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에 자수, 35×35cm, 2020
외할머니 옷장 안에는 한복이 많았다. 흩날리는 벚꽃을 수놓은 것 같던 분홍색 꽃무늬 한복, 여린 풀색의 깨끼바느질 한복, 흑장미처럼 붉은 자줏빛 양단의 한복도 기억난다. 특별한날 할머니는 한복을 입으셨다. 할머니가 장롱 안쪽 서랍을 열고 반듯하게 갠 저고리와 치마를 차곡차곡 꺼내실 때면 보물 상자를 훔쳐보듯 설레었다. 고운 한복을 보는 것도 좋았지만 제일 마지막에 꺼내신 보따리를 보고 싶었기 때문인데 그 보자기를 풀면 온갖 종류의 예쁘고 고운 천들이 미끄러지며 마법처럼 쏟아져 나왔다. 할머니는 천을 펼쳐보시고 필요한 천을 꺼내 가위로 오려내 쓰셨다. 가끔 내게 자투리천을 주시기도 했다. 그것으로 딱히 무얼 한건 아니지만 그저 예쁜 조각천을 가지는 것이 좋았다.