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박정기 & 안시형

2023년 10월 7일 - 10월 29일

차 스튜디오(CHA studio)
인천광역시 중구 신포로15번길 58
오픈시간 : 매주 금, 토, 일 오후 1시부터 6시까지(매주 월, 화, 수, 목 휴관)

전시기획 : 갤러리 R 류병학 큐레이터

“앗! 황소다.”
무게 600kg에 달하는 황소!
뼈는 철근으로, 가죽은 시멘트로 제작된 안시형의 <황소>

“앗! 황소다.” 인천아트플랫폼을 지나 신포로 15번길을 걷던 행인이 한 말이다. 차 스튜디오(CHA studio) 1층에 전시된 황소는 행인들의 발걸음을 잡는다. 왜냐하면 그 황소는 길이 4m에 폭이 2m이고, 무게는 무려 600kg에 달하기 때문이다. 갤러리에 황소? 거대한 황소는 밀양에서 트럭을 타고 인천으로 올라왔다. 황소는 뼈를 철근으로, 가죽을 시멘트로 제작한 안시형 작가의 조각작품이다. 여러분이 보시면 아시겠지만 안시형의 <황소>(2012)는 요즘 보기 드문 ‘조각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안시형_황소_철근, 시멘트. 2012

안시형은 미술계에서 일명 ‘장난꾸러기(惡童)’로 불린다. 왜냐하면 ‘조각가’ 안시형은 주로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오브제들에 간략한 텍스트를 제공한 작품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는 ‘조각가’라는 명칭과 달리 ‘손노동’을 하지 않는 조각가이다. 그는 기존의 오브제에 단지 텍스트만 첨가할 뿐이다. 그는 힘 안 들이고 조각작품을 제작하는 한 마디로 ‘손 안 대고 코 풀기’를 하는 조각가인 셈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번 차 스튜디오 2인전에 안시형은 엄청난 노동을 요구하는 조각을 선보인다. 와이? 왜 그는 ‘노동’을 요구하는 조각 <황소>를 작업한 것일까? 그런데 안시형이 2013년부터 일상용품과 텍스트로 구성된 일명 ‘사연’ 시리즈를 작업하고 있다는 점을 참조한다면, 그의 <황소>는 ‘레디메이드-텍스트’ 작업을 시작하기 바로 전 해에 마지막으로 ‘노동’을 통해 조각한 작품임을 알려준다. 류병학 미술평론가는 안시형의 <황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2014년 살롱 아터테인(salon ARTERTAIN)의 개관전으로 안시형 작가의 개인전 『안시형의 재산목록』 준비를 위해 그의 밀양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로 기억됩니다. 당시 저는 그의 작업실 마당(들판)에 놓여있는 거대한 <황소>를 처음 보았는데, 저는 그의 <황소>를 보자마자 압도당했습니다. 그는 황소의 뼈를 철근으로 제작하고, 가죽을 시멘트로 입혀놓은 ‘황소’였습니다. 저는 그의 <황소>를 들판이 아닌 화이트 큐브에 전시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10년 만에 저의 꿈이 이루어진 셈입니다.”

머시라? 안시형의 <황소>가 철근과 시멘트로 제작되었다고 하는데, 건축물의 뼈대에 사용하는 굵직한 강철을 어떻게 휘었는지 궁금하다고요? 나도 그것이 궁금해 안시형에게 물었다. 그는 “고물상에서 폐건축물 철거 철근들을 구입해 재활용한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고물상에서 구입한 철근들은 온전하지 않고 구부러져 있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그는 구부러진 강철들을 절단하고 용접하여 황소의 뼈를 만들었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는 뼈(강철)들 사이에 시멘트로 발라 ‘가죽(피부)’을 만든 것이다.

안시형의 근육질 <황소>는 농부의 밭갈이용이나 물건을 나르는 운반용이 아니라 마치 싸움소처럼 보인다. 소의 머리는 숙이고 있고 두 앞다리는 벌려져 있어 마치 싸움을 할 태세이다. 소의 뿔은 거대한 근육질의 몸체에 비해 작지만 매서워 보인다. 더욱이 소의 뿔은 반짝인다. 그는 여러 가닥의 철근을 모아 꼭짓점에 용접하여 뿔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녹슬고 휘어진 뿔을 그라인더에 연마 날을 부착하여 가공한 다음, 그라인더에 다양한 사포 날을 교환해 가며 열라 연마하여 광택을 냈단다.

