤에>, <바람이 시작되는 곳>, <바람의 숨결>, <별을 보는 소년>, <풀잎과 소년>, <생 각하는 소년>이 그것이다. 만약 ‘꽃’이 정물화를 상징한다면, ‘별’은 ‘풍경화’를 그리고 ‘소년’은 인물화를 상징한다. 머시라? 그러면 ‘바람’은 무엇을 상징하느냐고요? ‘바람’은 정물화와 풍경화 그리고 인물화를 탄생케 하는 일종의 ‘힘(POWER)’이다.
류제비는 이번 갤러리 R의 개인전에 정물화와 풍경화뿐만 아니라 인물화도 전시한다. 갤러리 R은 이번 류제비 개인전에 신작들뿐만 아니라 구작들도 전시한다. 갤러리 R은 2002년부터 2022년까지 작업한 류제비의 작품들을 연대기적으로 전시한다. 물론 이번 개인전에는 아직까지 선보인 적 없는 그녀의 드로잉들과 정물화 작업을 위해 제작한 도자 화병들도 작품들과 함께 연출한다. 따라서 이번 류제비 개인전은 류제비 작가의 작품세계를 조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류제비_꽃과 바람과 별 그리고 소년. gallery R 2022
류제비는 전형적인 회화의 장르인 ‘정물화’와 ‘풍경화’ 그리고 ‘인물화’에 전착하고 있다. 그런데 그 장르들은 흔히 한물간 것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오늘날 누군가 정물화와 풍경화 그리고 인물화를 그린다면, 그/녀는 시대착오적인 작가로 치부된다. 두말할 것도 없이 류제비는 전형적인 회화의 장르를 재현하지 않는다. 그녀는 한물간 것으로 간주되는 정물화와 풍경화 그리고 인물화를 동시대적 화법으로 재구성한다.
화가를 지망하는 사람은 장구한 회화사에서 정물화와 풍경화 그리고 인물화를 만나게 된다. 그것은 수많은 화가가 표현했던 장르들이다. 물론 류제비도 미대에서 그 장르들을 만났다. 하지만 대부분 화가는 미대에서만 전형적인 장르들을 표현할 뿐, 그/녀가 미대를 졸업해 화단에 들어서면 일명 ‘현대회화(contemporary painting)’의 길을 따른다.
그러나 미대를 졸업하고 화단에 첫발을 디딘 화가 류제비는 철 지난 장르들에 꾸준히 주목한다. 왜냐하면 정물화와 풍경화 그리고 인물화가 그녀에게 언제나 놀랍고 새롭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일상의 사물을 표현하는 정물화를 ‘정지된 삶(still-life)’이나 ‘죽은 자연(nature morte)’이라는 의미에서 해방시킨 ‘아름다운 삶(beautiful_life)’으로 전이시킨다.
류제비는 자연의 모습을 표현하는 풍경화를 서양의 풍경화(landscape painting)와 동양의 산수화(山水畵)를 접목시킨 ‘상상 풍경화(dream_scape)’로 확장한다. 그리고 그녀는 인물을 대상으로 표현하는 인물화(figure painting)를 어른의 시선이 아닌 아이의 시선으로 전이시킨 다. 여기서 ‘아이의 시선’이란 마치 니코스 카잔자키스(Nikos Kazantzakis)의 ‘그리스인 조르바(Zorba)’처럼 일상생활에서 거의 매일 만나는 사람과 사물을 보고도 놀란다.
와이? 왜 류제비는 매일 만나는 사람과 사물을 보고 놀라는 것일까? 왜냐하면 그녀에게 모든 사물은 처음 보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꽃과 풍경 그리고 인물에 귀 기울인다. 이를테면 그녀는 마치 꽃이 말을 하고 있는데, 그녀가 듣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따라서 그녀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만약 우리가 ‘아이의 귀’로 꽃의 말에 귀 기울인다면, 꽃의 말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요?”
새로운 미술 출판문화
스마트폰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류제비 ‘전자-도록(digital-catalogue)’
출판사 KAR은 작년 12월부터 올해 초까지 한글판 전자도록을 총 17권 발행하였다. 출판사 KAR의 16권 전자도록들은 그동안 미술평론가 류병학 씨가 집필한 12명 작가(김태헌, 김해민, 손부남, 손현수, 안시형, 이기본, 이유미, 이현무, 장지아, 하봉호, 허구영, 홍명섭)의 작가론들과 일부 작가들이 직접 집필한 일종의 ‘전자_아트북(Digital_Art Book)’이다.
출판사 KAR은 미술계에 새로운 출판문화를 선도하고자 한다. 미술평론가 류병학 씨는 “‘전자-도록’의 도래는 출판문화의 변화를 넘어 질적인 미술계를 조성하는데 기여하게 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출판사 KAR은 이번 갤러리 R의 류제비 개인전 『꽃과 바람과 별 그리고 소년(FLOWER, WIND, STAR and BOY)』을 위해 류제비 작가의 전작들과 함께 미술평론가 류병학 씨의 ‘류제비론’을 수록한 전자도록을 발행한다. 출판사 KAR에서 발행한 전자도록은 온라인 서점들(예스24, 교보문고, 알라딘, 밀리의 서재)에서 구매 가능하다.
꽃과 바람과 별 그리고 소년
저자 : 류제비 류병학
출판사 : 케이에이알
발행일 : 2022년 3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