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OAD

갤러리R(gallery R)
서울특별시 성동구 광나루로 294 성동세무타워 B01호
TEL 02-6495-0001
e-mail galleryrkr@gmail.com

2023년 7월 15일 - 8월 19일
작가와의 대화 : 2023년 7월 22일(토) 오후 3시

전시오픈 : 매주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픈시간 :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전시휴관 : 매주 일요일, 월요일

김남훈은 2001년 한성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2006년 독일 쿤스트 아카데미 뮌스터에 입학한다. 그는 마이크 & 디억 뢰버트 교수로부터 2012년 마이스터슐러와 2013년 디플롬을 받는다. 2015년 그는 대한민국으로 귀국하여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김남훈은 2003년 <그린 라인(GREEN LINE)>이라는 타이틀로 일민미술관 Cafe-ImA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다. 그는 이후 인천 스페이스 빔과 독일 쿤스트아카데미 A3(A3 Kunstakademie Munster) 그리고 동덕여대 예지관과 아트스페이스 그로브 또한 인천의 임시공간에서 개인전을 개최한다.

김남훈은 국내의 다양한 기획전에 초대된다. 그가 참여한 국내 그룹전들 중 몇 가지만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2000년 <예술과 마을(원골, 공주)>과 <공장미술제 – 눈먼 사랑>(샘표공장), 2001년 <시차, 그거<(대안공간 풀), 2002년 광주비엔날레(Projekt3), <뉴페이스 2002>(토탈미술관), 2003년 <청계천 프로젝트 – 물 위를 걷는 사람들>(서울시립미술관), 2005년 (아르코 미술관), <자정(自淨)>(소래생태공원, 인천), <포트폴리오 2005>(서울시립미술관), 2016년 <108개 의자>(오산시립미술관), 2017년 <서브토피아, 공공하는 예술 : 노마딕경기아트페스타 2017>, <그림 없는 미술관>(청주 시립미술관), 2018년 <환상벨트>(돈의문박물관), 2019년 <말, 그림자>(성남큐브미술관), (OCI미술관), 2022년 <작고, 작은x우리는 모두 중력을 견뎌>(아쉬랩) 등이다.

김남훈은 해외에서도 다양한 기획전에 초대된다. 그가 참여한 해외 그룹전들 중 몇 가지만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2003년 (Care of, 이탈리아 밀라노), 2009년 (독일 벤트라게), <13 PARADISO - der dreizehnte Gesang_(Isola Bella, Lago Maggiore, 이탈리아 이졸라벨라 섬), (Kunstraum44 Hannover EXPO park, 독일 하노버), (Hopper Hotel St.Josef, Koln, 독일 쾰른), 2010년 (독일 카멘), 2011년 (Haus Holtermann, 독일 알렌), (카우나스 포토그라피 갤러리, 리투아니아 카우나스), 2014년 (Kunsthalle Munster, 독일 뮌스터), 2012년 (QQART 갤러리, 독일 뒤셀도르프힐든), (ES contemporary art gallery, 이탈리아 메라노), 2018년 <영원과의 유희(Spiel mit der Ewigkeit)>(그림 뮤지움, 베를린, 독일) 등이다.

김남훈은 2017년 MMCA 국립현대미술관 고양 레지던시와 2018년 OCI 미술관 창작스튜디오에서 작업했다. 그는 2022년 경기문화재단으로부터 프로젝트 <모스_바다v2.0 : 새로운 예술을 위한 기술지원>을 받았다. 그는 2018년 ‘헬로 아티스트’ 선정(네이버 문화재단), 2018년 ‘인천시립미술관(人千始?美述觀) : 2018 작가연구’ 선정(임시공간), 2013년 히로시마 프로젝트(Hiroshima Project) 프라이즈 1위(WWU, 뮌스터, 독일), 2012년 ‘관객상 : QQART 프라이즈’(뒤셀도르프 힐든, 독일), 2001년 ‘뉴페이스2002’ 선정(월간 매거진 아트인컬쳐)되었다. 그의 작품은 독일 쾰른(Lukas Baumewerd Architekt BDA)에 소장되어 있다.