뭬야? 안시형의 <황소> 꼬리도 폐건축물 철거 철근을 이용한 것이냐고요? 그것은 몇 가닥의 철근들을 구불구불하게 엮여 놓은 모양새이다. 그런데 그것은 안시형이 소의 뼈들과 마찬가지로 직접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폐건축물 철거 철근들에서 우연히 발견한 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그의 <황소> 꼬리는 자연스럽게 구부러진 철근들을 용접해 놓은 것이다. 네? 당신은 그의 <황소>를 보면서 캔버스에 굵은 붓으로 대담하게 붓질한 황소 그림을 떠올린다고요?

안시형의 <소를 타고 소를 찾는 여인>
안시형의 ‘사연(事緣)’ 시리즈 13점

물론 안시형은 이번 차 스튜디오의 2인전에 오브제와 텍스트를 접목한 신작 ‘사연(事緣)’ 시리즈 13점도 선보인다. 그런데 그의 ‘사연’ 시리즈가 한결같이 ‘소’와 관련된 것이란 점이다. 그는 각종 서적들에서 ‘소’를 발견한다. 이를테면 그는 김소월의 시, 윤동주 시, 백석의 시, 청록파의 시, 초딩 4학년 바른생활에 실린 국민교육헌장에서 그리고 초딩 음악노트에 그린 새마을노래 악보에서 ‘소’를 발견한다고 말이다.

안시형은 버려진 목장갑에서 ‘소’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의 어머니가 밭에서 주우신 녹슨 동전을 보면서 ‘농부와 소’를 기억한다. 따라서 각종 서적이나 목장갑과 녹슨 동전은 일종의 ‘파운드 오브제(Found object)’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 그는 주석으로 대량생산한 황소-라이터와 황동으로 만든 황소 장난감 그리고 여자 인형으로 텍스트와 함께 작업한 ‘사연’ 시리즈도 선보인다.


안시형_사자가 되고 싶은 황소_황소-라이터, 공업용 자석들, 쇳가루. 2023

안시형의 <사자가 되고 싶은 황소>(2023)는 주먹만한 크기의 황소에 쇳가루들을 부착한 조각이다. 머시라? 어떻게 황소에 쇳가루를 부착한 것이냐고요? 뭬야? 혹시 황소가 ‘자석(磁石)’이냐고요? 안시형은 “공업용 자석들을 삼킨 황소에 쇳가루들을 뿌려 몸에 달라붙게 만들었다”고 한다. 따라서 쇠가루들이 붙은 황소는 마치 사자로 변신한 것처럼 보인다.


안시형_소를 타고 소를 찾는 여인_황소 장난감, 여자 인형. 2023

안시형의 <소를 타고 소를 찾는 여인>(2023)은 황소에 겉옷만 걸친 여인이 타고 있는 작품이다. 물론 황소와 여인은 공장에서 대량생산된 일종의 ‘레디메이드(Ready-made)’이다. 네? 그의 <소를 타고 소를 찾는 여인>은 선불교에서 견성(見性)에 이르는 참선 수행의 과정을 10개의 그림으로 나타낸 ‘십우도(十牛圖)’를 연상케 한다고요? 머시라? ‘십우도’에 대해 언급해 달라고요? ‘십우도’를 간략하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심우(尋牛) 소를 찾다.
2. 견적(見跡) 소의 발자국을 따라간다.
3. 견우(見牛) 소를 발견한다.
4. 득우(得牛) 소를 붙잡는다.
5. 목우(牧友) 소를 길들인다.
6. 기우귀가(騎牛歸家) 소에 올라타 집으로 돌아간다.
7. 망우재인(忘牛在人) 소는 잊고 사람만 앉아 있다.
8. 인우구망(人牛俱忘) 소도 사람도 없다.
9. 반본환원(返本還源) 근원으로 돌아간다.
10. 입전수수(入廛垂手) 세속으로 들어가 손을 드리운다.

