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과 꽃과 새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김성수 & 이현무
2024.08.03~09.07
작가와의 대화_2024.08.03(토) pm 15:00
Gallery R

오픈 : 매주 화요일-토요일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휴관 : 매주 일요일, 월요일

김성수 작가는 1985년 영남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를 졸업하고, 1996년 영남대학교 미술대학 교육대학원을 졸업한다.

그는 1997 벽아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고, 대구문화예술회관, 맥향화랑, 분도갤러리, 통인갤러리, 덴마크의 아트센터 실케보르그 바트(Art Centre Silkeborg Bad), 일본 시나구로 갤러리, 오사카 유에갤러리(Gallery Yuei), 경북대학교 미술관, 봉산문화회관 기억공작소, 동숭아트센터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했다.

그의 대표적인 그룹전은 다음과 같다. 2003년 경주 세계 문화엑스포 조각 심포지움(아사달 조각공원), 2005년 한일 현대미술작가 126인(일본 동경), 2006년 나무를 만나다(고토갤러리), 2011년 땅따먹기(부산시립미술관), 2013년 대구미술의 사색(대구미술관), 2014년 강정현대미술제(강정디아크, 대구), 2015년 꿈의 나라 양평(양평미술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파이어 아트페스타(강릉 경포해수욕장), 2019년 5 From Daegu in Kurogawa in Museum(구로가와미술관, 일본), 2020년 새로운 연대(대구미술관), 2021년 현대미술의 시선(울산문예회관) 등이 그것이다.

그는 1997년 대구시 미술대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고, 2003년 제1회 대구미술인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의 작품은 대구미술관, 경주엑스포공원, 웃는 얼굴아트센터, 대구문화예술회관, 대구시 중구청, 성주군 등에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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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무 작가는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캐나다 몬트리올 도슨 대학 사진학과(Dawson College, Professional Photography)에서 사진을 배웠다. 그는 사진의 메커니즘을 몸으로 습득하여 기존 사진의 ‘사용설명서’를 뒤집는 작업을 한다. 따라서 그는 사진을 통해 사진을 탈주하려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이현무는 도슨 대학 재학시절인 2012년 로스엔젤레스의 1650 갤러리(1650 Gallery)에서 개최한 『플라워 파워(Flower Power 2012)』에 초대받는다. 그리고 그는 한국으로 귀국하기 전인 2013년 벤쿠버의 포지티브네가티브 갤러리(POSITIVENEGATIVE Gallery)의 『포토필르믹 13(Fotofilmic’13)』, 포틀랜드의 블랙 박스 갤러리(Black Box Gallery)의 『이미지 앤 아이덴티티(Image and Identity)』에 초대받는다.

이현무는 귀국 후인 2014년 제1회 아마도사진상을 수상하고, 아마도예술공간에서 첫 개인전 『탈출속도(V escape)』를 개최하여 국내 사진계로부터 주목받는다. 같은 해 그는 ‘2014 소니 월드 포토그래피 어워드(2014 Sony World Photography Awards)’에 수상해 런던 서머셋 하우스(Somerset House)에서 초대전을 갖는다.

이현무는 2015년 강원도 영월군에서 주최하는 제14회 동강국제사진제에 초대받는다. 2016년 그는 서울예술재단의 제2회 포트폴리오 박람회에 참가해 수상하고 선정작가전 『더 퍼스트 – 비욘드 프론티어(The First - Beyond Frontier)』에 초대받는다. 2017년 그는 미국 휴스턴 포토페스트(FotoFest)가 기획한 포트폴리오 리뷰 행사 참가작가 중 우수작가로 선정되어 『인터내셔널 디스커버리스 VI(International Discoveries VI)』에 초대받는다.