***

홍명섭은 평양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에서 조소 전공으로 학사, 석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는 1990년 제44회 베니스비엔날레에 초대받으면서 국내외 미술계에 주목을 받았다.

홍명섭 작가는 1978년 대전 문화원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했다. 이후 그는 슈테델릭 즈볼레 시립미술관(네델란드), 노비 사드 문화예술회관(세르비아), 데사우(독일), 반화랑(오사카 일본), 선재미술관(경주), OCI미술관, 가인화랑, UM갤러리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한 바 있다. 그리고 그는 다양한 국내외 기획전에 초대받았습니다. 그의 대표적인 그룹전은 다음과 같다.

1995년 46회 베니스 비엔날레 기획전 ASIANA, 독일 슈투트가르트 펠바하 ‘95국제소형조각 트리엔날레, 폴란드 바르샤바의 아르스 폴로나 갤러리 2인전, 국립현대미술관 기획전(‘95 한국현대미술: 질, 양, 감), 1997년 독일 퀠른 ’Pair‘, 독일 드레벤 ’국제 쿤스트 포름‘, ‘97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2000년 미디어 시티-서울, 부산 국제 아트페스티발(picaf), 2003년 이탈리아 사보나 비엔날레(biennale of ceramics in contemporary art), 2005년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 2006년 스위스 빌 국제전(Fluid Artcanal International), 2007년 독일 대사우 ’rainbow mapping project‘, 2008년 부산비엔날레, 오스트리아 그라츠 ESC갤러리, 2009년 인천 국제 디지털아트페스티벌, 2012년 오스트리아 그라츠 Kunstbad ’FLOW‘, 세르비아 노비사드문화예술센터, 2016년 부산비엔날레 등이 그것이다.

홍명섭은 한성대학교 예술대학 교수 그리고 청주시립미술관 관장으로 재직했으며, 미술비평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작가에 대한 다수의 비평문과 연구 논문 그리고 에세이 또한 단행본을 쓰기도 했다. 그의 저서로는 『전환기의 현대미술』(솔출판사, 1991), 『미술과 비평사이』(솔출판사, 1995), 『현대미술의 기초개념』(강성원 편집, 엔소로지, 1995), 『현대철학의 예술적 사용』(아트북스, 2017) 등이 있다.

홍명섭의 작품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 포항시립미술관, 아르코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청주시립미술관 등 국공립미술관과 사립미술관인 호암미술관 그리고 개인 컬렉터들이 소장하고 있다.

“Level casting ; 수평에의 의지” 1978-2023.
‘the will to be horizontal’ 시리즈
‘running railroad’ 갤러리 R 7월 전시

물은 언제나 수평을 찾아 흐른다. 물이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그건 수평을 이루고자 하는 의지일 것이다. 폭포는 수평에의 의지를 가장 강력히 드러내고 있지 않는가.

저 거대한 호수의 수평면을 만들어내는 중력(수평 의지)을 어떻게 하면 하나의 일시적 표면 현장 그대로 포획할 수는 없을까? 또는, 무한한 대지 표면의 장력을 어떻게 하면 프랙탈처럼 전체를 내포하는 부분 현장으로 제시할 수는 없을까?

내 작업을 지탱케 하는 정황은 어떠한 매개도 없이 ‘수평’을 감각으로 사유하기를 통해 아상의 반영을 최소화 하려는 과정이다.

(가만 보면) 한겨울 호수가 얼어붙으면 그 표면의 매끄러운 얼음판이야말로 곧 수평면을 스스로 캐스팅해내고 있는 형국이 아닌가. 또한, 끝없이 펼쳐지는 레일로드는 광활한 대지의 표면을 캐스팅해 내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것 아닌가.

광활한 호수의 빙판을 칸칸이 잘라내어, 이곳의 논리나 이곳의 서사로는 엮이지 않는 ‘다른’ 장소가 되게 한 장 한 장 옮겨, 다시 ‘수평-되게’ 조립해 나간다. 수평이라는 관념과 실제가 물성과 운동으로 현현하는 수평-되기의 반복. 나의 작업에서 ‘자리이동(displacement)’이야말로 완결판이 아닌, 일시적이고 이질적인(specific) 장소 생성 개념의 실천인 것이다.

