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속의 나하고

손현수 & 정주희

2024.11.09~12.14

작가와의 대화_2024.11.09(토) pm 15:00

Gallery R
오픈 : 매주 화요일-토요일 오후 1시부터 7시까지
휴관 : 매주 일요일, 월요일

손현수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과 동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다. 2001년부터 2012년까지 KBS에서 방영되었던 TV동화 『행복한 세상』 애니메이션 작가로 잘 알려졌다. 그녀는 미술뿐만 아니라 방송과 광고 그리고 공연 또한 영화 등 전방위적 활동을 하는 멀티아티스트이다. 2017년 그녀는 영화 『안시성』(영화사 수작) 콘티 작업을 시작으로 영화 컨셉아트와 기획일을 겸하고 있다.

손현수는 1998년 조성희 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하고, 14년 후인 2012년 아트센터 나비에서 개인전 『캔디가 돌아왔다』를 개최한다. 그리고 그녀는 2019년 오픈스페이스블록스에서 개인전 『페이퍼 돌(Paper Doll)』, 2021년 스페이스 자모 플러스의 개인전 『애니_스마일(any_smile)』, 2023년 문화역서울 284의 개인전 『작가는 말이야! 사실』을 개최한다.

손현수는 다수의 그룹전에 초대되었다. 2012년 부산비엔날레 특별전 『정원의 밖(Outside of Garden)』(광안리 미월드, 부산), 『움직이는 리얼리티(Animated Reality)』(W Seoul-Walkerhill Hotel), 『디지털 퍼니처(Digital Furniture)』(아트센터 나비), 2013년 『동방의 요괴들_트라이앵글 아트 페스티벌』(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소녀의 꿈(Girls Be Ambitious!)』(롯데 갤러리), 2014년 『시선의 이중주』(러산 사범대학교 미술관, 중국), 2015년 『힐링 모자이크』(LIG아트스페이스), 『보물섬-예술로 돌아온 것들』(양평 군립미술관), 2017년 『화이트테이블 아트페어』(한남 블루스퀘어 복합문화공간 NEMO), 2018년 『아트텀스(Art Terms)』(갤러리비케이), 2023년 포항문화재단의 『물길에서 함께 턴』, 2024년 갤러리ST의 『2024 평론가가 주목하는 작가 20인』 등이 있다.

***

정주희는 2010년 고려대학교 미술학부를 졸업하고, 2023년 이화여대 조형예술대학원을 수료한다. 그녀는 2010년 이브갤러리에서 첫 개인전 『포푸리-잡다한 혼합물』을 오픈하고, 이후 경남도립미술관, 독일 베를린의 디스커스 베를린(Diskus Berlin), 중국 항저우의 제무후이 아트스페이스(Zhe mu hui art space), 대구예술발전소, 오산시립미술관, 대안공간 이포, 홍티아트센터, 스페이스 가창, 문화공간 17717, space XX 등에서도 개인전을 개최한다.

그녀는 다양한 그룹전에도 참여한다. 그녀의 대표적 그룹전은 다음과 같다. 2010년 독일 코스펠트의 쿤스트페어라인(Monopoly 2010), 2013년 스페이스 캔(마젠터에서 고유하다), 2014년 동대문 DDP(히든아티스트 아시아프특별전), 2015년 아르코미술관(나는 무명작가다), 2016년 성산아트홀(청춘본심), 2017년 양주시립미술관(뉴드로잉 프로젝트)과 대구예술발전소(예술생태보감), 2018년 제부도 아트파크(청춘열전)와 경남자유회관(옴의 법칙 창원아시아 미술제 특별전), 2019년 F1963(Rainbow wire)과 김해 클레이아크 미술관(숨은 꽃), 2020년 오산시립미술관(신소장품전 플러스)과 수원시립 아이파크 미술관(SIMA FARM), 2022년 하나은행 수장고 H. art1(업클로즈 04), 2024 갤러리 R(손현수 정주희 2인전) 등이 그것이다.

그녀는 2016년 중국 항저우의 중국미술학원국가대학과학기술(창의)원과 가창창작스튜디오, 2019년 홍티예술센터, 2020년 독일 베를린의 디스커스 베를린(DISKURS Berlin), 2021년 경남예술창작센터 등 다양한 레지던시에 입주하여 작업한다. 그녀는 2017년 강원국제비엔날레 포트폴리오 리뷰 작가 선정, 2019년 수원시립미술관 SIMA FARM 작가 선정, 2021년 2022년 아트경기 선정, 2022년 소마 미술관 아카이브 등록작가로 선정되기도 한다.

정주희의 작품은 오산 시립미술관과 양주시립미술관 그리고 고려대학교 CJ관 또한 개인 컬렉터들이 소장하고 있다.


