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홍 Lee Sang Hong

때때로
아무도 없는 동굴속에
들어앉아 별을 그린다.
몽블랑 만년필과 한정판
고급잉크로 그린 별들은
저마다 사연과 바람을
가지고 있지만
그저 한 낱 이해받지 못한
삶이다
소통불가능한 이야기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별세우기는
끝나지 않을
부조리극이다.
_ 별놈과 놀자 2023

제주살이에서 제일 아쉬운 일은
연극을 못보고 연극을 못하는 거다. 그래서 그런지
여러 이름으로 불려지는 제주에서의 나는
종종 모노드라마를 펼친다.
실제없이 이름만 좀비처럼 떠다니는 세상에서
여러 이름을 갖고 사는 나는 애써 외로움을 경계한다.
슬프고 무서운 제주 사삼 이야기를 들으며
아무것도 없었을 제주의 풍경을 상상했다.
지난 육년간,
그때 그냥 제주라는 이름으로 그리고 만들었던
것들의 실체를 둘러본다.
_그때 그냥 제주 2023

나는 세상살이 별별 이야기를 다양한 제목으로 드로잉 한다.
다양하게 표현되는 드로잉은 현재라는 시공간 위에 놓인 개인의 존재 방식과 더불어 동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내밀한 개인의 역사와 고백을 담는다.
청색과 적색을 주조로 자유분방하게 그려나간 드로잉은 텍스트와 이미지, 명료함과 모호함 같이 서로 다르거나 호환 가능한 요소들을 충돌, 결합함으로써 조형의 문맥과 사회 현상 안에 담긴 확장 가능성이나 새로운 소통의 지점을 찾아나간다.
드로잉을 통해 시각화하는 작업을 하는 나는 최근 수 년간 드로잉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과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나는 드로잉작가, 연극인, 문화 공간 운영자, 전시기획 등등의 일을 하며 살아간다.
나는 이 세상의 경계 사이에 멈춰 사유한다.
사물의 안과 밖 경계에서 긴 시간 머물며 관찰한다. 사물의 안 또는 바깥 어느 한 곳을 정해 그곳에서 작업을 이야기하기보다, 두 지점을 왕복운동하며 수많은 길을 낸다. 나의 작업을 멀리서 찾지 않고 그렇다고 가까운 곳에 천착하지 않는다. 내가 살아가는 주변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살피며 바로 거기서 세상과 이야기한다.
내게 드로잉은 삶을 바라보는 태도이다.
정면이 꼭 정답은 아니다. 그러나 정면은 답이기 이전에 태도이기에 스스로의 삶을 환기시키는데 중요하다. 사전적 의미로 태도는 ‘어떤 일이나 상황 따위를 대하는 마음가짐. 또는 그 마음가짐이 드러난 자세’이다. 그러니 내게 드로잉(태도)이란 세계를 인식하고 이를 작업으로 드러내는 짓, 즉 작업으로 투사시킨 짓들의 결과물이다.
나의 드로잉은 세상과 관계하고 인식하는, 개입해 들어가며 판을 흔드는 작가적 태도라 생각한다. 나의 드로잉은 나비처럼 요리조리 날아 벌처럼 쏘며 헤비급 챔피언 조지 포먼을 쓰러뜨린 알리의 쨉 같이 곰살맞고 재미있기를 희망한다.
최근 5년간 나는 <이작가와끼니.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이건드로잉이아니래요. 문방구앞에서. 위하여위하여. Fantastic Job!. 라라랜드를위한나라는없다. 새빨간X새파란이상홍드로잉. 대동호텔5층휴게실에서 벌어진낭만적해프닝. 아니어떻게알고왔어. 나는이상홍작가다. 하하호호히히. 로풍찬유랑극단을위한드로잉. 민중변주곡을위한드로잉. 이건노래가아니래요. 너의외로움은늘작다. 우아한집착. 맏이로태어나할일무척이나많다만> 등의 전시명으로 다양한 드로잉 전시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질적인 것들의 접목에서 쉽게 발생하곤 하는 ‘소통의 확장 가능성’에 관심이 있는 나는 ‘조형드로잉’이라는, 무규칙 이종격투기 같은 다양한 드로잉 작품들을 쏟아내고 있다. 그리기와 만들기를 통해 평면, 오브제 형식으로 드로잉 한 작품을 전시 공간에 효과적으로 설치하면서 그 주제와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나의 드로잉, 오브제 설치 작업은 관객을 만나는 공간과 방식이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나는 일반적인 전시공간이 미술관, 갤러리의 전시 공간뿐만 아니라 특정 문화 공간 과 극장, 카페 등으로 작품 전시 발표 공간을 확장하려고 노력한다. 특히 극장에서 펼쳐지는 공연 예술에 공간, 무대 드로잉 시각예술가로 참여하여 조명과 음향이 함께하는 시각 예술을 드로잉 하는 작업은 특히나 관객과의 소통을 보다 직접적으로 할 수 있다.
예술가로서 <하고 싶은 작업>과 <해야 하는 작업> 사이에서, 이 세상에 수 없이 그어져 있는 경계와 경계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다양한 이야기를 수집하고 나만의 드로잉이라는 시각적 언어로 다시 이야기하려 한다. 그 이야기는 이미 정해진 시공간 안에 한정되지 않고 새로운 ‘관계’와 수많은 ‘사이’에서 펼쳐지고 나눠지기를 희망한다.
_별세우기 2020