(따라서) 내가 하려는 것은 폭포나 수평을 재현하려는 것도, 표현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세상의 리얼리즘을 반영하는 것과는 먼 ‘다른 장소’ 하나를 ‘추가(de-veloping)’하는, 일종의 불확정적인 ‘거름(filter)’ 행위이다. 물의 의지를 담아내는 그릇, 의지의 표면을 캐스팅하는 알맹이 없는 행위… 여기서 현실적 텍스트를 여과할 수밖에 없는 것은 말하자면 ‘단일 주체적 시각’을 걸러내는 운동을 얻고자 하기 때문이다.

과거란 수정될 수 있다는 보르헤스적 개념처럼, 나의 현재 작업이란 끊임 없는 과거와의 상호 인과적 수정이다. 따라서 나의 작업에 지난 과거란 따로 없다. 오로지 현재(작업)뿐이다. 이는 나의 작업세계에서 아카이빙의 의미가 허락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따라서) 과거가 지금의 원인으로 작동하는 연대기적 시간관이 현재를 억압하고 구속시키는 것이 아니라, 지금이 원인이 될 과거에 침투하여 얼마든지 과거를 재/창출하고 다르게 작동시킨다. 드러냄과 감춤의 이중의 시간이란 얼마든지 상호 인과적인 즉, ‘시대착오(ana-chronism)’의 시간으로 살아나기 때문이다.

------ ‘본다는 것’은 시지각 만의 문제가 아니라 ‘신체적 행위’이다. 그것은 공간에 노출되거나 포획된 우리의 몸이 느끼는 감각이고 몸의 경험이다. 이렇게 우리의 신체를 포획하는 작업과 엮이는 것은 우리 지각의 깨움과 불확정성에 대한 몽환적인 곡예이기도 하다.

홍명섭

홍명섭의 설치작품 <런닝 레일로드(running railroad)>

갤러리 R의 전시공간은 크게 3부분으로 나눠진다. 하나는 갤러리 출입문에서 시작하여 두 번째 전시공간으로 가는 천고가 낮은 일종의 ‘통로 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천고도 높은 메인 전시공간이며, 마지막 공간은 사무실로 향하는 천고는 높지만 폭은 좁은 통로 공간이다. 홍명섭은 갤러리 R의 전시공간에 시트 커팅으로 설치작품 <런닝 레일로드(running railroad)>(2023)를 작업해 놓았다.


홍명섭_running railroad_시트 컷팅, 테이핑_가변설치. 2023

머시라? 홍명섭의 <런닝 레일로드>에 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언급해 달라고요? 관객이 갤러리 R의 전시장으로 들어서면 오른쪽 벽면을 가로지르는 두 개의 검정 선을 만나게 된다. 두 개의 검정 선은 11미터에 달하는 벽면 끝까지 수평을 유지하면서 이어진다. 따라서 관객은 마치 검정 선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흥미롭게도 홍명섭은 벽면 끝에서 만나는 다른 벽면 모서리에 거울을 하나 설치해 놓았다. 그래서 검은 선은 11미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거울 속으로 끊임없이 펼쳐지는 것으로 느끼게 한다. 물론 두 개의 검정 선은 가로로 수평을 이루면서 공간을 맴돌기 때문에 거대한 타원을 그리면서 만나게 될 것이다.


홍명섭_running railroad_시트 컷팅, 테이핑_가변설치. 2023

뭬야? 벽면에 시트 커팅으로 작업한 두 개의 검정 선은 메인 전시공간의 중앙쯤에서 밑으로 호를 그리면서 바닥으로 펼쳐진다고요? 그렇다! 전시장 바닥으로 향한 검은 선은 다시 호를 그리면서 바닥 중앙에서 두 갈래 길로 갈라진다. 하나는 왼쪽으로 향해 가다가 벽면에서 멈추고, 다른 하나는 오른쪽으로 거대한 호를 그리면서 세 번째 전시공간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왼쪽 벽면에서 멈춘 검은 선은 거꾸로 호를 그리면서 세 번째 전시공간으로 사라지는 검은 선으로 합류한다.