이현무는 2017년 성남 아트 센터 큐브 미술관의 『성남을 걷다』와 신미술관의 『모아 앤 모아(More & More)』 그리고 장욱진미술관의 『제2회 뉴드로잉 프로젝트』 또한 김대중 컨벤션 센터의 『아트 광주 : 17 청년작가전』에, 2019년 W 미술관의 『이리로 이리로』와 의정부 예술의 전당의 『제6회 의정부 예술의 전당 신진작가전』 그리고 예술의 전당 한가람디자인 미술관의 『제6회 대한민국국제포토페스티벌』에, 2020년 수창청춘맨숀의 『실재와 가상 그 경계에서』, 2021년 스페이스22의 『이력(Another Energy)』에 초대받는다.

이현무의 작품은 서울특별시와 아마도예술공간 그리고 스페이스22 또한 개인 컬랙터들이 소장하고 있다.

돌과 꽃과 새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갤러리 R의 김성수 & 이현무 2인전 전시타이틀 『돌과 꽃과 새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은 니코스 카잔차키스(Nikos Kazantzakis)의 장편소설 『알렉시스 조르바의 삶과 모험(Vios kai politia tou Alexi Zormpa)』(1946)에 쓰인 “돌과 비와 꽃이 하는 말을 물을 수 있다면”을 차용한 것이다.

나는 김성수 선생님께서 25년간 단 3개의 모티브 ‘사람과 꽃과 새’를 꾸준히 작업해 왔다는 점에 주목해 ‘비와 꽃’을 ‘꽃과 새’로 교체했다. 머시라? 그러면 전시타이틀에 있는 ‘돌’은 무엇이냐고요? 만약 당신이 갤러리 R을 방문하시면 아시게 되겠지만, ‘돌’은 제주 현무암들을 촬영한 이현무 작가의 사진작품 <대지_알>(2024)을 염두에 둔 것이다.

여러분이 잘 알듯이 제주 현무암은 한라산이 폭발하여 분출된 용암이 식어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현무암은 퇴적암(堆積岩)과 달리 오랜 시간을 버텨온 흔적을 알아볼 수 있는 퇴적층이 없다. 그의 <대지_알>은 백여 번 넘게 촬영한 현무암들을 마치 퇴적암처럼 차곡차곡 쌓은 사진작품이다. 와이? 왜 그는 현무암을 퇴적암으로 작업한 것일까?

“아이가 엄마 ‘배’ 속에서 태어나듯, 제주도 현무암은 ‘대지’ 속에 있는 마그마가 화산 폭발로 인해 대지 밖으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현무암은 다른 돌처럼 퇴적층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현무암에 퇴적층을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바닥) 이현무_대지 – R_종이 필름, 피그먼트 프린트_가변크기. 2024
천장) 김성수_새를 타고 나는 사람_나무에 채색. 8점. 2010-2020

그렇다면 이현무의 <대지_알>은 자신의 작업에 또 하나의 ‘퇴적층’을 쌓은 것이 아닌가? 이를테면 그는 ‘현무암의 퇴적암 되기’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다고 말이다. 그러면 그는 15년간 꾸준하게 작업한 자신의 사진작품들이 구멍이 숭숭 뚫린 독립적인 현무암들이 아닌 하나의 ‘퇴적암’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닌가?

김성수 선생님은 전통적인 조각 도구들이 아닌 전기톱이나 그라인더 등 산업용 도구들을 사용하여 나무나 자연석에 ‘사람과 꽃과 새’를 조각하고 있다. 따라서 그의 목 조각은 투박하다. 그는 매일 작업실에 출근하면서 사람과 꽃 그리고 새를 만난다. 그런데 그는 매일 마주치는 사람과 꽃과 새를 마치 어린아이처럼 생소하게 본다. 아니다! 그는 그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창조한다. 그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나는 이것이 예술인지 아닌지 묻거나 결정하지 않는다. 내가 뭔가를 만드는 이유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나의 삶을 조각으로 표현할 따름이다. 즐길 수 있다면 그때가 가장 좋고 남들의 시선이나 유행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다.”