거울 속의 나하고-손현수 & 정주희 2인전. 갤러리 R 2024

거울 속의 나하고

갤러리 R의 손현수 & 정주희 2인전 전시타이틀 『거울 속의 나하고』는 나기타 케이코(名木田恵子)의 글과 이가라시 유미코(いがらしゆみこ)의 그림인 순정만화 『캔디 캔디(CANDY CANDY)』의 TV애니판 『들장미 소녀 캔디』 주제가에서 차용한 문구이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웃으면서 달려보자 푸른 들을
푸른 하늘 바라보며 노래하자
내 이름은 내 이름은
내 이름은 캔디
나 혼자 있으면 어쩐지
쓸쓸해지지만
그럴 땐 얘기를 나누자
거울 속의 나하고
웃어라 웃어라 웃어라 캔디야
울면은 바보다 캔디 캔디야

주제가 작곡은 와타나베 타케오가, 작사는 원작 스토리를 쓴 나기타 케이코가 했다. 그런데 한국판 오프닝 가사는 일본 오프닝 가사와 내용이 다르다고 한다. 원래 가사는 캔디 자신의 ‘주근깨도 좋다’는 내용이었는데, 대한민국에서는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등 어려움 속에서도 강인한 인내심으로 고난을 이겨낸다는 내용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머시라? 캔디에 대해 간력하게 설명해 달라고요? 캔디는 금발 곱슬머리에 코에 있는 주근깨가 매력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캔디의 첫사랑은 6살 때 포니의 언덕에서 만난 ‘언덕 위의 왕자님’이다. 이후 캔디는 왕자님을 닮은 안소니와 만나 끌리지만 낙마 사고로 잃는다. 그리고 캔디는 유학을 길 배에서 만난 테리우스와 사랑에 빠지지만 스잔나를 위해 물러선다. 캔디는 자신의 길을 가기 위해 간호사로 일한다. 캔디는 닐에게 구혼 받고, 기억상실증에 걸린 알버트와 동거하고, 친구였던 스테아의 전사와 패티와 이별하는 등 수많은 슬픔을 겪는다. 결국 캔디는 혼자 포니의 언덕에 올라가 슬퍼하는데 백파이프를 불며 나타난 ‘언덕 위의 왕자님’을 재회하게 된다.

순정만화 『캔디 캔디』는 주변 사람들의 편견과 고달픈 생활 속에서도 용기를 잃지 않고 성장해 간다는 일종의 ‘성장만화’라고 할 수 있겠다. 뭬야? 캔디가 손현수 & 정주희 2인전 『거울 속의 나하고』와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요? 만약 당신이 그녀들의 작품을 직접 보게 된다면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손현수_캔디 시리즈. 갤러리 R 전시광경. 2024

캔디의 ‘코스튬 플레이(costume play)’
손현수

캔디는 1975년에 연재만화로, 1976년에 애니메이션으로 태어났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가고 있는 이 캐릭터는 단순한 만화 주인공이라기보다 그동안 흘러왔던 세월 속에서 다양한 사회현상과 더불어 환영과 핍박을 동시에 받아온, 이야기 속 주인공의 삶만큼이나 우여곡절을 겪은 캐릭터가 아닐까 싶다.

물론 순정만화라는 장르가 일본과 한국에만 있는 특수한 장르라는 걸 고려했을 때, 상대적으로 팬층이 한정적이긴 하지만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기에 “나 이걸로 예술 해요~!”라고 내세울 용기가 났을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엔 예쁜 그림체와 흥미로운 스토리가 좋아서 따라 그리곤 했지만, 나의 작품 안에 담기까진 단순한 향수로만 선택되어진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일본에만 있던 소녀만화가 국내에 해적판으로 하나둘씩 들어오면서, 모험담이나 히어로, 로봇, 스포츠, SF 등 환상과 애국심, 정의로움을 일깨워주는 소년만화들과 달리 시기와 질투, 모함, 기억상실, 백마 탄 왕자, 출생의 비밀 등 막장요소로 무장한 일본의 소녀만화들은 국내에서도 순정만화뿐만 아니라 수많은 드라마에 영향을 미치며 한 시절을 풍미하기도 했었다.

이 모든 요소를 다 갖춘 만화 중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캔디’였던 것이다. 모든 드라마의 ‘캔디화’로 인해 캔디적 여주인공들은 전통적인 여성상들 사이에서 조금 비껴가면서도 결국 남성에게 구원받는 캐릭터로 비난을 피할 수 없었기에 지금은 ‘캔디 없는 드라마’ 만들기가 한창이다. 이래도 저래도 소환되는 ‘캔디’라는 단어는 사회적 용어라고 해도 무방하다.

이번 전시는 그동안의 작품들 중 캔디로만 구성된, 캔디의 ‘코스튬 플레이’라고 할 수 있다. 70년대에 처음 등장했던 모습에서 요즘 선호하는 체형으로 변신을 한 뒤, 다양한 캐릭터로 분장 놀이를 하고 나면 마치 어린 시절 갖고 놀던 종이 인형의 옷 갈아입히기 놀이가 생각난다. 유치한 장난같은 놀이를 현실 세계에 대치시켜보면 실제로 일어나는 막장 같은 주변의 인물들도, 남성보다 우월하게 싸워나가는 원더우먼도, 사탕처럼 달콤한 아이돌의 모습들도, 고단한 역경을 겪어가며 한 세기의 아이콘이 되었던 마릴린 먼로도, 백마 탄 왕자님을 만나게 되는 신데렐라도 모두 캔디 안에 있다. 물론 <캔디>라는 만화의 내용을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겠지만.