뭬야? 안시형의 <소를 타고 소를 찾는 여인>은 ‘십우도’에서 어느 단계에 해당하느냐고요? 여인이 소를 타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은 십우도의 6번째 단계인 ‘기우귀가’를 암시한다. 그런데 문제는 소를 타고 있는 여인이 여전히 소를 찾고 있다는 점이다. 문득 조선의 승려이자 서예가인 청허 휴정(淸虛 休靜)이 제자 소요 태능(消遙 太能)에게 써준 시 한 수가 떠오른다. 휴정의 시 전문은 다음과 같다.

斫來無影樹
憔盡水中漚
可笑騎牛者
騎牛更覓牛

네? 한문을 한글로 번역해 달라고요? 나도 자신 없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서핑하다 찾는 한글 번역을 이곳에 인용해 놓겠다.

그림자 없는 나무로 장작을 패고
물거품을 태우는구나
가소롭다 소를 타는 자여
소를 타고서 소를 찾는구나

안시형의 <소를 타고 소를 찾는 여인>은 십우도에서 동자승을 여인으로 교체해 놓았다. 그리고 그는 종이에 ‘소를 타고 소를 찾는 여인’이라고 적었다. 지나가면서 나는 ‘십우도’를 선불교에서 견성(見性)에 이르는 참선 수행의 과정을 10개의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중얼거렸다. 여기서 ‘견성’은 모든 망혹(妄惑)을 버리고 자기(自己)의 타고난 본래(本來)의 천성(天性)을 깨닫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안시형은 우리에게 원래 자기 안에 있는 천성을 다른 곳에서 찾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란 말인가?

길이 2m 40cn에 달하는 박정기의 족자화 <도를 아십니까>
지폐들에 인쇄된 명화들을 그린 박정기의 문자도 <도(道)>
세 개의 텍스트와 소를 탄 노자를 그린 박정기의 <노자(老子)>

차 스튜디오 1층에서 안시형 작가의 작품들을 보고 2층으로 올라가면 박정기 작가의 작품들을 만나게 된다. 박정기는 2층 전시장에 수묵화 2점과 문자도 1점 그리고 족자 1점과 4폭 병풍 1점을 연출해 놓았다. ‘박정기’ 하면 공공미술이나 오브제 혹은 설치작품 그리고 영상작품을 떠오르게 한다. 물론 그의 작품들 중에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위한 드로잉 작업도 있다. 그런 그가 이번 차 스튜디오에서 수묵화들을 선보인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박정기는 영남대학교 미술대학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독일 뮌스터 미대에서 유학한다. 따라서 그의 작품들에 동양화의 영향이 남아있다. 하지만 그가 수묵화를 전면에 내걸고 전시한 경우는 그동안 없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차 스튜디오의 전시는 박정기에게 하나의 변환점을 암시한다고 할 수 있겠다.


박정기_도를 아십니까_종이에 먹과 채색_2400mmx600mm. 2023

박정기는 차 스튜디오의 1층과 2층 사이에 폭 60cm, 길이 2m 40cm에 달하는 족자화 <도를 아십니까>(2023)를 설치해 놓았다. 그것은 제목 그대로 ‘도를 아십니까’라는 문구에 다양한 이미지를 그려놓은 일종의 ‘현대판 문자도’이다. 그의 족자화 <도를 아십니까>는 마치 물이 흐르듯 그린 문자도처럼 보인다. 그는 문자들에 복사꽃과 나비들 그리고 칼과 거문고 또한 물고기들을 그려놓았다. 물과 복사꽃이 ‘무릉도원(武陵桃源)’을 암시한다면, 나비들은 장자(莊子)의 ‘호접몽(胡蝶夢)’을, 칼은 장자의 ‘포정해우(抱丁解牛)’를, 거문고는 장자의 ‘무하유(無何有)’를, 물고기는 장자의 ‘어지락(魚之樂)’을 떠오르게 한다.