자, 이제 우리 몫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김성수 & 이현무 작가가 제작한 ‘돌과 꽃과 새’가 하는 말을 들을 차례라고 말이다. 네? 당신은 ‘돌과 꽃과 새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요?

이현무의 ‘시간에 갇힌 존재’

관객이 갤러리 R에 들어서면 일단 서로 마주 보는 벽면에 설치된 압도적인 작품들을 만난다. 왼쪽 벽면은 211점의 일명 ‘나무인형’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이를테면 6미터의 벽면에 5미터에 달하는 긴 백색 선반이 3줄로 설치되어 있는데, 그 긴 선반들에 211점의 나무인형들이 연출되어 있다고 말이다. 그것은 김성수의 대작 <사람을 만나다>(2013-2024)이다.


오른쪽) 이현무_시간에 갇힌 존재 - 국보 제289호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_종이 필름, 피그먼트 프린트_125x100cm. 2019
왼쪽) 이현무_시간에 갇힌 존재 - 국보 제11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_종이 필름, 피그먼트 프린트_125x100cm. 2019

오른쪽 벽면에 장구한 역사를 품은 익산 미륵사지 석탑(益山 彌勒寺址 石塔)을 대형 카메라로 종이 필름(paper negative)에 촬영한 것을 피그먼트 프린트(pigment print)한 사진작품이다. 그것은 이현무의 <시간에 갇힌 존재 - 국보 제289호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2019)와 <시간에 갇힌 존재 - 국보 제11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2019)이다.

나는 일단 갤러리 R에 전시된 이현무의 사진작품들을 먼저 보고 나서 김성수의 조각작품들을 보도록 하겠다. 2019년 이현무는 대형 카메라에 종이 필름을 넣고 국보 제11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장노출로 촬영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장노출’은 4초를 뜻한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사진에서 1초 이상을 노출하면 ‘장노출’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의 <국보 제11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마치 지진에 흔들리는 것처럼 보인다.

머시라? 혹 작가가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솔라리제이션 기법으로 촬영한 것은 아니냐고요? 아니다! 그는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수십 컷 촬영하여 20컷 정도를 컴으로 합성한 것이다. 와이? 왜 그는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겹쳐 놓은 것일까? 그 점에 관해 그는 작가노트 3번째 단락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눈에 보이는 실체에 가려 보이지 않는 내면의 흔적들을 들여다보기 위해, 그들 앞에 서서 눈을 감고 같은 햇살과 바람을 맞으며 두 손에는 대형 카메라를 들고 찰나의 시간 속에 그들을 담았다. 이렇게 수십 차례 그들과 마주했고, 그 흔적들을 켜켜이 쌓아 하나의 이미지를 완성했다.”

이현무의 <국보 제11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는 ‘눈에 보이는 실체에 가려 보이지 않는 내면의 흔적들을 들여다보기 위해’ 작업한 것이다. 그는 두 손에 대형 카메라를 들고 ‘찰나의 시간 속’에 석탑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그는 수십 차례 석탑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고, 그 ‘흔적들을 켜켜이 쌓아 하나의 이미지’로 만든 사진 ‘피부’에 왁스(Wax)를 수차례 발라 ‘차오르게 한’ <국보 제11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을 완성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미션은 임파셔블하다. 그 점에 대해 그는 작가노트 마지막 단락에 다음과 같이 적는다.

“나의 세월은 그들의 세월에 비해 찰나이기에 이들을 온전히 이해해보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이들에 담긴 방대한 역사의 시간과 흔적을 담아내고 과거에 대한 동경이나 회고의 정과 같은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고자 한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노스탤지어(Nostalgia)는 타향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 또는 지나간 시대를 그리워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그것은 현재의 시간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특정 시기나 공간적으로 떨어진 장소를 상상하고 그리워하는 감정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현무의 <국보 제11호 익산 미륵사지 석탑>은 미션 임파셔블한 석탑을 ‘재현(representation)’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1000년이 넘은 석탑의 향수(鄕愁)를 불러일으켜 관객에게 향수(享受)하도록 작업한 것이 아닌가?