네? 세 번째 전시공간에 작업한 검은 선은 어디로 사라지느냐고요? 메인 전시공간에서 두 갈래 길로 갈라진 선들이 다시 합류하여 세 번째 공간 바닥을 따라 거대한 호를 그리다가 벽면에서 멈춘다. 따라서 홍명섭의 <런닝 레일로드>는 3개의 거대한 비정형 원을 암시하는 셈이다.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냐고요? 만약 당신이 메인 전시공간 중앙에 작업한 호를 그리면서 만나는 세 개의 검은 선을 본다면, 그 세 개의 검은 선을 따라 머릿속으로 호를 그리면 거대한 비정형 원을 그릴 수 있게 될 것이다.


홍명섭_running railroad_시트 컷팅, 테이핑_가변설치. 2023

머시라? 홍명섭의 <런닝 레일로드>는 3개의 비정형 원이 아니라 4개의 비정형 원을 그려놓은 것이라고요? 제가 통로 벽에 작업한 가로의 수평선을 따라가면 부유하는 거대한 타원형을 지나쳤다고요? 맞다! 내가 그것을 깜빡했다. 뭬야? 홍명섭의 <런닝 레일로드>는 작품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철로(선로)’에서 모티브를 따온 것이냐고요? 2004년 홍명섭은 철길 이미지에 관해 ‘작가노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철길 이미지는 내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도 미지에의 동경과 같은, 비약이 없는 미지로의 표면장력, 문명과 혁명, 광야와 개척, 모험과 일탈, 유혹과 외경, 만나고 헤어짐, 심리적 방황 그리고 속도 등을 일깨우는 몽환적 모티브인 것이다.”

따라서 홍명섭의 <런닝 레일로드>는 철길에서 ‘동기부여(motivation)’를 받은 것이지 재현한 것은 아닌 것이다. 이를테면 그의 <런닝 레일로드>는 갤러리 R의 전시공간을 ‘다른 장소’로 전이시킨 것이라고 말이다. 따라서 관객은 작품 안에 있는 셈이다. 말하자면 관객은 작품 안에서 배회하게 된다고 말이다. 그렇다! 관객은 작품을 따라 온몸으로 경험한다. 그러면 홍명섭은 관객에게 작품 안에서 환각적이고 몽상적인 체험을 하도록 연출해 놓은 것이 아닌가?

홍명섭은 1982년 대전문화원화랑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설치작품 <런닝 레일로드>를 처음 선보인다. 그것은 거대한 벽면과 전시장 바닥에 검정 마스킹 테이프(masking tape)로 작업한 공간작품이다. 그는 이후 몇 차례 다른 전시공간들에서 공간에 적합한 설치작품 <런닝 레일로드>를 작업한다. 1998년 네덜란드의 슈테델릭 즈볼레 시립미술관(Stedeljjk Museum, Zwolle), 2004년 마로니에미술관(현 아르코미술관), 2009년 대전시립미술관, 2012년 세르비아의 노비사드 문화예술회관(NOVI SAD artcenter)과 OCI미술관, 2017년 대구 봉산문화회관 기억공작소의 설치작품 <런닝 레일로드>가 그것이다.