2024. 작가노트


손현수_캔디 시리즈. 갤러리 R 전시광경. 2024

손현수의 ‘캔디’

손현수 작가는 이번 갤러리 R 2인전 『거울 속의 나하고』에 11점의 회화와 1점의 벽화 <원더 캔디>(2024)를 선보인다. 그녀의 벽화 <원더 캔디>는 갤러리 R의 높이 3미터, 길이 8미터에 달하는 전시 벽면에 아크릴물감으로 그린 그림이다. 그녀는 3일 동안 갤러리에서 직접 손으로 벽화작업을 했다. 물론 그녀의 벽화는 전시가 끝나면 아쉽지만 철거될 예정이다.


손현수_원더 캔디_벽에 아크릴물감_751x291cm. 2024

손현수의 <원더 캔디>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원더우먼 의상에 캔디의 얼굴을 접목한 벽화이다. 이를테면 그것은 캔디가 원더우먼으로 변신한 것이라고 말이다. 갤러리 R에 선보일 손현수의 ‘캔디’ 시리즈 11점도 캔디의 다양한 변신을 보여준다. 그녀의 ‘캔디-소녀시대’ 시리즈(2013)와 <치파오를 입은 캔디>(2014) 그리고 <아이돌 캔디>(2015)와 <원더 캔디>(2016) 또한 일명 ‘캔더-신데렐라’(2016)와 <마릴린 캔디>(2022)가 그것이다. 따라서 이번 갤러리 R에 전시한 손현수의 작품들은 캔디의 ‘남자들’이나 ‘애니스마일’ 등을 제외한 ‘캔디’ 시리즈로 국한된다.

손현수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1996년에 졸업했다. 그해 그녀는 캔버스에 ‘캔디’를 ‘재현’한다. 손현수의 <외로워도 슬퍼도>(1996)가 그것이다. 이를테면 손현수의 <외로워도 슬퍼도>에 등장하는 ‘캔디’는 이가라시 유미코가 그린 ‘캔디’의 한 컷을 캔버스에 유화물감으로 옮겨 그린 그림이라고 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손현수의 캔디’는 2010년 탄생한다. 와이? 왜 그녀는 15년이 되어서야 ‘그녀만의’ 캔디를 그리게 된 것일까? 활발하게 전시 활동을 하던 손현수는 갑자기 미술계를 떠난다. 그녀의 전시 약력만 본다면 2001년부터 2009년까지 전시 활동이 전혀 없다. 와이? 왜 그녀는 10년 가까이 작품활동을 하지 않은 것일까? 그녀의 답변이다.


손현수_외로워도 슬퍼도_oil on canvas_130x162. 1996

“당시 작가로 활동은 했지만 작품 판매가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생활고를 해결할 방법을 찾게 되었지요. 2001년 KBS TV동화 제작팀에 참여하고 있던 대학 선배와 동료들이 저의 작품을 보고 애니 제작 참여요청을 해왔어요. 그래서 KBS TV동화 『행복한 세상』애니메이션 제작을 2001년부터 2012년까지 하게 되었지요. KBS TV 애니 동화가 주목을 받으면서 다른 방송국들에서도 애니 제작 요청을 해왔지요. 물론 광고와 공연 그리고 출판계와도 애니나 일러스트 일을 하게 되었어요.”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커머셜(commercial) 현장은 한 마디로 장난이 아니다. 그곳에서는 ‘대충’은 허용되지 않는다. 명료한 컨셉과 완벽한 표현력을 요구한다. 따라서 커머셜 작업은 미술계에서 흔히 말하는 예술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 중 하나인 대중성을 확보하는데 유리하다. 물론 아티스트로서의 손현수가 대중성을 어떻게 예술성에 접목시키느냐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2010년 손현수는 대전 홀스톤 갤러리 기획전 『만평(漫評)』에 초대되어 미술계로 컴백한다. 당시 그녀는 <캔디(Kandy)>(2010)와 캔디의 ‘남자들’을 선보인다. 그런데 그녀의 <캔디>는 14년 전에 작업한 <외로워도 슬퍼도>의 ‘캔디’와 달랐다. 그녀의 <외로워도 슬퍼도>의 ‘캔디’는 지나가면서 중얼거렸듯이 유미코가 그린 ‘캔디(Candy)’를 캔버스에 유화물감으로 옮겨 그린 그림인 반면, 2010년판 그녀의 <캔디(Kandy)>는 S라인을 가진 8등신 쭉빵걸이었다.


손현수_캔디_Acrylic on canvas_70x190. 2010

유미코의 ‘캔디’는 사실 당대에 견줄 만한 상대가 없는 뛰어난 ‘절세미인(絶世美人)’이나 나라를 기울게 할 만큼 미모가 뛰어난 경국지색(傾國之色)의 여자 캐릭터는 아니다. 그렇다고 유미코의 ‘캔디’가 남자를 위험과 파탄에 빠지게 하는 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성적 매력을 지닌 ‘팜므 파탈(femme fatale)’도 아니다. 그런데 유미코의 ‘캔디’는 어느 면에서 숙명적인(fatale) 여성(femme)이기도 하다.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냐고요?

