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볕 내리는 날

김희진 & 박정용
gallery R
서울특별시 성동구 광나루로 294 성동세무타워 B01호
TEL 02-6495-0001
e-mail galleryrkr@gmail.com

2024년 5월 4일(토) – 6월 1일(토)

작가와의 대화 : 2024년 5월 4일(토) 오후 3시 - 4시

전시작품
천연염색화 22점, 드로잉-자수 38점. 조각보 7점, 브로치 15점, 스카프 7점,
파우치 5점, 넵킨 홀더 2점, 베게 2점, 행주 3점, 매트 2점, 설치작품 2점
총 105점

전시오픈 : 매주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오픈시간 :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전시휴관 : 매주 일요일, 월요일


김희진 & 박정용의 2인전 『봄볕 내리는 날』 전시광경_갤러리 R. 2024

봄볕 내리는 날

2022년 가을 나는 지인의 소개로 강원도 삼척시 노곡면 중마읍리에서 독특한 자수 작업을 하는 김희진 작가와 천연염색으로 회화 작업을 하는 박정용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들은 천연염색과 규방 공예를 강의하는 ‘우리 빛깔연구소’와 ‘봄볕 내리는 날’이라는 공방을 운영하고 있었다.

1999년 김희진은 영진전문대학 의상학과(야간)로 편입한다. 그녀는 한복 강의 때 교수님이 보여주신 조각보 도록을 보고 조각보에 반한다. 그녀는 조각보를 배워보고 싶어 수소문하였으나 당시 대구에서 조각보를 가르쳐주는 곳이 없었단다. 그녀는 졸업 후 포털 사이트 다음(DAUM)의 카페를 통해 대구에서 조각보과 천연염색 특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참여하게 된다. 당시 강사로 오신 김왕식 선생님과 인연이 닿아 2004년 봄 회사를 퇴사하고 남편과 함께 화순에 집을 구해 조각보와 천연염색을 배우고 그해 겨울 남편의 고향인 강원도 삼척으로 이사해 본격적인 조각보 작업을 하게 된다.

한편 박정용은 화학을 전공하지 않았고, 미술을 전공하지도 않았으며, 염색도 전공한 바 없단다. 그는 원래 대학에서 물리를 전공했다고 한다. 그는 1997년 영남대학교 이과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대학 시절 ‘민속보존연구회’라는 청도차산농악과 밀양오북놀이, 통영오광대를 전수하는 동아리에서 장구를 배우기도 했단다.

이후 그의 관심사는 장구에서 컴퓨터로 옮겨갔다고 한다. 그는 1990년대 중반 인터넷의 대중적 보급이 진행되던 시기에 컴퓨터그래픽을 공부한다. 그는 1996년 자신이 작업한 컴퓨터그래픽을 천리안에 올렸는데 한글과 컴퓨터에서 작품제작과정을 써달라고 원고료를 보내왔단다. 그는 1999년 개인사업자 ‘씨지진(cgzine)’을 내고 본격적인 컴퓨터 사업에 뛰어들었다.

이후 그의 관심사는 컴퓨터에서 천연염색으로 옮겨갔다. 금융업에 종사하던 그의 부인 김희진 씨가 영진전문대 의류학과에 입학해 관심을 보인 조각보에서 의도치 않게 천연염색을 알게 되었단다. 당시 그는 우연히 풀빛 김왕식 선생님을 만나 천연염색의 색에 빠지게 되었다. 2004년 봄, 박정용은 아내의 퇴직과 함께 화순에 집을 구해 천연염색을 배우고 그해 겨울 그의 고향인 강원도 삼척으로 이사해 본격적인 천연염색 작업을 하게 된다.

2006년 김희진은 충청남도 주최로 열린 ‘전통규방공예작품 공모전’에 대상을 수상하면서 삼척농업기술센터 강사로 활동하게 된다. 그녀는 조각보를 하다가 자수로 작업의 폭을 확장한다. 당신이 조각난 천들을 바느질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수에 빠지게 될 것이다. 2008년 그녀는 자수하는 친구의 소개로 한상수 무형문화재 선생님 수업을 듣게 된다. 그녀는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3시간 수업을 듣기 위해 삼척에서 9시간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 타며 1년 동안 서울을 다녔지만, 수 놓기 전 실 꼬는 것부터 좌절하고 몇 가지 이유로 전통자수의 매력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김희진이 전통자수 작품을 출품한 전시는 단 한 차례에 그친다. 2010년 무형문화재전수회관에서 열린 『중요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 공개행사_근현대 수의 재현』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녀는 당시 유행하기 시작한 프랑스 자수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요즘이야 프랑스 자수 서적들이 적잖게 출판되어 있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스티치 기법을 소개하는 서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일본 서적이나 직구한 미국 원서들을 보면서 공부”하게 되었다고 한다.

2014년 김희진은 KCDF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하고 단행본 『봄볕 아래 수를 놓다 : 이야기가 있는 생활자수』(출판사 도도)도 출판한다. 그녀는 단행본을 통해 자신이 직접 터득한 스티치 기법을 소개한다. 그러던 중 그녀는 우연히 오트쿠튀르 자수 서적을 접하게 된다. 그녀는 “마치 조각보 도록을 만났을 때처럼 또 한눈에 반해 배워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고 회상한다. 그녀는 “그때만 하더라도 그 서적의 기법이 ‘오트쿠튀르 자수’라는 걸 몰랐다”고 한다. 그녀는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저는 책을 보고 인터넷 사이트에 가 보니 8단계 수업과정이 있었어요. 저는 일단 1단계 수업을 들어볼 요량으로 작가분께 메일을 보냈고, 돌아온 답장은 수강생이 많아 1년 뒤 가능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도쿄 가는 것은 포기하고 프랑스에서 오트쿠튀르 수업을 듣고 서울에서 강의하시는 장영나 선생님께 2020년 오트쿠튀르 자수를 배우기 시작, 1년 반가량 서울을 다시 오가게 되었습니다.”

박정용은 2010년 전국 조직인 천연염색지도사협회를 결성한다. 2013년 여름 그는 문득 ‘쪽이 어떻게 발효지?’라는 생각에 여러 논문을 검색하다가 ‘쪽은 발효가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게 되었다.

2014년 박정용은 ‘왜 염색이 발효가 아닌가?’라는 이유를 쓴 첫 번째 저서 『과학과 함께하는 천연염색』(생각나눔)을 발행한다. 그는 책 출판과 함께 KCDF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다. 당시 그는 일명 ‘테이핑기법’을 개발하여 ‘천연염색화’를 선보인다. 그는 첫 개인전을 개최하면서 전시작품과 관련된 원고를 탈고해 2015년 두 번째 저서 『테이핑기법과 천연염색』(생각나눔)을 발행한다.