홍명섭_running railroad_taping on the wall. installation view 2004


홍명섭_running railroad_taping on the wall, iron slippers. installation view 2017

만약 당신이 홍명섭의 <런닝 레일로드>를 모조리 조회해 본다면, 각각의 작품이 장소마다 다른 모습으로 출현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를테면 그의 설치작품은 전시하는 장소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연출된다고 말이다. 따라서 그의 <런닝 레일로드>는 절대적인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늘 변화하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번 갤러리 R의 <런닝 레일로드>도 전시 기간 전시되다가 전시가 끝나면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홍명섭의 <런닝 레일로드>는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펠릭스 가따리(Felix Guattari)의 목소리를 빌려 말한다면 ‘영토화(territorialization)’뿐만 아니라 ‘재영토화(reterritorialization)’를 넘어 끊임없이 ‘탈영토화(deterritorialization)’를 지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홍명섭은 유년시절부터 지금까지도 미지에의 동경과 같은 ‘생산으로서의 욕망’을 자유롭게 한다. 따라서 그는 언제라도 떠날 준비를 하는 일종의 ‘유목-아티스트(nomadic-artist)’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면 홍명섭의 <런닝 래일로드>는 일종의 ‘탈주선(Lines of Flight)’이 아닌가? 왜냐하면 그는 ‘미술(작품)’의 주류적(major) 척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작업 방식을 창안하기 때문이다. 그는 지배적인 척도가 새겨 놓은 ‘요철(凹凸)의 공간’을 시트지로 ‘매끄러운 공간’으로 만들어 놓는다. 따라서 그는 미술의 주류적 척도를 넘어서 새로운 미술의 방식을 창안하는 아티스트이다. 나는 그의 <런닝 레일로드>를 일종의 ‘토폴로지컬 레일(topological rail)’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왜냐하면 그의 <런닝 레일로드>는 우리에게 상상력을 풍요롭게 확장시키는 ‘토폴로지컬 사유(topological thought)’를 제안하기 때문이다.

홍명섭의 평면작품 <런닝 레일로드(running railroad)>

홍명섭은 이번 갤러리 R 전시에 설치작품 <런닝 레일로드>에서 파생된 평면작품 3점도 전시한다. 그의 <런닝 레일로드-포터블 버전(running railroad-portable version)>(2023) 시리즈 2점과 <런닝 레일로드-갤러리 R(running railroad-gallery R)>(2023)이 그것이다. 그의 평면작품 <런닝 레일로드>는 스테인리스강 강판(stainless plate) 위에 UV 프린트(UV Print)한 것이다.


홍명섭_런닝 레일로드-갤러리 R (running railroad-gallery R)_sus plate 1.2t, UV print_72x100cm. 2023

홍명섭의 <런닝 레일로드-갤러리 R>은 갤러리 R에 시트 컷팅으로 설치한 <런닝 레일로드>를 평면에 펼쳐 놓은 것이다. 실내공간의 도면은 검정 색으로 프린트한 반면, 전시공간에 설치한 ‘런닝 레일로드’는 녹색으로 프린트해 놓았다. 따라서 관객이 그의 평면작품을 보고 ‘토폴로지컬 사유’를 하면 ‘토폴로지컬 레일’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머시라?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Nolan) 감독의 영화 『인셉션(Inception)』(2010)에서 꿈의 설계자가 도시의 건축물들을 접고 펼치게 하듯이 상상하면 될 것 같다고요? 뭬야? 영화 『인셉션』 포스터들 중에서 6명의 총을 든 사람을 중심으로 만든 포스터가 있는데, 그들 뒤로 마치 도로가 그들을 엄습할 것 같이 뒤집어 세워져 있는 것처럼 상상하면 될 것 같다고요?


홍명섭_런닝 레일로드-포터블 버전 I(running railroad-portable version I)_sus plate 1.2t, UV print_70x120cm. 2023


홍명섭_런닝 레일로드-포터블 버전 II(running railroad-portable version II)_sus plate 1.2t, UV print_120x70cm. 2023

홍명섭의 <런닝 레일로드-포터블 버전> 시리즈는 스테인리스강 강판 위에 검정 선뿐만 아니라 회색 선도 프린트해 놓았다. 그의 <런닝 레일로드-포터블 버전 I>은 미끈한 스테인리스 강판에 검정 수직선들과 회색 수직선들을 프린트한 반면, 그의 <런닝 레일로드-포터블 버전 II>는 미끈한 스테인리스 강판에 검정 수평선들과 회색 수평선들을 프린트해 놓았다. 그런데 검정 선과 회색 선은 서로 간섭하듯 겹쳐져 있다.

네? 영화 『인셉션』 포스터들 중에서 7명의 총을 든 사람을 중심으로 만든 포스터가 있는데, 그들은 뒤죽박죽인 건물들 위에 뒤죽박죽으로 서 있는 것으로 상상하면 될 것 같다고요? 나는 지나가면서 그의 <런닝 레일로드>를 일종의 ‘토폴로지컬 레일’로 중얼거렸다. 나는 홍명섭의 평면작품을 ‘토폴로지컬 평면작품’으로 부르고자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에게 ‘토폴로지컬 사유’를 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토폴로지컬 사유’는 우리의 일상을 생소하고 신비한 세계로 안내할 것이다.