손현수의 제목 <외로워도 슬퍼도>는 애니메이션 『캔디캔디』의 주제가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에서 차용한 것이다. 따라서 당시 시련이 닥쳐도 좌절하지 않고 상황을 극복해 나가는 사람들을 ‘캔디형 캐릭터’라고 불리기도 했다. 따라서 손현수의 ‘캔디’는 의타적(依他的) ‘신데렐라형’이 아닌 척박한 운명을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캔디’의 캐릭터를 일종의 ‘현대판 캔디’로 변신시킨 셈이다.

블랙 언더웨어와 블랙 부츠를 신은 손현수의 <캔디>는 S라인의 몸매를 뽐내고 있는 모습이다. 물론 손현수의 ‘캔디’는 유미코의 ‘캔디’와 마찬가지로 ‘노랑머리’에 ‘주근깨’도 몇 개 있다. 하지만 손현수는 유미코의 복스러운 ‘캔디’의 얼굴형을 달걀형으로 그리고 유미코의 마치 인형 같은 거대한 눈을 얼굴형에 적합하도록 ‘성형’해 놓았다. 덧붙여 손현수는 유미코의 ‘캔디’ 바디에 커다란 변신을 주었다.

손현수의 ‘캔디-코스튬 플레이(costume play)’

2013년 손현수는 롯데갤러리의 기획전 『Girls Be Ambitious! : 소녀의 꿈』에 초대받는다. 당시 그녀는 일명 ‘캔디-소녀시대’ 시리즈를 선보인다. 그녀의 ‘캔디-소녀시대’ 시리즈는 이전의 캔버스에 아크릴물감으로 직접 손으로 그린 회화와 달리 마우스로 컴에 그린 이미지를 디지털 프린팅(digital printing)을 한 것이란 점에서 일종의 ‘디지털 페인팅(digital painting)’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손현수_캔디-소녀시대_갤러리 R 전시광경. 2024

손현수의 <캔디-지금은 소녀시대(서현)>은 제목 그대로 군복패션의 ‘캔디-서현’을 그린 작품이다. 그리고 그녀의 <캔디-지금은 소녀시대(유리)>는 백색 티에 청바지를 차림으로 롤러스케이트를 신고 캔디를 먹고 있는 ‘캔디-유리’이다. <캔디-지금은 소녀시대(윤아)>는 마치 본드-걸처럼 붉은 권총을 들고 있는 ‘캔디-윤아’이다. <캔디-지금은 소녀시대(태연)>은 해군 제복을 입고 있는 ‘캔디-태연’을 그린 것이다.

따라서 손현수의 ‘캔디-소녀시대’는 8인조 걸그룹 ‘소녀시대(Girls' Generation)’로 변신한 캔디인 셈이다. 흥미롭게도 쿄코 & 유미코의 『캔디캔디』는 특정 정체성을 지닌 캐릭터인 반면, 손현수의 ‘캔디’는 아이덴티티(identity)를 변화시킨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쿄코 & 유미코의 『캔디캔디』가 ‘외로워도 슬퍼도’라는 성격을 변치 않고 유지하지만, 손현수의 ‘캔디’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한다고 말이다.


손현수_캔디 시리즈_갤러리 R 전시광경. 2024

2014년 손현수는 중국 러산 사범대학교 미술관에서 열린 그룹전 『시선의 이중주』에 초대받았다. 당시 그녀는 그룹전에 <치파오를 입은 캔디>(2014)를 출품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치파오(旗袍)’는 중국의 전통 여성복장이다. 따라서 그녀는 전시장소(중국)을 고려하여 ‘캔디’에게 붉은 바탕에 노랑 꽃무늬 치파오를 입힌 것임을 알 수 있다.

손현수는 2015년 제작한 <캔디>를 가수로 등장시켰다. 그리고 2016년 그녀는 캔디를 베트맨(Betman)과 수퍼맨(Superman)과 더불어 DC코믹스의 ‘빅3’로 불리는 여성 히어로 원더우먼(Wonder Woman)으로 변신시킨 <원더캔디>를 그렸다. 그리고 그녀는 캔디를 신데렐라로 변신시킨 <유리구두를 신은 캔디>도 그렸다. 고아가 백마 탄 왕자를 만난다는 ‘신데렐라’는 고아가 재벌(알버트)를 만난다는 ‘캔디’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겠다. 따라서 그녀의 ‘캔디’는 동시대의 여성뿐만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여성으로도 왕래한다. 따라서 그녀의 ‘캔디’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준다.


손현수_캔디 시리즈_갤러리 R 전시광경. 2024

머시라? 이번 갤러리 R의 손현수 & 정주희 2인전에 이가라시 유미코의 ‘캔디’를 재현한 작품 1점도 전시되어 있다고요? 뭬야? 종이에 디지털 프린팅한 것을 아크릴판에 부착하여 에폭시로 코팅한 손현수의 <캔디>(2019)는 이가라시 유미코의 한 컷인 ‘캔디’를 재현한 것이라고요? 맞다! 그것은 만화 ‘캔디’에서 한 컷을 재현한 것이다.