그해 그는 강원대학교 생활조형디자인학 텍스타일디자인과에 편입하여 2017년 졸업한다. 그는 졸업과 함께 삼척시문화예술회관의 초대로 두 번째 개인전을 개최한다. 2018년 그는 강원대학교 산업과학대학원 산업디자인학 텍스타일디자인과에 입학하여 2020년 졸업한다. 2021년 그는 삼척시 도시재생센터와 나주시 한국천연염색박물관 그리고 정선시의 초대로 그림바위예술발전소에서 3차례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당시 그는 장미를 주제로 작업한 ‘천연염색 회화기법’을 선보인다. 그해 그는 세 번째 저서 『홀치기와 형호염에 의한 천연염색 회화기법』(생각나눔)을 발행한다.

나는 김희진 작가와 박정용 작가의 2인전을 추진하기 위해 다섯 차례 그들의 작업실을 방문했다. 그리고 나는 김희진의 드로잉-자수 38점. 박정용의 천연염색화 22점, 김희진의 조각보 7점, 김희진 & 박정용의 브로치 15점과 스카프 7점, 김희진의 파우치 5점과 넵킨 홀더 2점 그리고 베게 2점과 행주 3점 또한 매트 2점, 김희진과 박정용의 설치작품 2점 등 총 105점을 선정해 그들이 운영하는 공방 이름인 ‘봄볕 내리는 날’을 전시타이틀로 내걸었다.



김희진 & 박정용의 2인전 『봄볕 내리는 날』 전시광경_갤러리 R. 2024

김희진의 ‘드로잉_자수’

“10년 전 kcdf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했습니다. 당시 전시관 관계자분으로 보이는 분이 지나가듯 하신 말씀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시인이네요.” 그때 알았습니다. 제가 사실 자수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말을 하고 싶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 많은 자수인이 제가 놓은 자수를 보면 ‘저게 자수인가?’ 싶을지도 모릅니다. 그 점에 있어 어느 분은 ‘정성이 부족하다’고도 합니다. 엄청난 자수기법이거나 공력이 많이 들어간 작업은 아니지만, 인생의 반환점을 지난 저에게 혹은 당신에게 작은 위로가 되는 자수이길 바라봅니다.”

- 김희진의 ‘작가노트’ 중에서. 2024

이번 갤러리 R의 전시는 김희진 & 박정용 2인전 『봄볕 내리는 날』이다. 그녀는 이번 2인전에 조각보에서부터 자수화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들을 전시한다. 물론 그들은 지난 2017년 삼척문화예술회관에서 2인전을 개최한 바 있다. 당시 김희진은 두 가지 유형의 조각보 작품(보자기-회화와 조각보-회화)과 조각-가방, 자수 드로잉과 조각-조명, 조각-브로치와 타피스트리(Tapestry), 가죽염색과 테이핑염색-회화 등을 선보였다.

김희진은 2014년 kcdf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당시 그녀는 다양한 조각보와 자수화를 전시했다. 당시 갤러리 관계자분으로 보이는 분이 지나가듯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단다.

“시인이네요.”


김희진_토끼풀과 돌나물_면, 면사_50x40cm. 2013


김희진_꽃반지_면, 면사_25.5x25.5cm. 2012

김희진의 자수화에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그 이야기는 단어나 문구로 수놓아져 있다. 나는 이곳에 사례로 그녀의 몇 작품들을 들어보겠다. 그녀의 <토끼풀과 돌나물>(2013)에는 “우리 같이 살까?”라는 텍스트가 수놓아져 있다면, 그녀의 <꽃반지>(2012)에는 “그때 그 마음은 어디에...”라고 수놓아져 있다. 그녀의 <어머니와 이태리타월>(2013)은 “목욕합니다”와 “아파요”가 수놓아져 있고, 그녀의 <봄>(2013)은 “여보 올 거야”라고 수놓아져 있다.


김희진_어머니와 이태리타월_면, 면사_35x28cm. 2013


김희진_봄!_면, 면사_36x36cm. 2013


김희진_꽃밥_면, 면사_50x38cm. 2013


김희진_꽃비_면, 모시, 면사_24x24cm. 2012

김희진의 컵 받침 작품에는 “달달한 도너츠 좋아” “봄날의 행복한 고민” “먹을까? 말까?” “고마운 친구들”이 수놓아져 있다. 그녀는 유리병 커버에 “내 선물이야. 알지?”라고 수놓았다. 그녀의 <꽃밥>(2013)에는 “꽃 같은 밥” “밥 같은 꽃”이 수놓아져 있고, 그녀의 <꽃비>(2012)에는 “마음에도 내렸으면”이라고 수놓았다. 그녀의 <동거>(2014)에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이라고 수놓아져 있고, 그녀의 <질경이>(2012)에는 “이른 봄 마당에 내려앉은 별”이라고 수놓아져 있다.

그런데 김희진은 자수에 단어나 문구를 수놓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자수 작품 옆에 텍스트를 첨부하기도 한다. 나는 사례로 위에서 언급한 작품 중 그녀의 <어머니와 이태리타월>을 들어보도록 하겠다. 그것은 천연염색한 면에 명사로 “목욕합니다”라는 간판과 “아파요”라는 문구가 수놓아져 있다. ‘어머니와 이태리타월’ 그리고 ‘목욕합니다’와 ‘아파요’ 사이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 것일까? 그녀는 자수 <어머니와 이태리타월> 옆에 다음과 같은 텍스트를 첨부해 놓았다.

어릴 적 대중목욕탕에 가면 저와 동생들 등을 밀어주셨던 어머니,
혹 나이 많은 동네 할머니라도 뵈면 할머니 등까지 밀어주셨던 어머니.
그때는 등이 조금 아팠고, 엄마는 무슨 장군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나이가 들어 어머니와 함께 대중목욕탕에 가서 알았습니다.
제 등을 밀어주시는 어머니의 손에 세월이 무게가 힘겹게 내려앉아 있다는 것을요.

이제는 등이 아프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마음이 아픕니다.

김희진의 이야기가 있는 ‘조각보’

김희진의 ‘자수-작품’에만 이야기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조각보-작품’에도 이야기가 있다. 조각보는 김희진을 금융계에서 예술계로 들어서게 한 계기였다. 그녀는 이번 갤러리 R의 김희진 & 박정용 2인전에 자수화 이외에도 ‘조각보-작품’도 선보인다. 나는 이곳에서 그녀의 ‘조각보-작품’ 중 몇 점을 ‘이야기가 있는 조각보’ 사례로 들어보도록 하겠다.