김남훈의 <영고성쇠(榮枯盛衰)_틈의 살> 시리즈

“나와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거리 한 귀퉁이에 버려진 작은 사물들에 내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하나하나의 경우들을 살펴보고, 헤아리는 것은 그것을 증명하고자 함이 아니라 스스로 경험하고 확인하기 위해 보내는 신호이다. 그리고 되돌아오는 그 미약한 신호들을 감지하려 한 노력이라 할 수 있겠다.”

- 김남훈의 ‘작가노트’ 2023


갤러리 R. installation view. 2023

갤러리 R의 메인 전시공간 바닥에 홍명섭의 <런닝 레일로드>가 작업되어 있고, 벽면에는 김남훈의 신작 <관찰된 오브제-안산>(2023) 시리즈 2점과 설치작품 <영고성쇠(榮枯盛衰)_틈의 살(Wechselfalle)>(2019) 시리즈 2점이 설치되어 있다. 그의 일명 ‘영고성쇠’ 시리즈는 ‘청테이프’ 작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의 일명 ‘청테이프’ 작업은 길이나 건물의 외벽 등에 생긴 균열(crack)에 청테이프로 부착해 놓은 작업이다.


김남훈_그린 라인 XXIII, XXIV (green line XXIII, XXIV)_청테이프_ 광주비엔날레 야외_가변설치. 2002

김남훈은 ‘청테이프’ 작업을 1999년부터 시작한다. 하지만 그의 <영고성쇠>와 문맥을 이루는 ‘청테이프’ 작업은 2002년부터 시작한 일명 <그린 라인(GREEN LINE)>이다. 그의 <그린 라인>은 갤러리나 미술관뿐만 아니라 버려진 저수지나 나대지 그리고 도로나 건물의 외벽 등에 생긴 균열에 청테이프를 부착한 것이다. 따라서 그의 <그린 라인> 시리즈는 ‘청테이프’를 가지고 다양한 장소에서 매번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사라진다는 것을 알려준다. 말하자면 그의 ‘청테이프’ 설치작품은 전시하는 장소의 특성에 따라 다르게 연출된다고 말이다.


김남훈_그린 라인(green line)_벤트라게 수도원에 청테이프_독일 벤트라게_가변설치. 2009

그렇다면 김남훈의 <그린 라인> 시리즈는 절대적인 고정된 형태가 아니라 늘 변화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그의 ‘청테이프’ 설치작품은 예술가의 창작 과정이 행해지는 사적 공간인 스튜디오가 아닌 작품이 설치되는 전시공간인 일명 ‘포스트-스튜디오(post-studio)’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의 ‘그린 라인’ 시리즈는 일정 기간 전시된 후 해체되고 또 다른 장소에서 등장하고 다시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김남훈의 <그린 라인>은 홍명섭의 <런닝 레일로드>와 마찬가지로 ‘미술(작품)’의 주류적(major) 척도에서 벗어나 새로운 작업 방식을 창안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이를테면 그는 지배적인 척도가 새겨 놓은 ‘홈 파인 공간(크랙 난 공간)’을 청테이프로 ‘매끄러운 공간’으로 만든다고 말이다. 따라서 그는 미술의 주류적 척도를 넘어서 새로운 미술의 방식을 창안하는 아티스트라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나는 그를 홍명섭과 마찬가지로 ‘유목-아티스트(nomadic-artist)’로 부른다.