손현수_캔디_종이에 디지털프린팅, 에폭시, 아크릴판_30x50cm. 2019

그런데 손현수의 <캔디>는 그녀의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 작품을 위한 일종의 ‘마커(marker)’라는 점이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증강현실(AR)은 현실에 존재하는 이미지에 가상 이미지를 겹쳐 하나의 영상으로 보여주는 기술을 뜻한다. 만약 당신이 스마트폰으로 벽면에 전시된 이미지 ‘캔디’를 화면에 담으면, 당신의 스마트폰 화면에 담긴 흑/백 ‘캔디’ 이미지가 움직이게 될 것이다. 네? 작은 체구의 ‘캔디’가 살아 움직이면서 점점 쭉방한 모습으로 변신한다고요? 덧붙여 유미코가 그린 ‘캔디’의 치마가 서서히 섹시한 몸매를 드러내는 레드 원피스로 변화한다.

손현수의 AR 작품 <캔디>는 관객이 직접 체험해야만 완성되는 일종의 ‘관객참여형’ 작품이다. 그것은 스마트폰으로 유미코의 흑/백 이미지 ‘캔디(Candy)’를 사운드와 함께 살아있는 손현수의 쭉빵걸 ‘캔디(Kandy)’로 부활시킨다. 그녀의 AR 작품은 변신한 ‘캔디’의 과정을 보여주는 일종의 ‘비하인드 스토리 컷’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손현수_paperdoll_digital printing on paper_29.7x42. 2019

손현수는 이번 갤러리 R의 2인전에 <캔디_종이 인형>(2019)도 선보인다. ‘종이 인형’은 문자 그대로 종이에 인쇄된 인형이다. 손현수는 캔디와 캔디에 입힐 수 있는 옷들을 종이에 인쇄해 놓았다. 따라서 관객은 가위로 종이에 인쇄된 브라와 팬티만 입은 ‘캔디’와 각종 옷들을 오려서 캔디에게 패셔너블한 옷들을 갈아입히며 놀 수 있다. 손현수는 캔디-종이 인형 옷 입히기에 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캔디'와 '테리우스'를 주제로 했던 그동안의 작업에서 그들에게 이상형의 몸매를 주었다면 이번엔 팬(fan)심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저만의 공간에서 그들은 얼마든지 '우상'이 될 수 있지요. 저는 이번에 걸그룹이 될 수도, 영화 속의 히어로가 될 수도 있고 레이스와 프릴이 달린 란제리를 입은 섹시 돌(sexy doll)이 될 수도 있는 ‘종이 인형-캔디’를 제작했어요. ‘종이인형-캔디’는 제가 좋아하는 이상형, 제가 원하는 스타일로 얼마든지 바꿔줄 수 있으니까요.”


손현수_캔디 시리즈_갤러리 R 전시광경. 2024

읽기 연습
정주희

제목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자면 나에게 사회는 ‘읽기’와 ‘연습’이었다. ‘읽기’는 생각을 직관적으로 내뱉는 말하기와 다르다. 이 작업에서 읽기란, 이미 교정이 끝나서 내용적인 면이나 형식적인 면에서 매끄러운 글을 읽는 것이다. 이것은 자유롭게 말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단한 일인가에 대한 반어이다.

 

우리는 가정에서  학교나 직장 등 소속 규모의 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말하기와 읽기의 차이를 알아간다. 그리고 마주치는 다양한 상황에서 뜻밖의 물음과 시선에 잘 대응하기 위해 연습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담은 내용의 작업이다.

가부장적 가정에서 둘째 딸로 태어나 사랑받기 위한 요망함으로 시작된 이 작업은 내가 지키고자 하는, 지켜야만 하는 규범적 구조 같은 것이 사실 내가 합의한 적 없는, 주어졌다는 데서 거부감이 오는 것이지만 또 억압에서 벗어나고자 하면서도 한편으론 그 길들여짐에서 안정을 취하고 느끼려는 양가적인 심정을 말하기도 한다.

 

2015. 작가노트

정주희의 영상작품 ‘읽기 연습’ 시리즈

정주희는 이번 갤러리 R 2인전에 영상작품 ‘읽기 연습’ 시리즈(2015-2019)와 영상작품 ‘숨’ 시리즈(2023) 그리고 <퍼스펙티브(perspective)> 시리즈(2016-2017)와 일명 ‘짓(movement)’ 시리즈(2019-2022) 등 총 18점이다. 그녀의 ‘읽기 연습’ 시리즈는 총 6편으로 되어 있다.


정주희_읽기 연습 I_single channel video, 4’29”, 2015

정주희의 <읽기 연습 I>(2015)는 런닝타임 4분 29초의 싱글 채널 비디오(single channel video) 작품이다. 그것은 알몸의 여자(작가)가 머리에 책들을 이고 두 손으로 종이를 잡고 텍스트를 읽는 영상작품이다. 여자는 종이에 쓰인 텍스트를 읽으면서 머리에 이고 있는 책들을 떨어트리지 않고자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여자는 여러 장의 종이에 쓰인 텍스트를 읽을 때마다 책들을 떨어트린다.