이현무의 ‘대지_알’

당신이 이현무의 <시간에 갇힌 존재> 시리즈를 보고 나면 갤러리 R의 중앙홀 바닥에 설치된 거대한 사진(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것은 지나가면서 중얼거렸던 그의 거대한 신작 <대지_알>이다. 그것은 가로 4미터 20센티에 세로 7미터 60센티에 달하는 대작이다. 물론 그것은 가로 39.5센티와 세로 49.5센티의 크기 사진 189점으로 이루어진 사진이다.

나는 이현무의 <대지_알>을 보자마자 압도당한다. 머시라? 당신에게 그것은 마치 거대한 망망대해처럼 보인다고요? 뭬야? 당신에게 그것은 일렁이는 바다의 파도로 보인다고요? 네? 자기 눈에는 그것이 거대한 대지로 느껴진다고요? 그것은 지나가면서 중얼거렸듯이 제주 현무암들을 촬영한 사진이다. 물론 그가 제주 현무암을 촬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2018년 제주도를 처음으로 방문한다. 그는 제주도 해안가를 돌면서 제주도의 독특한 검은 돌인 ‘현무암’과 망망대해를 보게 된다. 그는 자연의 신비를 느껴 <돌> 시리즈와 <파도> 시리즈를 작업한다.


이현무_대지 – R_종이 필름, 피그먼트 프린트_가변크기. 2024

제주도의 현무암은 화산과 마그마의 활동으로 만들어진 암석을 뜻한다. 현무암은 검은색 혹은 회색이다. 현무암의 표면은 거칠고, 크고 작은 구멍이 나 있다. 현무암의 구멍은 화산이 분출할 때 가스 성분이 빠져나간 흔적이라고 한다. 이현무는 <돌> 시리즈에 대한 작가노트를 다음과 같은 한 편의 시(詩)로 적는다.

“숱한 세월 거친 파도와 거센 바람을 견뎌냈다. 함께이기도 했고, 혼자이기도 했다. 거대했던 몸은 어느덧 작고 초라해졌다. 산산이 부서진 몸을 등지고 다시금 버텨야 한다. 그 자리를 지켜야 한다.”

이현무의 <돌> 시리즈는 흥미롭게도 평면적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와이? 왜 부피와 무게를 가진 현무암이 입체가 아닌 평면으로 보이는 것일까? 머시라? 현무암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각으로 촬영했기 때문이라고요? 현무암을 주변의 모래와 평평하게 보이도록 촬영한 것 같다고요?

와이? 왜 그는 현무암을 모래사장과 평평하게 보이도록 촬영한 것일까? 혹 그는 사진이 2차원적 평면에 인화된 것이란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그는 사진의 '평면성'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란 말인가?

이현무의 <돌> 시리즈는 대형 카메라에 종이 필름을 넣고 촬영한 것이다. 그런데 그는 종이 필름을 네거티브 상태로 작업을 마친다. 왜 그는 종이 필름에 맺힌 네거티브 이미지를 포지티브로 변환시키지 않은 것일까? 그의 답변이다.

“제주도의 현무암은 끊임없이 파도로 인해 바닷물로 씻겨져서 변화할 것이기 때문에 포지티브로 완결시키지 않았습니다.”

이현무는 <돌> 시리즈를 작업하고 6년 후인 올해 제주도를 몇 차례 방문한다. 제주의 현무암을 촬영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수천 컷을 촬영한 현무암 사진들을 컴퓨터에 옮겨 켜켜이 쌓아 마치 퇴적암처럼 작업한다. 와이? 왜 그는 현무암을 퇴적암으로 전이시키고자 한 것일까?

