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설치, 1998.
직립희롱. 나는 희롱이라는 말만큼 현대미술과 관객의 관계를 정의하는 좋은 말을 발견하지 못했다. 현대 미술의 정서적 아프리오리는 관객 희롱이다. 작품 안에는 과연 무엇이 있는가. (과연 모든 작품에는 실제로 무엇이 ‘있는가?’) 작가의 이력을 들추어보고, 제목을 참조하여, 작품의 구석구석을 살피고, 전시에 관계된 글들을 읽으면서 나는 언제나, 작품 안에 존재하는 그것으로부터 나에게로 가까스로 다가오려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는데, 그 안에는 정말로 무엇이 있는가. 작품 안에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작품 안에 무엇을 불어넣는 것은 아닐까. 그도 아니면 작품과 나 사이의 팽팽한 공기 속에 부유하는 기의들이 기표를 찾아 헤매는 것인가. 그것이 보는 이의 마음과 머리의 움직임에 의하며 나타나는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보는 이의 마음의 상태로 환원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 모든 물음들이 봉착하는 지점은 결국, 오늘날의 미술작품이 작가와 관객의 서로에 대한, 서로에 의한 테스트와 그 반응의 장소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