김희진_떠난 자들의 도시_실크, 천연염색_감침질, 조각보_120x120cm. 2010

김희진의 <떠난 자들의 도시>(2010)는 천연 염색한 실크 조각들에 감침질한 조각보이다. 그녀의 ‘조각보’는 마치 한 폭의 추상화처럼 보인다. 그것은 검정과 군청색에 가까운 어두운 색조에 회색과 흰색 그리고 황색과 분홍 또한 빨강과 녹색 등 다양한 컬러를 구성한 것이다. 다양한 색상들은 실크에 다양한 천연재료들(쪽과 황토 그리고 꼭두서니와 감)로 염색한 것이다.

그런데 다양한 컬러는 각각 다양한 크기와 형태를 지닌다는 점이다. 그렇다! 그것은 크기뿐만 아니라 형태가 다른 실크 조각들을 천연 염색하여 일일이 한땀 한땀 손바느질로 이은 것이다. 이를테면 그녀는 각양각색의 자투리로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시킨 우리 선조의 지혜를 따라 탁월한 미적 감각으로 ‘조각보-작품’을 제작한 것이라고 말이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조각보는 여러 조각의 자투리 천을 모아 만든 보자기이다. 우리 선조는 천이 귀하던 시절에 옷이나 이불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천을 모아 손바느질로 이어붙여 조각보를 만들었다. 옷이나 이불을 만들고 버려질 수도 있는 자투리 천을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 것이 바로 조각보인 셈이다.

보자기는 한자로 ‘보(褓)’로 표기한다. 그런데 우리 선조는 보자기를 ‘복(福)’을 담는 것으로 여겼다. 이를테면 우리 선조는 보자기로 복을 싸두어 간직한다고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 선조는 보자기에 무슨 복들을 간직한 것일까? 우리 선조는 보자기에 옷이나 이불뿐만 아니라 예단이나 혼수품 등 귀한 물건들을 싸두어 간직했다.

물론 우리 선조는 귀한 물건을 보자기에 싸서 집에 보관만 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귀한 물건을 정성스레 보낼 때도 보자기를 사용했다. 보자기는 다양한 물건을 싸서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때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운반수단이기도 하다. 그리고 보자기는 사용할 때는 넓게 펼쳐 물건을 담을 수 있고 사용하지 않을 때는 조그맣게 접어 부피감 없이 보관할 수 있다.

자, 원점으로 돌아가자. 원점? 김희진의 <떠난 자들의 도시> 말이다. 그것은 여러 조각의 자투리 천을 모아 만든 조각보이다. 따라서 여러 조각의 자투리는 각양각색(各樣各色)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각기 다른 여러 가지 모양과 빛깔의 실크 조각들을 절묘하게 접목해 놓았다. 여기서 말하는 ‘절묘한 접목’은 각양각색의 실크 조각들을 규칙적이지 않지만 산만하게 보이지도 않도록 접목해 놓았다는 것을 뜻한다.

덧붙여 김희진은 크기와 형태뿐만 아니라 색상 배치도 세련되게 구성하였다. 규칙성을 찾을 수 없는 그녀의 조각보지만 한 가지 공통점은 있다. 그것은 다름아닌 실크 조각들을 이은 바느질 실이다. 말하자면 그녀는 각양각색의 실크 조각들을 주황색 실로 바느질해 놓았다고 말이다. 머시라? 작가가 작업한 조각보를 ‘떠난 자들의 도시’라고 작명한 이유가 궁금하다고요? 그 점에 관해 그녀는 다음과 같은 텍스트를 제공해 놓았다.

“파랑이 주는 색감 때문인지 완성하니 옆 동네 태백(도시)처럼 느껴졌다. 도시도 사람처럼 흥망성쇠가 있다는 걸 어느 순간 알았다. 옆 동네 태백을 지날 때면 느껴지는 기운. 고지대라 날씨도 한몫하겠지만 뭔가 스산한 느낌. 도로를 관통하는 개울엔 탄의 흔적으로 검정 물이 흐르고 탄광으로 흥청거렸던 도시가 이제는 노쇠하여 약간은 우울한 느낌. 당시 <눈먼 자들의 도시>라는 영화를 본 탓인지 작품 제목을 ‘떠난 자들의 도시’라고 지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고 가느다란 주황색 조각을 배치한 이유는 그 속에서 새로운 희망이 움트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김희진_달밤 II_모시, 천연염색_감침질_55x133cm. 2012

물론 조각보는 보자기에만 국한되지 않고 문에 설치한 발에서부터 밥상을 덮는 상보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활용된다. 이번에는 모시로 조각보를 만들어 창문에 커튼처럼 걸어둘 수 있는 김희진의 조각보 <달밤 II>(2012)를 보자. 그것은 천연 염색한 모시에 감침질로 제작한 조각보이다. 여기서 말하는 모시는 모시풀의 줄기 껍질로 만든 원단을 뜻한다. 모시는 습기를 잘 흡수하고 잘 마르며 통풍이 잘되어 우리 선조들이 여름철에 즐기는 원단이다. 하지만 모시는 구김이 많이 가고 세탁이 까다로운 단점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천연 염색한 모시’는 모시에 다양한 천연재료들(먹, 황토, 감, 락, 쪽복합염) 염색한 것을 뜻한다. 그녀는 다양한 색상의 모시 조각을 감침질로 손바느질을 한다. 뭬야? ‘감침질’이 어떤 바느질이냐고요? 감침질은 땀이 촘촘하고 견고하고 세밀한 느낌을 주는 바느질이다. 만약 당신이 조각보를 이은 감침질을 들여다본다면, 바느질이 일정하고 정갈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감침질은 끈기가 필요한 바느질이라는 것을 감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김희진은 조각보 <달밤 II>를 나무 느낌이 나도록 표현하기 위해 시접을 넓게 잡아 삼솔로 바느질한다. 네? ‘시접’이 무엇을 의미하느냐고요? ‘시접’은 접혀서 속으로 들어간 옷 솔기의 한 부분을 뜻한다. ‘솔기’는 무슨 뜻이냐고요? ‘솔기’는 천의 끝과 끝을 봉합했을 때 생기는 선을 의미한다. ‘쌈솔’은 뭐냐고요? ‘쌈솔’은 시접을 처리하는 방법의 일종으로 천을 안에 접어 들어간 겉면에 맞춰서 표시대로 꿰매는 것을 뜻한다.

지나가면서 중얼거렸듯이 김희진의 모시 조각보는 창문에 커튼처럼 설치할 수 있는 작품이다. 그것은 모시 조각들로 제작한 까닭에 바람이 불 때마다 살랑거리게 된다. 그녀는 창가에서 한들한들 흔들리는 모시 조각보를 ‘달밤’으로 작명해 놓았다. 와이? 왜 그녀는 모시-조각보를 ‘달밤’이라고 부른 것일까? 그 점에 관해 그녀는 다음과 같은 텍스트를 제공해 놓았다.