그는 제주 현무암이 “숱한 세월 거친 파도와 거센 바람을 견뎌냈다”면서 “산산이 부서진 몸을 등지고 다시금 버텨야 한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무암에는 ‘방대한 역사의 시간과 흔적’이 퇴적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그는 현무암에 담긴 방대한 역사의 시간과 흔적을 담아내고자 ‘퇴적암-되기’ 작업을 한 것이다. 덧붙여 그는 켜켜이 쌓은 현무암 사진에 바니시(Varnish)를 바른다. 그런데 인화지에 바른 바니시는 ‘피부’를 코팅하기보다 오히려 스며든다. 따라서 평평한 2차원 사진은 휘어져 물질감을 드로낸다.

하지만 이현무의 <대지_알>은 컴퓨터 포토샵에서 겹치기 편집한 것이기 때문에 결국 0과 1이라는 숫자로 전환된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그의 ‘퇴적암-되기’는 그의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마찬가지로 미션 임파셔블한 작업이 아닌가? 그는 <대지_알>은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달리 수천 컷 촬영한 현무암의 ‘흔적들을 켜켜이 쌓아 하나의 이미지’로 만들지 않고 전시장 바닥에 펼쳐놓았다. 따라서 그의 <대지_알> 미션은 관객의 상상력으로 가능하게 될 것이다.

김성수의 ‘사람을 만나다’

자, 이제 전시장 벽면을 211점의 ‘나무인형’으로 가득 채운 김성수의 ‘사람을 만나다’로 돌아가 보자. 그의 ‘사람을 만나다’ 시리즈는 그가 목 조각을 시작한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가 목 조각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그의 어린 시절 사고 때문이다. 1967년 소년 김성수는 집 앞 축대가 있는 곳에서 놀다가 그만 낙하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제가 11살 때 많이 아팠어요. 부모님은 침도 맞게 하고 굿도 하고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했죠. 그런데 몸이 계속 악화되어 결국 병원에 갔는데 결핵성 관절염인 거예요. 시급한 결핵을 먼저 치료한 후 관절염을 치료하려고 보니 그동안 뼈가 괴사한 거지요. 13시간 수술을 했대요. 괴사한 뼈를 긁어내고 뼈 이식 수술을 알루미늄으로 했어요, 목과 발가락을 제외한 전신을 깁스해야 했지요. 수술 후 6개월 동안 반듯이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고 있어야 했어요.”


김성수_사람을 만나다_나무에 채색. 211점. 2013-2024

소년 김성수는 1967년과 1968년 두 차례 수술을 받는다. 그래서 그는 2년간 학교를 가지 못했다. 그는 친구들과 한창 놀 나이에 병상에 누워 혼자 외롭게 지내야만 했다. 그는 장기간 병상에 누워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그림 그리는 것밖에 없었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미술을 자신에게 ‘필연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수술 후 온몸에 깁스한 상태에서 외로운 나날을 보내야만 헸어요. 그러던 어느 날 천장의 벽지에 새겨진 무늬가 눈에 들어왔어요. 그래서 저는 그 무늬를 종이에 따라 그리기 시작했어요. 내가 천장의 벽지 무늬 일부를 열심히 그리고 있으면, 어느새 시간이 흘러 어머니가 일을 마치고 병원으로 오셨어요. 저의 그림 그리기는 그렇게 시작되었지요. 그래서 그림은 저에게 필연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1998년 김성수는 다시 한번 다리가 내려앉아 결국 1999년 다시 수술하게 되었다고 말이다. 그는 1967년 알루미늄으로 뼈 이식 수술을 받았지만, 그는 1999년 티타늄으로 이식 수술을 받는다. 그는 다시 한동안 병상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는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2년간 움직이지 못했어요. 당시 너무 고통스러워 ‘이대로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어요.”

김성수는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아내와 두 아이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는 그들을 두고 떠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당시 그는 자신을 사랑해 주셨던 할머니가 생각났단다. 할머니는 결핵성 관절염 수술을 받은 손자 김성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단다.

“할매 죽으면 할매한테 빌어라, 다리 안 아프게 해달라고.”