박정기_도(道)_종이에 먹과 채색_915mm x740mm. 2023

박정기의 <도(道)>(2023)는 한자 ‘도(道)’에 각종 이미지를 그려놓은 일종의 ‘문자도’이다. 그런데 그 각종 이미지는 어디선가 보았던 이미지들이다. 그렇다! 그것은 우리나라 지폐에서 보았던 명화들의 이미지들이다. 오만원권의 앞면에 있는 신사임당의 <묵포도>와 <초충도수병>의 가지, 오만원권 뒷면에 있는 어몽룡의 <월매도>, 오천원권에 있는 신사임당의 <초충도>의 맨드라미와 수박, 천원권에 있는 겸재 정선의 <계상정거도(溪上靜居圖)>, 만원권 앞면에 있는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가 그것이다.

물론 지폐에 인쇄된 명화들의 이미지들은 지폐에 적합하도록 보정작업을 한 일종의 ‘복제물’이다. 박정기는 명화를 보정 작업한 지폐 이미지를 모델로 삼아 <도>를 작업한 것이다. 따라서 그의 그림은 원본을 복제한 것이 아니라 복제한 것을 모델로 복제한 ‘복제의 복제’인 셈이다. 와이? 왜 그는 원본을 모델로 삼지 않고 지폐에 인쇄된 이미지들을 모델로 삼은 것일까? 그의 <도>는 돈과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박정기_노자(老子)_종이에 먹_850mmx570mm. 2023

그 점을 알아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박정기의 <노자(老子)>(2023)를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그것은 소를 타고 있는 노인과 서 있는 노인을 수묵으로 그린 일종의 ‘수묵화’이다. 머시라? 박정기의 <노자>를 보니 황소를 타고 있는 노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고요?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노자가 소를 타고 떠나는 그림(老子出關圖)이 유행했던 것 같다. 정선의 <노자출관도>(18세기 초)나 김홍도의 <노자출관도> 그리고 장승업의 <노자출관도>(1896)가 그것을 반증한다.

일명 <노자출관도>는 노자의 『도덕경(道德經)』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그린 것을 알려져 있다. 만약 당신이 정선의 <노자출관도>를 본다면, 소를 타고 있는 노인과 그 옆에 서 있는 노인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소를 타고 있는 노인은 노자이고, 서 있는 노인은 함곡관(函谷關)의 관령(管領)인 윤희(尹喜)이다. 그리고 두 노인 뒤로는 안개에 싸인 2층 누각이 그려져 있다. 그 누각은 서역으로 나가기 위해 거치는 관문인 함곡관이다. 따라서 노자는 함곡관을 통과해서 서쪽으로 가려는 중 윤희를 만난 셈이다.

뭬야? 어떻게 윤회가 노자를 만나게 되었느냐고요? <노자출관도>와 함께 언급되는 그림이 <자기동래도(紫氣東來圖)>이다. <자기동래도>는 윤희가 누대에 올라 사방을 관망하다 남극노인성(南極老人星)의 자줏빛 기운(紫氣)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옮겨오는 것을 보고 성인(聖人)이 올 것을 예측했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말하자면 윤희는 노자를 성인으로 본 것이라고 말이다. 따라서 윤희는 노자에게 달려가 주(周)나라를 등지고 떠나는 이유를 묻는다. 노자는 주나라의 덕(德)이 시들어 떠난다고 말한다. 그래서 윤희가 노자에게 덕의 가르침을 간청하자, 노자는 5천여 자의 글을 써서 윤희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81장(章)으로 된 노자의 『도덕경』이란다.

박정기는 한지에 수묵으로 소를 타고 있는 노자와 서 있는 윤희의 대화 모습을 그려놓고 여백에 세 개의 텍스트를 적어놓았다. 그는 세 개의 텍스트를 붓으로 멋을 부리지 않고 또박또박 적었다. 나는 그의 서예를 ‘착한 체’로 부르고 싶다. ‘착한 체’로 쓰인 세 개의 텍스트는 이번 차 스튜디오에 전시한 그의 작품세계로 한 걸음 들어서는 데 매우 유용하다. 따라서 나는 이곳에 그 전문을 인용해 놓겠다.