“깜깜한 밤하늘에 빼곡한 나무들 사이로 비추는 달빛. 참 고요한 밤이다. 내 마음도 이렇게 고요했으면...”


김희진_2016 조각보_모시, 춘포, 천연염색_감침질_95x130cm. 2016

자, 이번에는 마지막 사례로 김희진의 <2016 조각보>(2016)를 보도록 하자. 그것은 모시와 춘포에 천연재료들(쪽, 먹, 락, 꼭두서니, 양파)로 염색하여 감침질과 쌈솔 손바느질로 이은 ‘조각보-작품’이다. 그녀의 <2016 조각보>는 그녀의 <떠난 자들의 도시>처럼 각양각색의 조각들을 손바느질하여 이은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떠난 자들의 도시>가 사각형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 반면, 그녀의 <2016 조각보>는 비정형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조각보는 일반적으로 네모의 형태로 제작된다. 그런 점에서 그녀의 비정형적인 <2016 조각보>는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우리는 흔히 여러 조각의 자투리 천을 모아 만든 조각보에서 ‘파격미’를 본다. 하지만 그녀는 그 조각보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간다. 그녀는 각양각색의 조각들을 네모의 형태가 아닌 다양한 색상과 크기와 마찬가지로 비정형의 조각보로 만들어 놓았다. 그렇다면 그녀의 조각보는 조각보 자체의 개념을 충실히 따른 것이 아닌가?

김희진의 <2016 조각보>는 2016년 한국천연염색박물관 주관으로 기획된 『천연염색 50인 초대전』에 출품한 작품이다. 당시 전시 주제는 ‘천연염색 10년의 역사 이후’였다고 한다. 그녀는 ‘천연염색 10년의 역사 이후’에 대해 ‘아이텐티티와 자기복제 사이의 간극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면서 다음과 같은 텍스트를 제공해 놓았다.

“‘천연염색 10년의 역사 이후’라는 주제라 천연염색 원단으로 조각보를 작업하던 저에게 형식을 깨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사각 조각보 형태를 벗어난 비정형의 조각보를 생각했습니다.”

김희진의 이야기가 있는 ‘자수화’

김희진은 이번 갤러리 R 2인전에도 신작 ‘자수화’도 선보인다. 두말할 것도 없이 신작 자수화에도 이미지들과 함께 단어와 문구도 첨가되어 있다. 그리고 그녀는 자수화 옆에 연필로 종이에 손 글씨로 쓴 텍스트로 함께 전시해 놓았다. 나는 이곳에서 그녀의 신작 ‘자수화’ 몇 점을 그 사례로 들어보도록 하겠다.

김희진의 <세신>(2023)은 천연 염색한 모시에 비즈와 메탈사 그리고 면사로 수를 놓은 작품이다. 머시라? 검정 모시는 무엇으로 염색한 것이냐고요? 모시가 검정으로 보일 정도가 되려면 쪽 염색을 열 번 이상해야만 한단다. 따라서 캔버스 4호 크기의 작품일지라도 바탕 ‘피부’를 만들기 위해 적잖은 노고가 들어갔음을 알 수 있다.

김희진은 블랙에 가까운 모시에 분홍색 실로 이태리타월을 수놓았다. 그리고 그녀는 노랑 실로 번호키를 수놓고 붉은 비즈로 번호키 끈을 만들고 검정 실로 노랑 번호키 안에 ‘419’라는 번호를 수놓았다. 그녀는 화면 중앙에 흰색 실로 목욕탕에서 사용하는 작은 크기의 플라스틱용 의자를 수놓았다. 그녀는 화면 오른쪽 위/아래에 흰색 실로 마치 드로잉하듯 물이 뿌려지는 샤워기와 샴푸를 수놓았다.


김희진_세신_모시, 비즈, 메탈사, 면사_자수_32x24cm. 2023

마지막으로 김희진은 “세신<나라시>”라는 단어와 “사치라 쓰고 치료라고 읽는다”는 문구를 손바느질로 써놓았다. 머시라? ‘세신’이 무슨 뜻이냐고요? 이태리타월과 플라스틱용 의자 그리고 번호키는 그곳이 목욕탕임을 암시한다. 따라서 ‘세신’은 몸에 붙어 있는 때를 밂(洗身)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다. 뭬야? “사치라 쓰고 치료라고 읽는다”는 문구는 무엇을 의미하냐고요? 만약 당신이 그것을 알고 싶다면, 그녀의 <세신> 옆에 전시한 텍스트를 읽으면 된다. 나는 당신을 위해 그 텍스트를 이곳에 모조리 옮겨놓겠다.

“타지에서 20대 중반 직장을 다닐 때 주말마다 집으로 가면 엄마와 함께 꼭 대중목욕탕을 갔다. 지금도 그렇지만 어깨가 많이 뭉쳐 있어 엄마는 동네 작은 목욕탕 세신사에게 세신(나라시)을 부탁했는데, 어린 나에게 그것이 부끄러우면서도 과장되게 말하면 세상 가장 큰 사치로 느껴졌다. 어느 짐승이 자기 몸을 스스로 씻지 못하는가! 허나 세신이 끝나고 나면 뭉친 어깨가 풀리고 온몸이 개운해져 사치라고 느꼈던 감정은 온데간데없고 기분이 좋아졌다. 세신은 여전히 부끄럽고 사치라는 느낌은 있지만 이젠 치료라고 생각하기로. 작년 겨울 고개를 돌리기 힘들 정도로 목이 아파 덕구 온천 간 날, 세신사님이 부르신다. ‘419번 손님.’”

자, 이번에는 김희진의 <4050>(2024)를 보자. 그것은 캔버스 5호 크기보다 약간 큰 천연 염색한 모시에 비즈와 메탈사 그리고 면사로 수를 놓은 작품이다. 그녀는 십여 차례 이상 쪽 염한 모시에 안경과 팬티형 생리대(입는 오버나이트) 그리고 혈당측정기와 고혈압치료제(텔미트렌)를 수놓았다. 그리고 그녀는 숫자 ‘4050’과 “준비됐나요?”라는 문구를 손바느질로 수놓았다.


김희진_4050_모시, 비즈, 메탈사, 면사_자수_36x24cm. 2024

네? ‘4050’은 ‘4050 세대’를 뜻하는 것 같고, 안경은 돋보기 안경을 의미하는 것 같다고요? 그러면 4050 세대는 (돋보기) 안경과 팬티형 생리대 그리고 혈당측정기와 고혈압치료제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인가? 김희진은 <4050> 작품 옆에 연필로 종이에 손 글씨로 쓴 다음과 같은 텍스트를 제공해 놓았다.