그러다 얼마 뒤 김성수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당시 그의 어머니는 돌아가신 할머니한텐 저의 ‘헌 다리 가져가고, 새 다리 달라’고 빌었다고 한다. 별세하신 할머니를 묘지까지 모실 상여(喪輿)와 상여꾼들이 그의 집 마당에 도착했다. 그때 그는 할머니 상여에 꽂혀 있는 꼭두를 처음 봤다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상여의 꼭두를 보면서 돌아가신 할머니를 지켜줄 것 같은 느낌, 할머니를 다른 세상으로 인도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믿음,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에게도 저 꼭두처럼 저를 지켜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것이 계기가 되어 꼭두가 제 작품의 모티브가 된 것이죠.”

김성수는 1999년 세 번째 수술 후 앞으로 돌이나 쇠 등을 이용한 큰 조각작업을 못하겠다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그는 나무 조각에 주목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할머니의 상여에 설치되어 있던 꼭두가 떠올랐다. 그는 꼭두에 관한 자료들을 찾아 공부하면서 2000년부터 목 조각을 하기 시작한다.

이번 갤러리 R에 선보이는 김성수의 <사람을 만나다>는 지난 2013년부타 최근까지 작업한 나무인형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주변에서 자주 만날 수 있던 가족에서부터 옆집 아저씨와 친구 그리고 그리운 사람 등 주변의 실제 인물들 이외에도 (현재는 만날 수 없는) 종교인이나 역사적 인물들도 나무에 깎고 분채로 채색한 것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김성수의 ‘사람을 만나다’는 평범한 생활인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는 자신이 만난 주변의 인물들을 나무에 애정 어린 시선으로 조각하고 채색해 놓았다. 와이? 왜 그는 주변의 평범한 생활인들에 주목한 것일까? 혹 그는 그동안 역사의 흐름과 무관하다고 인식되었던 평범한 생활인들이야말로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을 부각하고자 한 것이 아닐까?

평범한 생활인들은 그의 ‘사람을 만나다’에서 역사적인 인물과 종교인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따라서 평범한 생활인들은 그의 ‘사람을 만나다’에서 더 이상 소외된 군상이 아니다. 오히려 김성수는 그들이 바로 역사의 주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손바닥 크기만한 평범한 생활인들은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지평을 넓혀간다. 말하자면 그들은 서로 관계를 통해 세계를 넓혀 나간다고 말이다.

김성수의 ‘사람을 만나다’는 평범한 생활인들의 삶을 예술적으로 표현한 일종의 ‘이야기 조각’이라고 할 수 있겠다. 두말할 것도 없이 그의 ‘사람을 만나다’에는 작가의 정서와 사상이 스며들어 있다. 그의 ‘사람을 만나다’는 주변의 평범한 생활인들에 대한 애정 없이는 제작될 수 없을 것이다. 길이가 한 뼘가량 되는 그의 ‘꼭두 현대인’은 작은 조각이지만, 그에 담긴 이야기는 작지 않다. 그의 ‘만인행(萬人行)’은 진행형이다.

김성수의 ‘새를 타고 나는 사람’

이제 갤러리 R 중앙 홀 바닥에 설치된 이현무의 <대지_알> 위에 설치된 김성수의 일명 ‘새를 타고 나는 사람’들을 보도록 하자. 그것은 새 등에 꽃을 들고 있는 여자나 두 팔을 수평으로 벌리고 있는 남자, 물구나무를 서고 있는 남자, 춤을 추는 치어리더, 포옹하고 있는 남자와 여자 등 8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의 <새를 타는 나는 사람>은 2010년부터 2020년 사이에 제작한 작품이다.