그녀가 읽는 텍스트는 “우리도 저 기사들에 나온 사람처럼 가난하고 힘들었고 고통스러웠어”라는 글로 시작한다. 그녀는 “나라는 젊은이는 50년도 태어난 부모님 밑에서 6.25사변을 겪으신 할아버지의 전쟁 이야기를 들으며 10년 이상의 유년기를 ‘리’ 단위의 촌락에서 모를 심고 콩을 털며 경운기를 타고 아궁이에 소죽을 끓이며 살았어”라면서 자신의 유년시절 이야기와 “지진 쓰나미, 화재, 허리케인, 씽크홀, 배의 침몰과 비행기의 추락, 테러 습격, 전쟁, 싸스와 같은 질병, 수퍼스타의 스캔들, 시위, 살인, 비리, 온난화, 총기 난사, 연쇄살인” 등의 사건들과 ‘세대 간의 갈등이나 빈부격차’에 대해 말한다.


정주희_읽기 연습 II_two channel video, 10’31”. 2016

정주희의 <읽기 연습 II>(2016)는 알몸의 여자가 두 손으로 텍스트가 쓰인 종이를 잡고 읽으면서 회초리를 맞는 모습을 촬영한 영상작품이다. 10초 간격으로 10분간 가해지는 회초리질로 인해 종아리는 점점 부어오르다 못해 멍이 들고 피가 날 정도로 된다. 여자는 멍든 곳에 회초리를 맞으면 신음을 내고 결국 텍스트를 읽는 목소리는 떨리기 시작한다.

그녀가 읽는 텍스트는 “이별을 사랑해주신 세월에 연마 여러분, 방송 발뒤축처럼 언론계의 선생님들 그리고 저희를 과거를 향한 지켜봐 주시고 관심 가져주신 애증 모든 분께, 현재 오늘, 참으로 겸허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찍을 수가 없어. 마지막 자괴와 침잠 작별의 인사를 폭력 드리려고 자존감이 자리에 섰습니다”라는 글로 시작한다.

당신이 여자의 말을 들어서 일 수 있듯이 여자가 읽는 텍스트는 뒤죽박죽이다. 이를테면 여자가 읽는 텍스트는 온라인상에 있는 텍스트에서 인용한 문구들을 짜깁기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것은 ‘노동’과 ‘재벌’ 그리고 ‘신자유주의’와 ‘정치’ 또한 ‘빚’과 ‘자살’ 등을 문장들에 삽입해 알 수 없는 텍스트로 들린다. 물론 “저는 서울 서초구 강도 상해 사건의 피해자입니다”라는 피해자 진술서와 합의서는 일부 이해 가능한 텍스트이지만, 이후 사건(들)이 뒤죽박죽 언급되면서 관객은 사건(들)에 혼동을 가지게 된다.


정주희_읽기 연습 III_single channel video, 7’26”. 2017

정주희의 <읽기 연습 III>(2017)는 알몸의 여자가 철봉에 매달려 말을 하는 모습을 촬영한 영상작품이다. 여자는 철봉에 매달려 몇 문장도 말하지 못하고 떨어진다. 여자는 철봉 매달리기와 말하기를 반복하면 할수록 절봉에 매달리는 시간을 짧아지고 결국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탈진한 거친 숨소리를 낸다. 여자가 철봉에 매달려 하는 말은 한국의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미혼의 남자가 30대 후반의 여자에게 한 말이란다. 텍스트의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환경의 영향을 받는 거지. 뭘 고민해. 돈이 없는 것보단 있는 게 좋지. 그럼 돈 안 벌어도 되는 남자를 만나. 돈 안 벌어도 되는 남자는 예쁜 여자 만나는 거 알지? 경쟁력을 갖춰. 더 빨리 예뻐지도록. 경쟁 사회잖아. 근데 여자는 나이가 중요한데 마흔은 넘기지 마라. 훅 간다. 내가 무너지는 애들 한 둘 본게 아니다. 분발하자. 얼마 안 남았다. 무서운 소리가 아니란다. 현실이란다. 남자는 여자 서른 넘으면 일단 꺼려. 결혼이면 임신도 고려하는데 불임 리스크가 확대되니까 굳이 안 만나지. 원래 태어나길 불평등하게 태어났어. 세상에 여자가 너뿐인 게 아니잖아. 니 경쟁 상대는 쑥쑥 자라고 있다.”


정주희_읽기 연습 IV_single channel video, 30’ 00”. 2017

정주희의 <읽기 연습 IV>(2017)는 성경책을 읽으면서 매1분마다 소주를 원샷(one shot)해 4병을 마시고 기절해 버린다. 여자가 성경을 읽어 내고자 하는 의지는 술을 마시고 취하면서 차츰 약화 된다. 이를테면 여자는 술에 취해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태에 처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컨트롤 할 수 없는 물리적 상태에 저항한다고 말이다.


정주희_읽기 연습 V_single channel video, 05’ 24”. 2018

정주희의 <읽기 연습 V>(2018)는 신부가 주례사 자리에서 주례하는 모습을 촬영한 영상작품이다. 머시라? 혹 작가가 작품을 위해 결혼식장에서 신부 드레스를 입고 주례를 한 것이냐고요? 아니다! 정주희의 <읽기 연습 V>는 연출된 것이 아니라 레알이다. 그것은 그녀의 실재 결혼식을 촬영한 것이다.

