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 Lee You mee

‘큰사람도 쓰러질 때가 있다‘

그들의 서사는 나의 아버지와 가족사에 대한 이야기다. 이산이나 이념의 얘기도 있지만 나의 뿌리에 대한 얘기이며 그 안에는 인간의 삶을 통해 바라본 삶과 죽음에 관한 은유적인 이야기다. 내 안에 있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 어머니와 어머니의 어머니에게 받은 DNA가 살아 움직이며 나를 보해해주며, 존재의 근원과 그 너머의 인간의 존재와 삶과 죽음의 문제를 얘기하고 있다.

이번 제콥 1212에서는 그들의 서사 부제로 ‘큰사람도 쓰러질 때가 있다‘ 이다.
아버지를 통해 나를 보고, 또 나를 통해 아버지를 보며 시대는 달라도 같은 선상에서 인간의 삶의 본질을 바라보고 있다. 90의 노령의 몸을 이끌고 온갖 인생의 희노애락과 서서히 꺼져가는 삶을 살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나 또한 삶과 죽음을 본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큰사람으로 여겨졌던 아버지의 모습에서 쓰러져 가는 삶을 보게 됐다. 그러면서 큰사람이 쓰러진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구에서 멀리 떨어진 달을 보면 반짝반짝 빛나는 아름다운 바다라고 불리는 달의 바다가 있다. 하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그저 황폐한 모래 구덩이에 불과하다고 한다. 애초에 우리가 생각한 '달의 바다'는 있지도 않다. 무지로 인한 착각인 것이다. 그저 멀리 있기 때문에 주관적인 상상력과 낭만적인 해석이다. 아름다운 바다를 보고 달려왔으나 황폐한 현무암을 만나는 순간 현실의 진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큰 사람이 쓰러진다는 의미도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처럼 멀리서 보면 모두 다 아름답게 보인다. 하지만 현실의 삶으로 들어가는 순간 삶의 무게는 모두에게 결코 가볍지 않다. 남들의 인생은 행복해 보이지만 진실을 알고 보면 인생은 누구에게나 유쾌하지 않고 구질구질 한 것이다. 어쩌면 내가 아버지의 모르던 모습이었던 것인가 아니면 알면서도 무심히 넘겼던 것들이 어느 순간에 진실이 크게 보였던 것인가.

또 믿음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신조를 버리고 변하기 시작한다. 그것을 보는 많은 이들은 슬픔과 분노를 느끼게 된다. 굳은 신념으로 삶을 살아갈 때 많은 이들의 존경과 지지를 받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신념을 버릴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 누군가는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는 절망과 나만 편해지자 보신주의에서 그럴 수 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큰사람이었던 사람들이 쓰러져서 먼지가 되는 것을 보며 어쩌면 그 사람은 큰 사람이 아니였다는 확신과 함께 씁쓸한 뒷맛을 보게 된다.

아버지는 왜 그러셨을까.
늘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완전히 사랑 할 수 있다는 영화의 대사를 떠올렸다. 아버지는 자신만의 세상에서 삶을 살아오고 난 담담하게 늘 먼발치에서 보며 느끼는 것이 많았다. 그러나 쓰러져 가는 삶을 보며 그렇게 믿고 있던 아버지에게 심적으로 타격을 받고 순간 놀라움과 슬픔, 괴로움과 분노가 느껴졌다. 아버지의 나이 탓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아버지는 늘 청년 정신을 가지고 늘 올곧은 정신으로 사셨던 분이셨는데 아버지에게도 10개의 손가락이 다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면서 나에게도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자식이 있듯 아버지에게도 마음에 남는 자식 사랑이 있다는 걸 알았다.

어쩌면 아슬아슬하고 불안함을 간직한 채 긴장감을 가지고 서 있는 모습보다 그냥 쓰러지거나 안전하게 기대있는 것이 긴장감이 해소되고 편할 때가 있다. 큰사람을 쓰러지게 한 안타까움처럼 운주사의 전설이 생각났다. 간절함으로 천불천탑을 조성하려 했지만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누워 있는 불기립불 (不起立佛)이 생각났다. 이제는 천불천탑의 정성은 오간데 없이 몇 구 남은 형상들로 옛날의 모습을 상상해 볼뿐이다. 어쩌면 소원을 이루지 못한 채 사라지고 쓰러져 갔다.

우리 동네 할머니들은 거의 다 혼자 사신다. 가끔 안부 인사 겸 간식을 가져다 드릴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모든 할머니들은 방에 불도 키지 않고 혼자 누워서 티브를 보고 계신다. 할머니들은 억척 같이 물질을 하며 돈을 벌어 자식에게 모두 퍼주고는 인생 황혼기에 어두움 속에 누워서 전기장판과 티브에 의지하며 살고 계신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육신의 괴로움이나 삶의 고독은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식들에게 누가 되지 않게 오직 자식에 대한 사랑만이 남아 있다.

큰 사람이 쓰러질 때가 있다. 어떤 이는 그 모습을 보며 그저 인생무상을 느끼기도 하고 누군가는 분노와 좌절을 누군가는 깊은 슬픔을 느낄 것이다. 아버지의 쓰러져 가는 모습을 보며 아버지를 통해 나를 반추해 보고 나를 통해 아버지를 본다. 아버지의 현재가 미래의 나의 모습이며, 아버지의 과거의 모습이 지금의 나이기 때문이다.

인생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서 끝이 아름다운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끝이 좋으려면 삶의 과정도 좋아야 된다고 하지만 그 과정이라는 것은 매순간의 선택으로 얻어지는 것들이며 그 선택이 늘 최고이며 최선일수는 없을 것이다.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란 말처럼 저 멀리 있는 별을 쳐다보듯 한번쯤 멀리서 우리의 삶을 바라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아버지를 다시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