김성수_새를 타고 나는 사람_나무에 채색. 8점. 2010-2020

김성수의 <새를 타는 나는 사람>은 크게 3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겠다. 새 몸통과 꼬리 그리고 사람이 그것이다. 그는 우연히 폐가에 버려진 서까래를 보고 작업실로 옮겨 온다.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서까래는 지붕 판을 만들고 추녀를 구성하는 가늘고 긴 각재(角材)이다. 그것은 지붕의 뼈대를 이루는 나무이다. 따라서 서까래는 마치 인체의 갈비뼈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김성수는 서까래를 새의 부리와 얼굴 그리고 몸통으로 구분해 목재를 찍어서 깎고 가공하는 자귀로 다듬질한다. 머시라? 새의 꼬리는 무슨 나무로 작업한 것이냐고요? 2002년 당시 그는 박곡의 폐교를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는 작업실 부근에 있는 산에 종종 산책 겸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오곤 했는데, “어느 날 우연히 Y자형 나뭇가지가 눈에 들어와 꺾어 작업실로 가져와 새의 몸통에 접목해 꼬리를 만들어 보았다”고 한다.

뭬야? 새의 꼬리에 핀 꽃들도 진짜 꽃들이냐고요? 물론 그것은 나무토막을 조각한 것이다. 그는 새의 부리와 몸통에 페인트로 채색하고, 꼬리는 아크릴물감으로 채색해 놓았다. 네? 새의 등에 탄 남자는 어떻게 제작한 것이냐고요? 일명 ‘현대인-꼭두’는 직소기와 (손)톱 그리고 끌과 칼 등을 사용하여 조각한 다음 분채로 채색한 것이다. 나는 묘하게 생긴 새의 정체가 궁금해 김성수에게 물었다. 그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자.

“제가 제작한 새는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에 나오는 새 붕(鵬)과 현대적 로켓을 접목한 상상의 새입니다.”

그렇다면 김성수의 <새를 타는 나는 사람>은 ‘현대인-꼭두’와 마찬가지로 새 역시 옛것과 새것을 접목해 놓은 것이 아닌가? 나는 지나가면서 그의 ‘새를 타는 사람’들 중에 새 등 위에서 남녀가 서서 서로 포옹하고 있는 작품도 있다고 중얼거렸다. 그런데 포옹하는 남녀가 여인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김성수는 남녀를 새에 비해 작게 조각해 놓았다. 남자는 꽃무늬가 있는 상의에 녹색 바지를 입고, 여자는 붉은 원피를 입고 있다. 남자는 두 팔로 여자의 허리를 잡고 있고, 여자는 두 팔로 남자의 어깨 위에 올려놓고 있다. 김성수는 남자의 얼굴은 표현해 놓은 반면, 여자의 얼굴은 표현해 놓지 않았다. 와이? 왜 그는 여자의 얼굴을 표현하지 않은 것일까? 김성수는 ‘새를 타고 포옹하는 사람들’에 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그러니까 딸 아이가 중학교를 다닐 때였지요. 딸 아이 학교에 일이 있어서 저는 딸 아이 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는데 딸 아이가 저를 보고 반가운 나머지 ‘아빠!’ 하면서 저에게 달려와 포옹을 하는 것이었어요. 사랑스러운 딸이 저에게 달려들어 포옹해 너무 고마웠지만, 저도 모르게 딸 아이의 포옹을 받아들이지 않고 밀쳤습니다. 왜냐하면 학교 운동장에는 딸 아이 친구들도 있었는데, 아마 정상적으로 걷지 못하는 저 자신의 콤플렉스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저의 ‘포옹하는 사람들’은 그때를 생각하면서 딸 아이에게 아빠로서 미안함과 고마움으로 작업한 것이지요.”

김성수의 ‘꽃을 든 남자’

김성수는 이번 갤러리 R의 김성수 & 이현무 2인전에 또 다른 목 조각들을 전시한다. 그의 <꽃을 든 여자>(2021)와 <꽃을 든 남자 XVIII>(2022)는 마치 미완의 조각처럼 보이는 나무에 거칠게 마감해 놓았다. 그는 어느 언론사 인터뷰에서 자신의 조형세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왼쪽) 김성수_꽃을 든 남자 XVIII_나무에 채색_13x48x20cm(d). 2023
오른쪽) 김성수_꽃을 든 여자_나무에 채색_21x57x17cm(d). 2021

“매끈하고 완벽하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비면 빈 대로 나무의 생김새로 의해 인의적인 것보다는 자연을 존중한 무심한 소박미가 지금까지 추구한 저의 조형세계입니다.”