정주희와 예비남편은 양가 부모가 원하는 결혼식을 하지만 기존 권위적인 결혼식에 순종하기보다 차라리 저항하는 결혼식을 치르자고 합의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양가 부모에게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물론 그녀의 <읽기 연습 V>는 양가 부모와 하객들이 결혼식장이 아닌 피로연 장소로 자리를 옮겼을 때 행했다고 한다. 그리고 양가 부모는 그녀의 <읽기 연습 V>를 모니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보셨단다.

정주희의 <읽기 연습 V>에서 신부가 읽는 주례사는 “화창한 날씨에 공사다망하신데도 불구하고 오늘 이 결혼식에 오셔서 이 자리를 빛내주신 하객 여러분께 양가 혼주를 대신해서 주례인 제가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로 시작한다. 그것은 작가가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수집한 보편적인 내용을 담은 주례사이다. 이를테면 남편은 어떠해야 하고, 부인은 어떠해야 한다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압박 내용 말이다.


정주희_읽기 연습 VI_2 channel video, 10’30”. 2019

자, 마지막으로 정주희의 영상작품 <읽기 연습 VI>를 보자. 그것은 영상작품은 투-채널(two-channel)로 이루어져 있었다. 왼쪽 영상은 무엇인가를 반복해서 던지는 행위를 보여주는 반면, 오른쪽 영상은 두 발을 고정시키고 있는 바닥에 흰 티슈(tissue)들이 매번 쌓이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 정주희의 <읽기 연습 VI>은 작가가 티슈를 끊임없이 던지는 행위를 촬영한 것이다.

그런데 작가는 화면 정면을 바라보고 티슈를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녀는 그 장면을 촬영하고 있는 카메라를 향해 얇고 부드러운 티슈를 던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하지만 작가가 던진 티슈는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고 자신의 발밑에 떨어져 쌓인다. 왜냐하면 작가는 흰 티슈를 멀리 던지고자 하지만 참을 수 없이 가벼운 티슈는 멀리 날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미술평론가 류병학은 정주희의 <읽기 연습 VI>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녀의 영상은 ‘나는 아무 힘도 없고 달걀로 바위 치기밖에 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으로 그에게 들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주희는 관객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득권과의 싸움이 비록 ‘달걀로 바위 치기’라 할지라도 난 바위를 향해 쉼 없이 달걀을 던질 것이다.” 정주희의 기득권에 대한 저항은 크리넥스 티슈 1통에 들어있는 200여 장의 티슈를 모두 던지는 것으로 끝난다.

정주희는 자신의 신체를 버티기 힘들 정도로 ‘학대’한다. 관객은 자신의 신체를 괴롭히는 작가의 행위를 보면서 마음이 아프다. 그렇다! 그녀의 <읽기 연습> 시리즈는 관객에게 머리가 아닌 몸으로 느끼게 한다. 그녀는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품을 시작하게 된 동기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심리나 감정으로부터 작업이 시작되는데, 그게 아니라고 하시는 분들이 종종 계세요. ‘네가 하려는 이야기는 감정이 들어가면 안된다’고. 개인이 느끼는 쇼크가 다르고 그게 저한텐 굉장히 중요해요. 개인이 받는 쇼크는 범주가 될 수 없잖아요.”

정주희의 회화 ‘짓(movement)’ 시리즈

정주희는 이번 갤러리 R의 2인전에 8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회화 작품 <짓>(2019)을 전시한다. 그것은 캔버스 천에 유화물감으로 작업한 평면작품이다. 그 거대한 그림에는 캔버스 틀도 없다. 갤러리 R의 11미터 벽면에 설치된 그녀의 <짓>은 관객의 시선을 압도한다. 그런데 그녀의 <짓>은 붓으로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린 것이라기보다 마치 검정 먹을 뿌려놓은 것처럼 보인다.


정주희_짓(Movement)_oil on canvas_800x220cm. 2019

만약 당신이 그녀의 그림으로 한 걸음 들어간다면, 당신은 캔버스 천이 아교로 바탕칠 된 것이 아니라 날 것의 아사 천이라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아사 천에 표현된 검정 흔적들이 먹물이 아니라 유화물감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도대체 정주희의 <짓>은 어떻게 제작된 것일까? 문득 작품 뒷면이 궁금해졌다. 작품 뒤로 가보니 아교로 바탕칠 된 것이 아닌가. 작가는 그림을 그리는 면이 아니라 그림의 뒷면에 작품을 한 것인 셈이다.

정주희는 회화 <짓> 옆에 모니터를 설치해 영상작품 <읽기 연습 V>를 플레이해 놓았다. 왜냐하면 그녀의 회화 <짓>이 그녀의 영상작품 <읽기 연습 V>에서 파생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읽기 연습 V>에서 티슈 1통에 들어있는 200여 장의 티슈를 던졌다면, 그녀는 <빗>에서 200여 장의 티슈에 검정 유화물감 덩어리를 싸서 아사 천에 던졌다고 말이다.


정주희_짓 시리즈_갤러리 R 전시광경. 2024

정주희의 ‘짓’ 시리즈는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겠다. 하나는 캔버스에 유화물감을 티슈에 싸서 던져 제작한 회화이고, 다른 하나는 캔버스에 아크릴 물감을 티슈에 싸서 던져 작업한 회화이다. 유화물감을 던져 제작한 회화 <짓> 시리즈는 물감이 던져진 상태의 흔적을 유지한다면, 아크릴 물감을 던져 작업한 회화 <짓> 시리즈는 물감의 자국이나 흘러내림을 드러낸다. 말하자면 작가는 튜브에서 짠 유화물감을 그대로 사용한 반면, 아크릴 물감은 물을 타서 작업했다고 말이다. 따라서 그들의 던지기 흔적은 다르게 나타난다.