“42살 즈음 조각보 감침질을 하다 바늘땀이 잘 보이지 않아 답답했다. 처음엔 왜 이런가 했는데 노안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다 안경을 벗으면 잘 보인다는 걸 알고 드론워크 자수(올을 감치거나 뚫는 화이트 자수의 일종)를 하다가 눈의 핏줄이 터졌다. 한 달 정도 쉬다가 다시 하니 역시 핏줄이 터져 45살 생일날 안경점에 가서 생일선물로 돋보기를 맞추었다. 갑자기 찾아온 노안이 불편했던 것보다 나이 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던 것이다. 그러다 재작년 자근근종이라 수술을 하고 작년엔 고혈압 진단까지. 어느 순간 훅훅 들어오는 상황들이 당황스러운 건 왜일까?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40, 50대에 이미 몸은 늙어가고 있는데, 왜 나이 들어가는 것에 당황스러울까? 늙는다는 거에 대한 거부감은 어디서 오는 걸까? 왜 우리는 늙는 거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한 걸까?”

지나가면서 나는 2014년 kcdf 갤러리에서 김희진이 첫 개인전을 열었을 당시 그녀의 조각보와 자수화를 본 갤러리 관계자분으로 보이는 분이 지나가듯 한 “시인이네요”라는 말을 들었다고 중얼거렸다. 당시 그녀는 그 분의 말을 듣고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제가 사실 자수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말을 하고 싶은 사람일 수도 있겠다.”

김희진의 ‘자수’는 이야기가 있는 작품이다. 우리가 지나가면서 그녀의 텍스트를 읽어보아서 알 수 있듯이 그녀의 ‘자수-작품’은 일종의 ‘일기자수’라고 할 수 있겠다. 이를테면 그녀는 천에 바늘과 실로 일기를 쓰듯이 수를 놓는다고 말이다. 그녀는 자신의 ‘자수-작품’에 대한 반응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많은 자수인이 제가 놓은 자수를 보면 ‘저게 자수인가?’ 싶을지도 모릅니다. 그 점에 있어 어느 분은 ‘정성이 부족하다’고도 합니다.”

나는 김희진의 자수를 일종의 ‘드로잉-자수’로 부르고자 한다. 우리가 지나가면서 보았던 그녀의 <세신>이나 <4050> 그리고 <꽃보다 찬란한>뿐만 아니라 갤러리 R에 전시한 모든 ‘자수-작품’들은 종이가 아닌 천에 붓이 아니라 바늘과 실로 마치 드로잉 하듯 표현한 것이다.


김희진_자작나무_실크, 비즈, 천연염색 면사_자수_20x20cm. 2024

김희진의 <자작나무>(2024)는 실크에 천연염색 면사와 비즈로 수놓은 ‘자수-작품’이다. 그것은 언 듯 보면 종이에 연필로 낙서하듯 드로잉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종이에 연필이나 붓이 아닌 바늘과 실로 드로잉 하듯 표현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렇다! 그녀는 한때 전통자수를 배운 자수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것처럼 실과 바늘로 실크에 수를 놓았다. 문득 ‘대교약졸(大巧若拙)’이 떠오른다.

『노자(老子)』 <도덕경 45장(道德經 四十五章)>에는 다음과 같은 텍스트가 있다. 대직약굴 대교약졸 대변약눌(大直若屈 大巧若拙 大辯若訥). 그 텍스트를 직역하면 다음과 같이 쓸 수 있겠다. 크게 강직한 것은 굴종하는 것 같고, 위대한 기교는 졸한 듯하며, 큰 웅변은 더듬는 듯하다.

전통자수뿐만 아니라 오트쿠튀르(Haute couture) 자수도 섭렵한 김희진은 자신의 재능을 드러내지 않고 자랑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녀의 ‘자수-드로잉’은 언뜻 보기에 서툰 손바느질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가 지나가면서 중얼거렸듯이 종이에 연필이 아닌 천에 실과 바늘로 자유분방하게 드로잉 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녀는 자작나무의 ‘피부’를 마치 “할머니 손등을 닮은” 것처럼 절묘하게 표현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이 겸손하게 말한다.

“저의 자수가 엄청난 자수기법이거나 공력이 많이 들어간 작업은 아니지만, 인생의 반환점을 지난 저에게 혹은 당신에게 작은 위로가 되는 자수이길 바라봅니다.”

박정용의 ‘청록산수화(靑綠山水畵)’

나는 올해 초 김희진 & 박정용 삼척 작업실을 또다시 방문했다. 박정용은 그동안 다양한 산을 소재로 50여 점에 달하는 ’천연염색화‘를 작업해 놓았다. 나는 50여 점 중에서 갤러리 R에 전시할 30여 점의 작품(’한계령‘과 ’설악산‘ 그리고 ’태백산‘뿐만 아니라 그의 삼척 작업실에서 ’가까운 산‘과 ’뒷산‘ 등 강원도의 다양한 산들을 표현한 작품)들을 선정했다.

물론 나는 박정용에게 그의 ’천연염색화‘뿐만 아니라 그의 ’브로치‘와 ’스카프‘ 그리고 한산모시에 쪽염을 한 작품도 전시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그의 천연염색화 중에 기하학적인 작품인 일명 ‘디자인 노트’ 시리즈도 전시하기로 했다. 나는 이곳에서 일단 그의 ‘전연염색화’에 대해 살펴보고, 그의 ‘리넨 스카프’와 ‘국산 모시 필염색’ 그리고 그의 ‘디자인 노트’ 시리즈에 대해서도 간략하게나마 언급해 보도록 하겠다.

박정용의 <가까운 산>(2023)은 제목 그대로 삼척시 노곡면 중마읍리에 위치한 그의 작업실 마당에서 보이는 풍경을 모티브로 작업한 천연염색화이다. 그는 오른쪽 산을 단절시켜 산비탈을 강조해 놓았다. 가파른 산비탈에는 울창한 소나무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산비탈의 후경은 마치 자욱하게 깔린 안개로 인한 것처럼 첩첩 산들을 아련하게 보이도록 표현해 놓았다.


박정용_가까운 산_리넨에 천연인디고(쪽염)_형지호방염_40x60cm. 2023

박정용의 <마읍천>은 작업실 옆으로 흐르는 마읍천을 모티브로 작업한 그림이다. 지난 4월 15일 나는 갤러리 R 황영배 대표와 함께 김희진 & 박정용의 삼척 작업실을 방문했다. 황 대표는 그들의 작품들을 직접 보고 작업 제작과정에 대해 물었고, 그들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당시 우리는 갤러리 R 전시작품들을 최종 선정했다.