제주도에좀다녀오겠습니다
갤러리킹 에서 첫 개인전(참 잘했어요 2007)후 11년이 지났다.
그 사이 네 차례의 개인전을 하였고, 7년간 연극을 하고 있다.
종로 홍살롱 에서 6년간 그림방 모임을 하던 중 촛불을 들었고, 새 봄과 함께
정권이 바뀌었다.
무언가,
여기는 어디이고, 나는 어디에 서있고,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지, 무얼 하고 싶은지를
다시금 고민하던 중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지내고 싶었다.
제주에서 제로베이스(zero base)를 만들 수 있을까하는 기대를 갖고,
또 다른
새 봄을 맞았다.

제주시 <예술공간 이아> 레지던시 에서 지내는 기간 중 예상에 없던 성인 발달장애인과 드로잉을 함께하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갖게 되었다. 이십대 중반 전후의 그네들과 일대일로 마주 앉아 커다란 혹은 길다란 종이에 두 시간씩 그림을 같이 그리는 일이었다. 말(대화/언어)로는 소통이 거의 불가능한 그네들과 그림을 같이 그리면서 직감적으로 직접적이긴 하지만, 분명하지 않은 교감을 나눴다. 그네들이 자의적, 타의적으로 그려내는 그림들은 조형적으로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다. 그네들은 새로운 자극에 대한 기억을 잊지 않고 종이위에 그려내는 듯 했다. 곁에서 같이 그림을 그리는 이의 새로운 이미지에 대해 관심과 호기심을 조심스레 드러내기도 하였다. 새로운 자극에 대한 인식 여부와 그것이 피드백 되는 과정과 시간을 예상할 수 없었다. 순전히 ‘자기 맘대로’였다. ‘자기 맘대로’가 가능한 그네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학습된 ‘자기 맘대로’를 조율하며 효과적으로 사용하였다. 일반적인 언어와 말로의 이성적 소통의 불편함 보다, 예상치 못한 다소 돌발적인 ‘자기 맘대로’ 즉발적인 그네들의 소통 방식이 편하게 느껴지기도 하였다. 그네들의 그림은 순전히 ‘자기 맘대로’였다.
십 수 년 전에 예술가가 되겠다고 작가가 되겠다고 뒤 늦게 공부를 마치고 굳은 결의와 다부진 의연함과 끝없는 불안감과 턱없는 욕망의 기대감에 한껏 부풀어서 시작했던 만년필 드로잉 작업을 다시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그쯔음 들었다. 굳은 결의도, 다부진 의연함도 없이 여전한 불안감은 허무하게 기대가 사라진 욕망 뒤로 숨기고, 만년필 그림을 그렸다. 그냥 내 맘대로, 파란색 잉크가 들어있는 만년필로 하얀 종이를 파란 종이로 만들고 싶었다. 어렸을 때 너무나 좋아 많이 갖고 싶어 심지어 친구들 것을 빼앗기도 했던 파란 색종이를 갖고 싶었다. 커다란 파란 색종이를 그렸다. 그냥 내 맘대로.
<제주 4.3> 70주년을 맞은 제주의 봄은 섬 전체가 굿판이었다.
무서웠다. 4.3 이야기도 무서웠고, 칠십 주년을 기념하는 그들도, 온 섬에서 열리는 굿판도 다 무서웠다. 그 아름다운 제주 중산간로 위에 서 있는 것도 그 중산간로를 바라보는 것도 무서웠다. 다 무서웠다. 참으로 무서웠던 그 봄에, 작업실 큰 창밖으로 수없이 오르고 내리는 비행기를 보면서, 나는 여섯평짜리 작업실에 앉아 한 선 한 선을 이어 붙여 파란색 종이를 만들었다.
레지던시는 말 그대로 제주에서 ‘작업하면서 살기’에 대한 가능 여부에 대한 경험이었다.
그 레지던시에서 이미 약속된 육지에서의 전시를 위한 작업을 바삐 해야만 하는 상황이 아이러니했다. 물리적 장소 이동으로 만들고 싶었던 제로 베이스는 잠시 나타났다, 사라졌다. 살짝 보였다가, 다시 가려졌다.
꿈꾸는 라라랜드는 어디에 있을까?
내가 제주에서 기대했던 제로베이스는 또 하나의 라라랜드였을까?
나의 라라랜드는 그저 내 맘대로 하고 싶은 대로만 살고파서 그 명분과 자기 합리를 인정받고 싶은 무능한 허세의 기록 인 걸까?
문뜩,
도란스가 필요해.
_도란스가 필요해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