정주희의 영상작품 ‘숨 프로젝트(breathing project)’ 시리즈

정주희는 2023년 일명 ‘숨’ 프로젝트를 작업한다. 그녀의 <숨 프로젝트-까치발(breathing project-tip toeing)>(2023)은 제목 그대로 맨발로 발꿈치를 들고 있는 모습을 촬영한 영상작품이다. 우리는 까치발로 얼마나 서 있을 수 있을까? 영상 속의 사람은 한동안 까치발로 서 있다. 그/녀는 도저히 견딜 수 없을 때까지 까치발로 서 있다가 발뒤꿈치를 바닥에 댄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까치발 하기를 반복한다.


breathing project-tip toeing_single channel video, 01'22". 2023

머시라? 당신은 정주희의 <숨 프로젝트-까치발>을 보면서 문득 그녀의 <팩드 에이지-더 보트(packed age-The boat)>(2015-2019)를 떠올렸다고요? 그것은 하이힐(high heels)에 오브제들을 부착한 일종의 ‘파운드 오브제(Found object)’로 2015년에 시작해 2019년에 완성한 작품이다. 머시라? 하이힐은 대량생산된 기성품이냐고요? 정주희의 말에 의하면 그것은 동대문 패션상가를 돌며 가장 높은 볼륨의 하이힐을 구입한 것이라고 한다. 그녀는 <팩드 에이지-더 보트>에 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정주희_packed age-The boat_figure on high heels_12x25x25cm. 2015-2019

“TV 속 아이돌 그룹이나 연기자와 모델들은 15cm의 높은 하이힐을 신고 걷거나 격렬히 춤을 춥니다. 최대한 자연스러워 보이려고 애쓰죠. 만약 삐끗하거나 조금만 어색해지면 놀림의 대상이 되거나 경쟁에서 탈락이 되기도 합니다. 하이힐을 장시간 신으면 허리와 발목에 무리가 가고 발의 생김새가 달라지는 등 신체에 좋지 않은 영향이 생긴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하이힐은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죠. 대중들은 미디어를 통해 확산된 이 기이한 현상을 추종합니다. 자신들도 신고요. 또 한편에서는 여성들이 높은 하이힐을 신기를 부추기거나 바라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이와 같은 욕망을 하이힐의 비정상적인 볼륨이 대변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의 소비나 미의 추구와 같은 집단적인 욕망이 구두라는 배에 올라탄 것 같았습니다.”


정주희_breathing project_five channel video. 2023

정주희의 <숨 프로젝트(breathing project)>(2023)은 다섯 채널 비디오(five channel video) 작품이다. 그것은 다섯 개의 모니터에 각각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인물을 촬영한 일종의 ‘영상작품’이다. 머시라? 그것은 ‘영상작품’이라기보다 차라리 ‘사진작품’으로 보인다고요? 왜냐하면 다섯 개의 모니터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모두 아무런 미동 없이 정면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이 참을성을 가지고 모니터 속의 인물들을 본다면, 그들이 숨을 참지 못하고 내뱉는 것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정주희 <숨 프로젝트> 참여자들에게 카메라에 시선을 고정시킨 상태에서 숨을 참을 수 있는 만큼 참아 달리고 요청했단다. 물론 등장인물 다섯 명의 숨 참기는 각기 다르다. 그리고 관객이 숨을 참는 이들의 표정을 보면 묘한 느낌을 받는다. 이를테면 관객은 그들의 숨 찾기를 따라한다고 말이다. 우리는 정면을 바라보고 숨을 쉬지 않고 참아본다. 하지만 우리는 숨 찾기 한계에 달하면 숨을 내뱉게 된다. 이런 단편적인 읽음은 정주희의 ‘숨’ 프로젝트가 그녀의 ‘읽기 연습’과 문맥을 이룬다는 것을 알려준다. 정주희는 <숨 프로젝트>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진술한다.

“나는 작품에서 유독 한국 사회에서 살고 있는 개인의 감정과 발언의 표출을 제어하는 관행 중 하나로 ‘숨을 참는 것’을 작품으로 나타냈다. 숨을 참는 것은 신체의 ‘호흡 정지’ 외에 개인이 사회적 기대나 압력으로 인해 자신의 진정한 감정, 의견 또는 정체성을 억누르도록 강요당하는 일종의 ‘알아서-눈치껏’ 작동하는 ‘셀프 제어’ 시스템이다. 우리는 한 번쯤 ‘보고도 못 본체해라’ ‘쥐 죽은 듯 살아라’ ‘귀머거리 3년, 장님 3년, 벙어리 3년’ 등의 표현을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는 종종 억압에 대한 침묵과 억압받는 자의 ‘숨죽임’을 목격할 수 있으며, 이런 맥락에서 작품에서 나타나는 인물의 ‘숨참기’는 다양한 해석에 놓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