박정용_마읍천_리넨에 천연인디고(쪽염)_형지호방염_80x53cm. 2023

황 대표는 그들의 작업실 옆에 흐르는 물길을 보고 이상하다는 듯 박정용 작가에게 어디가 북쪽인지 물었다. 왜냐하면 마읍천의 물길이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의 작업실을 다섯 차례나 방문했지만 물길의 방향에 대해 아무런 의구심을 품지 못했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마읍천은 남에서 북으로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박정용 작가는 마읍천을 따라가면 고려 마지막 왕이었던 공양왕(恭讓王)의 유배지 '마읍리 궁터'와 공양왕릉을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박정용의 <마읍천>은 제목 그대로 마읍천을 따라 우거진 수풀들과 그 너머로 육백산이 보인다. 만약 당신이 깊은 계곡을 지나 높은 산을 오르면 오지 중의 오지에 있는 ‘마읍리 궁터’를 만나게 될 것이다.


박정용_장호_리넨에 천연인디고(쪽염)_형지호방염_80x53cm. 2023

박정용의 <장호>(2023)는 삼척시 근덕면 장호리에 위치한 장호항의 바위들을 모티브로 작업한 그림이다. 내가 세 번째 김희진 & 박정용의 작업실을 방문할 당시 장호항을 방문한 적이 있다. 나는 장호항의 구름다리를 건너 바위섬에 당도했다. 내가 바위섬 전망대에서 바다를 내려다보니 맑은 바닷물과 아름다운 바위들이 나타난다. 맑은 바다에 있는 기암괴석들은 마치 아름다운 섬들처럼 보인다. 그 풍경을 표현한 것이 바로 박정용의 <장호>이다.

박정용의 ’천연염색화‘는 한결같이 형호염으로 린넨에 쪽(indigo) 염색한 작품들이다. 머시라? 그의 그림이 당신의 눈에 ’청록산수화(靑綠山水畵)‘로 보인다고요? 청록산수화는 광물성 석청(石靑)이나 석록(石綠) 등 자연에서 채취한 재료로 그린 일종의 ’채색산수(彩色山水)‘를 뜻한다.

우리나라 청록산수화는 멀리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고구려 덕흥리고분(德興里古墳)의 기마인물과 함께 산과 수목을 그린 수렵도와 삼산형(三山型) 산악과와 나무를 그린 강서대묘(江西大墓)와 내리(內里) 1호분 그리고 진파리(眞坡里) 1호분, 신라의 기미년명(己未年銘) 순흥(順興) 읍내리 고분벽화에 그려진 산악 그림들이 그것이다.

화가는 산수의 기운생동(氣韻生動)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준법(皴法)을 사용한다. 하지만 박정용의 ’천연염색화‘는 문자 그대로 염색으로 산수의 기운생동을 표현한다. 그의 ’천연염색화에는 준법을 사용하지 않고 윤곽선을 그어 형태를 그린 후 진한 색으로 채운 진채(眞采)나, 준법으로 형상화한 기초 위에 채색을 엷게 바른 반진채(半眞采)나 박채(薄采)로 표현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의 ‘천연염색화’에는 선이 없기 때문이다. 그의 ‘천연염색화’는 면으로 단순화되어 괴량감을 드러낸다.


박정용_설악산 VI_리넨에 천연인디고 (쪽염)_형지호방염_240x130cm. 2024

박정용의 ‘블루마운틴(Blue Mountain)’

나는 거대한 한 폭의 ’청록산수화(靑綠山水畵)‘를 보고 감탄사를 연발한다. 그것은 마치 긴 가로의 두루마리 형식처럼 1미터 30센티 높이에 2미터 40센티 길이의 화선지에 그려진 일종의 ‘파노라마 산수화’인 <설악산 VI>(2024)이다. 그의 ‘파노라마 산수화’는 한 마디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블루마운틴’이다. 나는 그의 ‘블루마운틴’을 보면서 감동했다.

그런데 박정용의 ‘블루마운틴’은 호주의 블루마운틴도 아니고 자메이카의 블루마운틴도 아닌 우리나라의 블루마운틴을 모티브로 작업한 것이다. 산의 정상이 평평한 호주의 블루마운틴과 자메이카 섬의 초고봉인 블루마운틴은 첩첩산중(疊疊山中)의 산세로 이루어진 한국의 블루마운틴과 다르다. 박정용이 표현한 한국의 블루마운틴은 병풍처럼 펼쳐진 산들을 중첩(重疊)시켜 장엄함을 느끼게 한다.

나는 지나가면서 박정용의 ‘블루마운틴’을 한 폭의 ‘산수화’로 중얼거렸다. 왜냐하면 그의 ‘블루마운틴’은 마치 수묵의 농담처럼 다양한 농담의 블루로 표현된 산들과 첩첩산중의 산허리를 휘감은 운무를 보면서 한 폭의 산수화로 착각하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화선지에 붓으로 채색한 산수화가 아니라 쪽염을 한 ‘천연염색화’이다. 박정용은 ‘붓’이 아니라 ‘염색물’에 천을 담가 한 폭의 산수화를 표현한 것이다.

머시라? ‘천연염색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해 달라고요? 박정용의 말에 의하면 그의 ‘천연염색화’는 일명 ‘형지호방염(型紙糊防染)’으로 제작한 것이다. ‘형호염’은 형이 있는 종이 틀에 풀을 바르고 풀이 있는 곳은 염색이 안 되도록 하는 방법이다. 전통적인 염색 방식은 염색물을 담은 용기에 천을 담가 염색하는 침염(浸染)이다. 그런데 우리 선조는 천에 무늬를 만들고자 할 때 방염(防染) 기법을 사용했단다. ‘방염’은 염색할 때 원하는 부분이 염색되지 않게 하는 기법을 말한다. 방염 방식은 끈으로 묶거나 막대나 판 등을 압착하거나 풀이나 액체 왁스(납)를 바르고 굳혀서 염색하는 방법을 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박정용은 천에 ‘형지호방염’을 하기 위해 일단 컴퓨터 포토샵에서 표현할 이미지를 작업한다. 그리고 천에 표현할 이미지 작업이 끝나면 커팅기(스캔 앤 컷)로 스캔한 후 복사하듯 일종의 코팅종이를 넣어 컷팅한다. 커팅기로 컷팅한 종이가 바로 형지이다. 물론 여기서 형지는 이미지의 농담에 따라 여러 단계로 나뉠 수 있을 것이다. 박정용의 <설악산 VI>는 6개 단계로 형지 작업을 한 것이다.