도를 아십니까? 길을 걷다가 언젠가 한 번 들어본 적이 있는 이 말은 이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대략 팔십년대 후반부터 구십년대 중반까지 성행했던 대순진리회 포교과정에서 자주 쓰던 문구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도를 아십니까’에서 말하는 도는 원래 도가에서 삶의 본질을 의미하는 철학적 용어이다. 도에 대해 도덕경 첫 장에서는 ‘도가도비상도’라고 도를 도라고 말하면 항상 그러한 도가 아니라고 말한다. 도는 언어적 사고 영역에서 벗어나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도를 아십니까’라는 질문 자체가 역설적 모순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이 질문은 매우 도발적으로 들린다.

도에 대한 이런 관점은 당나라 선승 조주의 일화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한 중이 조주에게 물었다. 달마가 서쪽으로부터 온 까닭은 무엇입니까? 조주는 ‘도란 무엇입니까’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 질문에 답했다. 뜰 앞에 잣나무리. 혹자는 조주의 이 대답에 대해 도는 만물에 편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내포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이해도 역시 도에 대한 언어적 사고와 인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조주의 대답은 오로지 질문자의 언어적 사고 습관을 부수기 위한 수단일 뿐 다른 언어적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지금 나는 다시 물어본다. 도를 아십니까? 다소 낭만적이게도 들리지만 이제 이런 질문 자체가 생소하기까지 하다. 한때 최고의 정신적 가치 중 하나로 인식되었던 도는 사라지고 자본과 돈의 독점적이고 절대적인 가치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아니 도가 사라져서 자본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대량소비사회로 자본을 절대 가치화 하는 과정에서 이에 반하는 도는 제거되었을 뿐이다. 이제 인간이 발견한 다양한 가치의 생태계는 몰락하고 있다. 도덕경 마지막 문장인 ‘도법자연’ ‘도는 스스로 그러한 자연을 따른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자연 역시도 자본의 착취로 인해 스스로의 자정복원 능력을 상실해 가고 있다. ‘호명천 맑은 물은 낙동을 향하네.’ 내가 자란 고향 초등학교 교가에 등장하는 맑은 물도 산업화 시기를 거치면서 사라져버렸다. 도는 더 이상 따를 터전마저 상실해 버렸다. 터전을 잃은 도는 도일까?

핸드폰을 보고 있는 노인을 그린 박정기의 <고사관수도>
지옥도를 연상케 하는 박정기의 4폭 병풍 <몽유도원도>

박정기의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2023)는 조선시대 사대부 화가인 강희안(姜希顔)의 <고사관수도>(15세기)를 패러디한 수묵화이다. 박정기의 <고사관수도>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강희안의 <고사관수도>와 같은 크기(23.5×15.7cm)의 한지에 수묵으로 그려져 있다. 따라서 언 듯 보면 박정기의 <고사관수도>는 강희안의 <고사관수도>를 그대로 재현한 것처럼 보인다.


박정기_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_종이에 먹과 채색_195mmx288mm. 2023

그런데 박정기의 <고사관수도>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을 배경에 두고 바위에 엎드린 자세로 물을 바라보고 있지 않고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는 고사(高士)의 유유자적한 모습을 그린 것이다. 그는 절벽과 바위를 강한 필세와 묵법으로 기량을 한껏 뽐내고 있다. 물론 그는 절벽에서 내려진 덩굴을 빠른 속필로 간결하게 표현해 놓아 자신감을 드러낸다. 그리고 화면 아래에는 잔잔한 물결을 그려놓아 고요함을 느끼게 한다.

자, 그러면 고요한 자연 속에 그려진 고사를 보자. 고사는 대머리로 두 눈은 작고, 코는 돼지코이며, 넓은 입 양 끝에 수염이 살짝 나 있어 격조 높은 선비(高士)라기보다 차라리 마치 개구쟁이처럼 우스꽝스럽다. 고사는 넓은 소매가 있는 포를 입고, 소매 속에 두 손을 감춘 채 핸드폰을 잡고 삼매경에 빠져있는 듯 보인다. 이를테면 고사는 핸드폰에 빠져 세상사를 잊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그의 <고사관수도>는 현실의 모든 속박에서 벗어나 핸드폰에 몰입하는 현대인의 일상을 표현한 것이 아닌가?


