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수진 Do Su jin

# 한 여름, 낮, 집 밖에 내놓은 음식 쓰레기봉투

단단히 매듭진 봉투 안으로는 구더기가 들끓고 그중 몇 마리들은 손톱만 한 틈새를 비집고 나와 고층 아파트에서 몸을 던지는 이들처럼 바닥으로 떨어진다. 그들은 이내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맹렬히 온몸을 뒤틀며 꿈틀거린다. 내용물이 언뜻 비치는 불투명한 봉투 속 썩은 음식 쓰레기들은 여기까지 악취를 풍기는 것만 같다. 찌는 듯한 더위에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다 순식간에 터져 버리기라도 한다면 끔찍한 참사가 될 것이다. 라면을 끓이다 문득, 냉장고 문을 열다 문득, 구더기처럼 불쾌한 생각 하나가 피부를 뚫고 나와 불쑥 머리를 내민다.

 

'”나는 작업을 하기에는 나약한 인간이다. 또한 그만 두기에도 나약한 인간이다...“

 

무언가를 할 때와 하지 않기로 할 때 모두 용기를 필요로 한다. 힘없는 의지들이 서로 충돌하고 버티다 경련처럼 사라진다. 내가 경계의 틈 어딘가를 부유하고 있는 사이 언제인가부터 신경쇠약증에 걸린 괴물들이 나의 지하실을 점령하고 있다. 그 공간을 모조리 불태워 없애고 싶은 것인지, 혹은 불타는 지하실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끔찍한 자기 연민 속에 자신을 매몰시키고 괴이한 쾌감을 얻고 싶은 것인지 그것조차 희미하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하다. 나는 현실 세계에 질려버렸다! 내가 자그마한 자극에도 발끝을 세우고 움츠렸다 서서히 팔을 벌려 공격 자세를 잡는 사마귀라면 그들은 순진하고 무례한 돌멩이들이다. 내키는 대로 흠집 내고 파괴하지만 스스로는 무감각하다. 나는 그들을 경멸하고 부러워한다.

도수진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