그는 오려낸 형지를 아마사(亞麻絲)로 짠 린넨,(linen) 원단에 붙인다. 그는 형지에 방염 풀을 바른다. 이를테면 코팅종이에 커팅된 부분들에 방염 풀을 바른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하루 정도 놓아둔단다. 그는 형지에 방염 풀을 바른 원단을 쪽 염색물이 담긴 용기에 넣어 물들인다. 그는 염색이 끝난 원단을 물을 뿌려 방염 풀을 제거한다. 그러면 방염 풀이 붙어있던 부분은 염색이 되어 있지 않게 된다. 거꾸로 방염 풀이 발라지지 않은 부분은 염색물이 물들어 있게 되는 셈이다. 이것이 1단계 염색이다.

지나가면서 중얼거렸듯이 박정용의 <설악산 VI>는 여섯 단계로 형지 작업한 것이다. 이를테면 그것은 위와 같은 방식으로 6차례 염색한 작업이라고 말이다. 따라서 가장 밝은 흰색 부분은 여섯 차례 염색할 때 형지로 부착해 염색되지 않은 곳임을 알 수 있다. 거꾸로 검정에 가깝게 진한 부분은 6차례나 염색한 곳이 되는 셈이다. 왜 제가 그의 <한계령>이 손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려진(물들여진)’ 것이라고 말했는지 감 잡으셨지요?

박정용은 삼척에서 태어났다. 물론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포항으로 이사해 청년시절을 보내고, 대구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천연염색을 배우고 2004년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의 삼척 작업실은 첩첩으로 이루어진 산들의 계곡 가장자리에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그의 주변이 모두 산들로 둘러쌓여 있는 셈이다. 따라서 그의 ‘천연염색화’가 주로 강원도의 산들을 모티브로 작업한 것이 뜻밖은 아니다.

박정용의 대표적인 ‘천연염색화’는 설악산과 태백산이다. 물론 그는 남한의 강원도가 아닌 북한의 강원도인 금강산도 ‘천연염색화’로 작업하기도 했다. 네? 그렇다면 그의 ‘천연염색화’는 일종의 ‘백두대간(白頭大幹)’을 모티브로 작업한 것이냐고요? 물론 그는 북한의 백두산과 남한의 지리산을 아직 작업하지 못했지만, 그의 ‘천연염색화’는 백두대간의 중심에 위치한 산들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백두대간의 등뼈를 이룬다고 할 수 있겠다.

자, 원점으로 돌아가 보자. 원점? 박정용의 <설악산 VI> 말이다. 길게 겹쳐진 울퉁불퉁한 능선 그리고 멀리 있는 하늘의 구름은 마치 푸른 바다의 물결처럼 보인다. 그의 ’블루마운틴‘에는 한국의 미(美)와 색(色) 그리고 정(情)과 기(氣)가 담겨있다. 따라서 나는 쪽 염색으로 한 폭의 산수화를 표현한 그의 ’현대판 산수화‘를 일명 ’천연염색화‘로 부른 것이다.

머시라? 도대체 작가는 ’블루마운틴‘을 어디서 보고 작업한 것이냐고요? 멀리 보이는 울퉁불퉁한 능선은 다름아닌 설악산 공룡능선(恐龍稜線)이다. 설악산 공룡능선은 흔히 마등령에서부터 무너미 고개까지의 능선 구간을 가리킨다. 연이어진 암봉들이 마치 용솟음치는 공룡의 등같이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설악산 공룡능선은 외설악과 내설악을 남북으로 가르는 능선이다.

만약 당신이 박정용의 <설악산 VI>를 본다면, 작가가 외설악에서 공룡능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그의 <설악산 VI>에 표현된 공룡능선 뒤가 바로 내설악이라고 말이다. 그는 영동과 영서를 나누는 분기점인 공룡능선을 휘감은 구름을 여백으로 남겨놓았다. 그려지지 않은 여백은 아름다운 공룡능선을 더욱 신비롭고 웅장하게 느끼게 한다.

뭬야? 외설악에서 보면 공룡능선의 산들이 정말 ’블루마운틴'으로 보이느냐고요? 나도 모른다. 물론 박정용의 ’블루마운틴‘은 사진으로 찍은 것이 아니라 쪽염으로 물들인 마치 한 폭의 황홀한 쪽빛 산수화처럼 보인다. 따라서 그는 ’블루마운틴‘은 상상으로 표현된 일종의 ’관념 산수화‘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나는 박정용의 쪽빛 산수화를 기존 관념 산수화에서 보지 못했다. 와이? 왜 한국화가들은 쪽빛 산수화를 그리지 않은/못한 것일까?

박정용의 대작 <설악산 VI>은 웅장하다. 그리고 그의 블루는 깊은 밀도감을 보여준다. 도대체 블루의 깊은 밀도감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일까? 그 점에 관해 그는 “색을 잘 다루기 위해서는 그 색에 대한 것을 알고 분석해야 하기에 과학이 필요하고, 소재든 대상이든 기법이든 낯설어야 하므로 과학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존 산수화는 화선지에 먹으로 혹은 캔버스 천에 유화나 아크릴물감으로 ’칠한 것‘이라면, 박정용의 산수화는 리넨에 천연인디고(쪽염)로 ’스며들게 한 것‘이다. 이를테면 전통적인 회화가 화선지나 캔버스 천에 물감을 코팅(coating)한 것이라면, 박정용의 산수화는 리넨에 쪽염을 배어들게 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그의 ’블루‘는 합성염료가 아닌 천연인디고로 만든 일종의 ’박정용 블루‘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만약 당신이 박정용의 ‘블루마운틴’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서 전경의 짙은 블루마운틴을 본다면, 아마사(亞麻絲)로 짠 리넨의 독특한 질감과 ‘골기(骨氣)’가 한 몸이 된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말하자면 숨 쉬는 천의 피부에 배어든 산세는 ‘기운생동(氣韻生動)’한다고 말이다. 따라서 나는 천에 물들인 그의 ‘블루마운틴’에서 산의 신(神), 기(氣), 골(骨), 육(肉), 혈(血)을 품은 깊은 밀도감을 느낀다고 중얼거린 것이다.

박정용의 ‘블루마운틴’의 깊은 밀도감은 나의 마음을 맑게 한다. 이를테면 그의 ‘블루마운틴’은 나의 잡념을 떨쳐버리게 한다고 말이다. 따라서 나는 웅장하면서도 은은한 그의 ‘블루마운틴’을 보면서 아름다운 우리 강산의 가슴 벅찬 감동의 여운(餘韻)을 음미한다. 갑자기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이 환청으로 들린다.