김성수의 <남자 두상 II>(2010/2021)와 <여자 두상>(2024)은 재료의 특성을 십분 활용하여 조각한 듯 보인다. 이를테면 그의 <남자 두상 II>는 전기톱으로 원목의 느낌을 살려 조각한 것이라면, 그의 <여자 두상>은 그라인더로 자연석의 느낌을 살려 조각한 작품이라고 말이다. 그는 자신의 목 조각이나 자연석을 이용한 조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재료가 반 이상의 형태를 갖추고 있지요. 저는 길쭉하면 길쭉한 대로, 둥글면 둥근 대로, 모가 나면 모난 대로 재료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흐트리지 않고 그대로 활용합니다. 최소한의 손질로 내 감정과 의지와 느낌만 표현할 뿐이죠. 자연이 80%를 만들었다면 내 행위는 20%에 불과하죠.”


왼쪽) 김성수_남자 두상 II_나무에 채색_18.5x28.5x7cm(d). 2010/2021
오른쪽) 김성수_여자 두상_자연석_13x15.5x8cm(d). 2024

김성수의 대작 <샤넬 핸드백을 든 여자>(2022)와 <꽃을 든 남자 XVII>(2022)는 한 쌍을 이루도록 연출되어 있다. 그는 “큰 군상들은 통나무 판의 물성과 알록달록한 채색으로 정교하지는 않지만, 현대인의 특징과 의미를 찾으려고 했다”면서. “큰 원목의 두꺼운 판재를 부조와 같이 체인톱으로 굵고 강한 선을 그려서 표현하고 일부는 색칠한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지나가면서 보았던 김성수의 작품들 제목들만 보더라도, 그가 수식을 좋아하지 않는 작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의 목 조각들은 언듯 보면 투박해 보인다. 그리고 그의 목 조각은 마치 조각하다가 만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덧붙여 그는 나무의 무늬나 울퉁불퉁한 면을 그대로 놓아둔다. 그는 그 점에 관해 보여주기도 “나무는 나무다워야 한다”고 말한다.

김성수는 "나무의 물성을 살리려 일부러 매끈하게 처리하지 않는다”면서 “나무와의 교감을 통해 적절하게 물성을 살리는 타이밍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만약 당신이 그의 목 조각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 본다면, 그 목 조각이 어설픈 표현에서 나타나는 투박함이 아니라 절제에서 나타나는 소박함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의 목 조각들은 보면 볼수록 정감이 간다. 그리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작품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작품을 보면 그 작품을 제작한 작가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다. 나는 그의 작품을 보면서 인간에 대한 따스한 애정을 느낀다. 그의 작품은 야생마같이 거칠면서도 신비하게 느껴진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글자 밭’에 갇혀있던 나에게 신비의 세계로 초대한다.


김성수_샤넬 핸드백을 든 여자_나무에 채색_42x194x4,5cm(d). 2022
김성수_꽃을 든 남자 XVII_나무에 채색_63x200x4,5cm(d). 2022

스마트폰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김성수 & 이현무 ‘전자-도록(digital-catalogue)’

출판사 KAR에서 발행한 김성수 작가의 전자도록 『사람과 꽃과 새』와 이현무 작가의 전자도록 『DEAD PHOTOGRAPH TALK』는 온라인 서점들(예스24, 교보문고, 알라딘, 밀리의 서재, 리디북스)에서 구매 가능합니다. 전자도록에는 작가들의 전작들이 망라되어 있고 미술평론가 류병학 씨의 작가론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왼) 사람과 꽃과 새
저자 : 김성수 류병학
출판사 : 케이에이알(KAR)

오) DEAD PHOTOGRAPH TALK
저자 : 이현무 류병학
출판사 : 케이에이알(K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