김남훈_영고성쇠(榮枯盛衰)_틈의 살 I Wechselfalle_3D 프린팅 PLA, 가변설치. 2019

자,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원점? 김남훈의 <영고성쇠_틈의 살> 시리즈 말이다. 그것은 도로나 건물의 벽에 생긴 균열을 ‘캐스팅(casting)’한 것이다. 머시라? 어떻게 균열을 캐스팅한 것이냐고요? 그의 <영고성쇠>는 2009년부터 시작된다. 당시 김남훈은 균열을 모델로 삼아 수공으로 나무를 직접 깎아 페인트를 칠해놓았다. 2010년에는 균열을 세락믹으로 제작했다. 그리고 갤러리 R에 선보이는 <영고성쇠_틈의 살>은 2019년에 제작한 것이다. 그것은 균열을 컴퓨터에 디지털 데이터로 입력해 3D 프린터(3D Printer)로 프린팅한 것이다. 뭬야? 그것은 무슨 재료로 만들었느냐고요? PLA 필라멘트(polylactic acid filament)로 프린팅 한 것이다. PLA 필라멘트는 비(非)석유화학 플라스틱인 옥수수 기반 열가소성 수지로 폐기 시 미생물에 의해 생분해되는 ‘재생 가능한 바이오 플라스틱’이란다.


김남훈_영고성쇠(榮枯盛衰)_틈의 살 II Wechselfalle_3D 프린팅 PLA, 가변설치. 2019

김남훈은 그것을 <영고성쇠_틈의 살>이라고 작명했다. ‘영고성쇠(榮枯盛衰)’는 문자 그대로 ‘꽃이 피었다 지고 융성했다가 쇠퇴함’을 뜻한다. 따라서 무리는 ‘영고성쇠’를 세상 모든 일이 흥하고 망함을 거듭한다는 이치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그는 부제로 ‘틈의 살’이라고 표기해 놓았다. 네? ‘틈의 살’은 ‘균열’을 은유하느냐고요? 물론 ‘균열’에는 ‘살’이 부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작가는 ‘균열’을 ‘틈의 살’이라고 은유한 것일까? 김남훈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건물에 균열이 생긴다는 것은 건물이 스스로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이 상처를 입을 경우, 몸은 상처에 반응해서 빨리 회복하려고 반응하죠. 저의 <영고성쇠_틈의 살>은 건물에 생긴 상처(균열)를 ‘보이지 않는 틈의 살’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남훈의 <관찰된 오브제_안산> 시리즈

자, 이번에는 김남훈의 <관찰된 오브제_안산> 시리즈를 보도록 하자. 그것은 백색 폼보드(Foamboard) 위에 다양한 사물들을 부착해 놓은 작품이다. 머시라? 무슨 사물들이냐고요? 그의 <관찰된 오브제_안산 I> 경우 크게 검정과 녹색의 오브제들로 구분할 수 있겠다. 검정 오브제들은 다음과 같다 : 스폰지 조각, 신발창 조각, 끈, 비닐 조각, 머리끈, 머리빗, 볼펜 뚜껑, 단추, 장난감 총 부품, 성냥갑, 머리핀, 각종 부품들 조각 등. 그리고 녹색 오브제들은 다음과 같다 : 과자 봉지 조각, 인조 잎사귀, 약봉지, 스타벅스 스티커, 고무줄, 구슬, 명함, 마개, 끈, 접이식 솔, 각종 부품들 조각 등.


왼쪽) 김남훈_관찰된 오브제_안산 I_폼보드 위에 거리에서 수집한 버려진 사물들_1220mmx910mm. 2023
오른쪽) 김남훈_관찰된 오브제_안산 II_폼보드 위에 거리에서 수집한 버려진 사물들_1220mmx910mm. 2023