박정용의 ‘천연염색’을 넘어서

“천연염색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화학염색이 아닌 것’이다. 사람들마다 천연염색에 대한 정의가 다르겠지만 100% 친환경도 10% 친환경도 저마다 모두 친환경이라고 강조하는 이때, 많은 사람이 천연염색에 대해 알고 상품을 구매하기를 원한다면 적어도 우리 스스로 그 범위를 좁히고 가둬버리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 이 책에서 가장 논란이 될 수 있는 것은 쪽 염색이 발효인가이다. 처음에는 발효가 아니기 때문에 균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다. 내가 증명할 필요도 없고, 이젠 균이 있어도 없어도 아무 상관이 없게 되었다. 수소를 가지고 올 수 있는 곳은 오직 한 군데밖에 없기 때문이고, 그것으로 인하여 포도당이 산화분해가 된다. 균이 포도당을 분해하든 아니면 스스로 분해되든, 인디고 환원의 핵심이 포도당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독실의 산화에 관여하고, 인디고의 환원에 관여하고, 염색 후 인디고의 황변 현상에 관여하게 된다.”

박정용의 단행본 『과학과 함께 하는 천연염색』(생각나눔, 2013년) 서문 중에서

그동안 국내에서 발행된 천연염색 관련 서적들을 보면 대부분 천연염색을 발효로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박정용은 ‘쪽 염색이 발효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따라서 그는 그 점을 증명하기 위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단행본을 발행했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의 발언은 기존 천연염색에 대한 통념을 뒤집은 셈이다.

박정용이 ‘쪽 염색이 발효가 아니다’라고 말한 것이 2013년도였으니 이미 10년이 넘은 셈이다. 그런데 10여 년 동안 그 누구도 그의 논의에 대해 공식적으로 반박의 글을 발표하지 ‘않았다’(라기보다 차라리 ‘못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 따라서 그의 발언은 여전히 유효한 셈이다.

박정용은 이번 갤러리 R의 김희진과의 2인전에 색다른 ‘천연염색화’ 시리즈도 선보인다. 일명 ‘디자인 노트’ 시리즈(2024)가 그것이다. 그것은 쪽 염색을 통해 만든 면들로 기하학적인 선을 표현한 작업들이다. 그의 ‘디자인 노트’ 시리즈는 ‘박정용의 테이핑 기법’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일명 ‘홀치기’ 기법으로 표현한 작품들이다. 이를테면 그의 ‘디자인 노트’ 시리즈는 천연 염색하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교힐 기법으로 미니멀한 작품을 제작했다고 말이다.


박정용_디자인 노트 파트 II-III_리넨에 천연인디고(쪽염)_홀치기(교힐)_30x30cm. 2024

물론 박정용의 ‘디자인 노트’ 시리즈는 이미 2017년 삼척문화예술회관에서 열린 김희진 & 박정용 2인전 『오늘, 우리 빛깔』에서 ‘천연염색 디자인’이라는 제목으로 선보였다. 하지만 당시 그는 다양한 디자인으로 하나의 대형 그림을 전시해 놓았다. 그러나 그는 이번 갤러리 R의 2인전에서는 ‘디자인 노트’ 시리즈를 독립적인 작품으로 전시한다. 따라서 그의 ‘디자인 노트’ 시리즈는 마치 미니멀아트 작품처럼 느껴진다.


박정용_브로치_모시에 쪽, 양파_황동 프레임_감침질, 모듈화 기법_10x10cm. 2016

나는 지나가면서 박정용의 작품 중에 브로치와 스카프 그리고 한산모시에 쪽 염색을 한 작품도 있다고 중얼거렸다. 그의 <브로치>(2016) 작품은 모시에 쪽 염색을 한 것으로 황동 프레임에 감침질과 모듈화 기법으로 제작한 것이다. 그의 ‘브로치’ 작품은 2017년 대한민국 천연염색문화상품대전에서 문화부체육관광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박정용의 ‘브로치’는 흥미롭게도 쓰다남은 자투리 원단을 이어붙인 조각보에서 발상한 것이다. 이를테면 그의 ‘브로치’는 조각보의 개념을 뒤집은 작품이라고 말이다. 그 점에 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의 ‘브로치’ 작품은 모듈화한 객체를 만들고 이 객체들의 조합으로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내는 객체 지향적인 디자인을 고안하여 작업하였습니다. 조각이 쓰다남은 자투리가 아니라 쓸 수 있는 객체화된 조각들을 블록쌓기처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완성될 수 있습니다.”


박정용_리넨 스카프_리넨에 천연인디고(쪽염)_균일염_45x140cm. 2024

자, 이번에는 박정용의 <리넨 스카프>(2024)를 보자. 그것은 리넨에 천연인디고(쪽염)로 제작한 작품이다. 그의 ‘리넨 스카프’ 시리즈는 밝은 블루에서부터 블랙에 가까운 쪽 염색을 한 것이다. 말하자면 밝은 블루가 두차례 쪽 염색한 것이라면, 청색은 다섯 차례, 진한 청색은 일곱 차례, 블랙에 가까운 색상은 열두 번 쪽 염색을 한 것이라고 말이다. 따라서 색상이 진할수록 여러 차례 쪽 염색한 것인 셈이다.

물론 박정용은 리넨에 쪽 염색할 때 균일하게 염색해 놓았다. 그리고 그는 스카프 테두리를 주황색 실로 마감하고, 하단 부분에 주황색 실로 ‘봄볕’이라는 단어를 수놓았다. 따라서 그의 <리넨 스카프>는 목에 감을 수 있는 일상품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박정용의 <국산 모시 필염색>(2024)은 한산모시에 국산 쪽 염색한 일종의 ‘필염색-작품’이다. 그것은 흔히 ‘원단’으로 불린다. 그의 <국산 모시 필염색>은 22미터에 달하는 1필이다. 1필로 옷을 1벌 정도 제작할 수 있다고 한다. 그의 ‘필염색’은 그의 ‘스카프-작품’과 마찬가지로 균일하게 제작한 것이다.

그런데 22미터에 달하는 한산모시에 균일하게 ‘필염색을 하려면 적잖은 시간과 노동이 필요하다. 특히 진한 색은 6일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의 <국산 모시 필염색>은 그의 ’스카프-작품‘과 마찬가지로 옷을 만들 수 있는 ’원단‘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독립적인 작품인 ’필염색-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박정용은 2014년 “천연염색은 과학이다”라고 언급하면서 『과학과 함께하는 천연염색』(생각나눔)을 발행한 바 있다. 그리고 그는 2015년 “천연염색은 예술이다”라고 논의하면서 단행본 『테이핑기법과 천연염색』(생각나눔)도 출판했다. 또한 그는 2021년 “디자인도 과학이다”라고 말하면서 단행본 『홀치기와 형호염에 의한 천연염색 회화기법』(생각나눔)을 발행했다. 그렇다면 박정용은 천연염색에 관한 기존의 통념을 해체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박정용_국산 모시 필염색_한산모시에 국산 쪽_필균일염_22yard.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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