박정기_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_냉장고 포장박스에 먹과 채색_1800mmx3600mm. 2023

마지막으로 박정기의 4폭 병풍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2023)를 보도록 하자. 그것은 제목에서 암시하듯이 안견(安堅)의 <몽유도원도>(1447)를 패러디한 것이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세로 38.7cm, 가로 106.5cm인 반면, 박정기의 <몽유도원도>는 세로 1m 80cm, 가로 3m 60cm에 달하는 거대한 그림이다. 그리고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비단 바탕에 먹과 채색으로 그린 두루마리 그림인 반면, 박정기의 <몽유도원도>는 냉장고 포장박스에 먹과 채색으로 그린 4폭 병풍화이다.

화면 왼쪽 하단부는 안평대군이 꿈 속에서 박팽년과 함께 당도했다는 오솔길과 산들이 그려져 있다. 특히 산들은 둥그스름하고 나지막하여 우리의 산천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그 우측에 갑자기 높고 가파른 산줄기가 나타난다. 기괴한 바위산과 험한 절벽들이 늘어선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가면 폭포가 나타난다. 험준한 바위와 계곡은 비스듬한 복숭아밭을 병풍처럼 둘렀다. 따라서 골짜기로 들어서면 탁 트인 도원동이 펼쳐진다. 도원동은 비스듬하게 배치되어 자욱한 구름 안개에 싸여 있다.

이런 단편적인 읽음은 안평대군이 꿈 속에서 박팽년과 함께 당도했다는 오솔길과 산들이 그려진 곳이 현실 세계라면, 도원동은 비현실의 세계를 암시한다. 현실 세계의 산세는 수평(정면)으로 그려진 반면, 비현실의 세계는 하늘에서 내려다본 부감법(俯瞰法)으로 그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 세계와 비현실 세계는 이질적으로 보이지 않고 오히려 자연스럽게 문맥을 이루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여기까지는 안견의 <몽유도원도>와 박정기의 <몽유도원도>가 다르지 않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정묘년(1447년) 음력 4월 20일 안평대군은 꿈 속에서 본 도원동을 안견에게 그림으로 그리게 했고, 안견은 사흘 뒤인 4월 23일에 <몽유도원도>를 완성한다. 그런데 안견의 <몽유도원도>에는 안평대군의 꿈 속에서 도원동을 함께 방문했다는 박팽년은 물론 오솔길의 갈림길에서 만난 산관야복 차림의 사람 그리고 동행했다는 최항과 신숙주 또한 안평대군 자신도 보이지 않는다. 와이? 왜 안견은 안평대군의 꿈 속에 등장한 인물들을 ‘무대’에 출연시키지 않은 것일까?

하지만 박정기의 <몽유도원도>에는 졸라 많은 이들을 캐스팅되어 있다. 그는 오른쪽 상단에 백색으로 무교의 삼신(三神)을 등장시켰다. 그리고 그는 왼쪽 상단에 티벳 불교미술에 자주 등장하는 붉은색으로 ‘분노의 신’을 출현시켰다. 또한 그는 현실 세계뿐만 아니라 비현실 세계에도 죽은 이들을 그려놓고 폭포수와 강물을 피로 물들게 표현해 놓았다 와이? 왜 박정기는 ‘몽유도원도’를 피바다로 물들게 한 것일까?

머시라? 도원동이 인간들에게 알려지면서 인간의 욕망으로 인해 도원동의 종말을 맞이한 모습을 그린 것 같다고요? 뭬야?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바로 도원동인데, 우리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도원동을 욕망하면서 인간 스스로 파멸을 맞이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고요? 네? 수양대군이 단종의 보좌 세력인 안평대군 그리고 원로대신인 황보인과 김종서 등 수십 명을 살해하고 정권을 잡은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암시하는 것 같다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