뭬야? 백색 폼보드에 부착한 다양한 사물들은 어디서 수집한 것이냐고요? 그것은 김남훈이 거주하는 안산의 거리에서 수집한 버려진 오브제들이란다. 그는 길에 버려진 오브제들을 우선 사진을 찍고 수집한다. 그는 수집한 오브제들을 작업실로 가져와 일일이 소독을 한다. 그리고 그는 각각의 오브제에 수집 일자를 적어 백색 폼보드에 부착해 놓는다. 끝으로 그는 그 버려진 오브제들을 유리 액자에 담는다. 따라서 보잘 것 없는 길거리의 ‘쓰레기’가 ‘작품’으로 전이된다. 네? 작가가 쓰레기를 수집한 계기가 궁금하다고요? 김남훈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제가 독일에서 작업실과 학교를 오고 갈 때 자전거를 타고 다녔는데, 동네가 사건 사고 하나 없이 평화로운 거예요. 그런데 거기서 유일하게 일상을 깨는 게 바로 쓰레기입니다. 속옷이 떨어져 있는 걸 보고 굉장히 사적인 물건이 길 한복판에 있는 게 하나의 ‘사건’처럼 느껴졌어요. 그리고 쓰레기를 자세히 살펴보게 되었어요. 누군가 버리거나 잃어버린 소지품은 누군가로부터 한동안 소유된 시간이 있었을 텐데, 지금은 거리의 파편 같은 쓰레기로 구석에서 외면받고 있는 셈이죠. 그리고 여기서 버려진 쓰레기들은 그 당시에만 존재하는 도시의 시간과도 같은 것이었죠. 그러한 도시의 시간을 기록하는 척도로 쓰레기를 모았어요. 제가 여러 도시에서 이 작업을 하다 보니 도시마다 특징이 있어요. 뮌스터에는 죽은 토끼가 많이 발견됐고, 용인에서는 부동산 투자 명함이나 아파트 광고, 고양에서는 속칭 ‘삐라’라는 선전용 불온 전단이 많았어요.”

길 위에서(On The Road)
김남훈 & 홍명섭

홍명섭과 김남훈은 사무실 공간에도 3점의 작품을 전시한다. 홍명섭의 <디-벨로핑 더 사이클(de·veloping the circle)>(2019) 시리즈 2점과 김남훈의 <18911 죽음의 열거>(2017)가 그것이다. 홍명섭의 <디-벨로핑 더 사이클>은 일종의 ‘토폴로지컬 평면’이라고 할 수 있겠다. 뭬야? 어떤 점에서 그의 <디-벨로핑 더 사이클>은 일종의 ‘토폴로지컬 평면’이냐고요? 그것은 엠디에프(MDF)에 기하학적인 현상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왼쪽) 홍명섭_de·veloping the circle I_manuscript paper, MDF_55.7x80cm. 2019
오른쪽) 홍명섭_de·veloping the circle II_manuscript paper, MDF_55.7x80cm. 2019

그런데 그 기하학적인 형상은 레이저 광선으로 나무 합판(Medium-Density Fiberboard)을 그을린 것으로 마치 400자 원고지(squared manuscript paper)처럼 보인다. 홍명섭은 ‘원고지’ 가운데 부분을 레이저 광선으로 원형을 절단(laser cutting)하여 비스듬히 기울여 놓았다. 따라서 관객이 일정한 규격을 가진 수평면들로 이루어진 ‘원고지’ 중앙을 보면 착시현상을 일으키게 된다. 왜 그의 <디-벨로핑 더 사이클>이 일종의 ‘토폴로지컬 평면’인지 감 잡으셨지요?


김남훈_18911 죽음의 열거_폼보드 위에 여러 종류의 작은 날벌레_205 목공용 접착제_89x51cm. 2017

김남훈의 <18911 죽음의 열거>는 언 듯 보면 마치 백사장의 모래알들이나 밤하늘의 은하수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당신이 그의 작품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그것들이 다름아닌 작은 날벌레라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2017년 당시 그는 고양 레지던시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해 여름 그는 작업실에 들어와 죽은 작은 날벌레들을 목격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는 길 위에 버려진 ‘쓰레기’를 작품으로 전이시키듯이 죽은 날벌레들을 작품으로 자리바꿈해 놓았다. 네? 왜 작가는 날벌레를 작품으로 작업하게 된 것이냐고요? 김남훈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초여름 장마가 시작될 무렵, 방충망을 넘나드는 미세한 날벌레 떼 수백 마리가 들어와 죽어 창가에 수북이 쌓인 날이 있었다. 청소해버리면 먼지로 여겼을 죽음들을 나는 붓 한 자루로 작업실을 쓸어 청소하고 핀셋으로 미시 세계와 같은 그 작은 벌레들을 골라내어 하나하나의 죽음을 헤아려 보기로 했다. 매일 또 매일 쌓이는 죽음을 보았고 수집하여 각각 날벌레들의 케이스를 나열하였다. 이 작업에 열거된 죽음은 18,911마리이고 작업이 더해지면 제목도 바꿔 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